[미디어펜=박규빈 기자] 한진그룹 알파이자 오메가인 대한항공이 대규모 자산 매각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사업부문 정리가 매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당한 액수의 거래인 만큼 수조원대의 채무를 상환해야 하는 대한항공은 몸이 단 상태다. 이 외에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윌셔 그랜드 센터 호텔과 운영사 한진인터내셔널의 재무제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어 모회사 대한항공에 대한 재무구조 개선 압박 수준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김포국제공항 주기장에 서있는 대한항공 소속 여객기들./사진=대한항공 커뮤니케이션실 제공
2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요트 계류장 운영 자회사 왕산레저개발 매각에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달 2일 칸서스자산운용-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과의 왕산레저개발 매각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왕산레저개발 이사회는 운영 자금이 필요하다며 지난달 13일 보통부 신주 896만주를 발행하는 것을 골자로 유상증자를 의결했고, 100% 주주인 대한항공이 43억원을 전액 출자했다. 대한항공 기업 규모에 비하면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수준이지만 벌써 8번째 증자다. 단 한 차례도 흑자를 내지 못한 왕산레저개발에 대한항공이 2012년부터 쏟아부은 돈은 무려 1653억원에 달한다.
대한항공은 왕산레저개발을 손절하는데 실패했고, 이는 지속적으로 재무구조상 부담이 되고 있어 여전히 매각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디원시티는 매각 재입찰 중지 취지로 대한항공을 상대로 지난 18일 법원에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디원시티는 지난 24일에는 매각 주간사 삼성증권·삼정KPMG 측에 이와 같은 내용의 내용증명서를 발송했다.
당초 대한항공은 지난해 11월 말 칸서스 컨소시엄에 왕산레저개발을 1300억원에 넘기기로 했으나 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지난달 2일 우선협상자 지위를 종료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소송은 지난달 19일 공시한 재입찰 공고와 관련이 있다.
대한항공-디원시티 간 분쟁 내막을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준비 과정에서 대한항공은 2011년 3월 인천광역시·용유무의프로젝트매니지먼트(PMC)와 인천 중구 을왕동 소재 왕산해수욕장 주변 공유 수면을 메워 요트 계류장과 관련 시설을 세운다는 업무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2011년 3월 30일 조양호 선대 한진그룹 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송영길 당시 인천광역시장(왼쪽 두 번째)과 박성현 용유·무의PMC 총괄본부장(제일 오른쪽)과 왕산마리나 조성사업 업무협약식에 참석한 모습./사진=대한항공 커뮤니케이션실 제공
인천 용유·무의관광단지 개발사업 추진을 위해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용유·무의PMC'는 시 당국에 2009년부터 매립 승인을 얻고자 했다. 당시 용유·무의PMC 총괄본부장은 독일 캠핀스키 호텔그룹 한국 법인 '용유·무의KI코리아'의 공동대표를 지낸 박성현 씨였다. 대한항공은 2011년 11월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 왕산레저개발을 설립해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마리나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지금도 왕산레저개발은 해양 레저용 소형 항구인 왕산마리나 부지와 제반 인·허가 권한을 갖고 있다. 같은 해 12월 용유·무의PMC는 사명을 '에잇시티(8City)'로 변경하고 이후 박 총괄본부장은 부회장직에 오른다.
◇같은 인물, 다른 법인 대표이사…당사자 자격 있나
3자가 협약을 맺던 당시 '각 당사자는 다른 당사자 전원 동의 없이 협약서상 지위·권리·의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양도·이전할 수 없다'고 서면 합의를 봤다. 때문에 디원시티는 대한항공이 왕산레저개발 1차 매각을 시도하던 때에도 인천시와 자사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재입찰 공고를 내고도 서류상 협약 당사자들을 무시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항공 측은 연관성이 떨어진다고 반박한다.
본지 취재를 종합한 결과 디원시티는 2009년 2월 11일 설립된 박성현 당시 용유·무의PMC 총괄본부장의 개인 회사인 것으로 확인됐다. 박 대표는 디원시티를 창립하기 1주일 전인 그해 2월 4일 용유·무의PMC 대표이사로 선임됐지만 인천시의 강력 반발로 무산과 재선출 과정을 통해 이사가 되고, 이후 총괄본부장직에 오르게 된다.
디원시티와 용유·무의PMC(현 에잇시티)가 동일 법인이 아닐 뿐더러 박 씨는 디원시티에서만 대표이사이고, 총괄본부장 자격으로 용유·무의PMC의 지위를 이어받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따라서 디원시티가 대한항공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때문에 디원시티와 왕산레저개발은 법적 관계가 없다는 대한항공 측 주장은 타당성을 갖는다.
그럼에도 디원시티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선해 측은 "협약 주체인 3자끼리 당초 여러 계획안에 합의했음에도 생뚱맞은 업체가 개발권을 갖게 되면 계획이 어그러질 여지가 있다"며 "개발 계획 실현이 가능한 업체와 매각 작업을 진행하려면 협약서에 나와있는 양도 규정을 제대로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어디까지나 왕산레저개발의 지위 변경이 아닌 당사 보유 지분 매각에 해당해 당사자 전원 동의가 필요 없다"며 "공식적으로 가처분 신청 통보를 받지 않았고 6월 중 정상적으로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맞소송 가능성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으나 "필요한 절차를 밟아 왕산레저개발 매각에 문제가 없음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겠다"고 표명했다.
◇빌딩 규모만큼이나 애물단지 된 바다 건너 마천루, 윌셔 그랜드 센터
대한항공의 자산 처분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소재 윌셔 그랜드 센터가 그 주인공이다. 고(故) 조양호 선대 한진그룹 회장의 '마스터 피스'로 통하는 이 73층짜리 호텔은 객실 900개와 3만7000㎡ 규모의 사무·상업공간을 두고 있어 명실상부한 LA의 랜드마크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소재 윌셔그랜드센터 야경./사진=윌셔그랜드센터 제공
한진그룹은 1989년 한 노후 호텔을 사들여 2010년부터 총 10억달러를 투입해 대대적인 재개발을 감행했다. 대한항공의 여객 사업과 연계해 새로운 관광수요를 창출하겠다는 계획과 달리 윌셔 그랜드 센터는 2017년 개소 이래 단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왕산레저개발과 판박이다. 이곳은 매년 500억원 이상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모회사 대한항공에 큰 부담을 줬다.
이 호텔의 자산가치는 1조4000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재무 상황이 크게 나빠져 지난 한 해 동안 자산가치 7342억6000만원이 증발했다. 대한항공은 미국 회계법인 BDO USA·LLP로부터 자문을 받고 올해 3월 이를 '손상차손'으로 인식했다. 이는 보유 중인 자산 가치가 장부가액 이하로 떨어졌을 때 재무제표와의 손익계산서에 반영하는 개념이다.
윌셔 그랜드 센터 운영사는 대한항공이 지분 100%를 가진 미국 현지 법인 자회사 한진인터내셔널(HIC)다. 따라서 한진인터내셔널이 곧 윌셔 그랜드 센터인 셈이다. 당시 대한항공 측은 "가치재평가를 통해 유형자산과 투자부동산에서 각각 3553억원, 761억원의 손상을 인식하게 됐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에 한진인터내셔널의 장부가액 역시 2019년 말 7561억원에서 지난해 말 219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2.9% 수준이다.
이와 같은 연유로 대한항공은 작년 연결재무제표 기준 매출 7조6062억2400만원, 영업이익 1089억1800만원을 내고도 한진인터내셔널의 손상차손금이 영업외비용으로 반영돼 2300억19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한진인터내셔널의 낮은 신용등급으로 인해 자금 재조달(리파이낸싱)이 어려워져 대한항공은 지난해 9월 17일 9억5000만달러(한화 약 1조1214억7500만원)를 대여해줬다. 대한항공은 한진인터내셔널로부터 상환액을 제하고 약 6억달러를 더 받아야 하나 빌려준 돈에 대한 이자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업보고서상에는 한진인터내셔널에 대한 대여금 이자 131억원을 받지 못해 미수금 처리했다. 때문에 대한항공이 돈을 빌려주면서 수립한 상환 계획 역시 엎어질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한항공은 한진인터내셔널 지분 매각도 추진하나 업황이 침체돼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회사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면 재차 매각을 추진할 것"이라며 "향후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수요 회복 시 손상 처리한 윌셔 그랜드 센터 가치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언급했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 소재 대한항공 빌딩 간판./사진=미디어펜
왕산레저개발 건까지 포함하면 대한항공은 현재 8114억9400만원 수준의 현금을 받지 못하고 있고 자회사 한진인터내셔널과 윌셔 그랜드 센터의 가치는 총합 1조3999억원이 떨어진 상태인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조건으로 한국산업은행 지원을 받는 대한항공은 경영 평가도 받아야 하는 판이다. 결과에 따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 등 경영진 교체·해임 등의 조치가 이어질 수 있어 윌셔 그랜드 센터발 부실에 따른 부담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이에 따라 한진그룹이 어떻게 난국을 타개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