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우리나라가 선제적으로 도입한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시행 7년차를 맞았다. 오는 7월부터는 3기 계획기간에 접어들어 유상할당 확대 등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고 그만큼 기업 부담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배출권 거래 자체가 활성화 되지 않은 시장 왜곡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펜은 탄소배출권 3기를 맞아 변화하는 제도와 기업 리스크 등을 심층 분석하고, 거래활성화를 통한 제도 연착륙 방안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미디어펜=김태우·나광호 기자]올해로 탄소배출권 거래제 시행 7년차를 맞이했고 3차 계획구간 도입을 앞두고 있다. 기존 1·2차와는 현격이 다른 규제가 적용되며 산업계 전반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총량은 줄어들고 적용되는 기업은 늘어나며 기업들이 체감하는 규제강도는 최고치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강화된 규제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의 활성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업계와 학계의 중론이다.
활발한 거래속에 적정한 배출권 가격이 책정되고 이는 배출권 수요자 측면에서도 납득할 수 있는 데이터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배출권 거래시장에 제 3자 참여제도의 활성화를 통해 거래량을 늘리고 정부차원의 규제유연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5년부터 시작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는 탄소배출에 대한 감축의 압박 정도가 3기에 들어서며 강화돼 각 기업들이 그간 해온 감축 노력 등이 이 시기에 더욱 명확해질 전망이다.
배출권 거래제는 정부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연 단위 배출권을 할당하고 할당 범위 내에서 배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할당 범위 내 남거나 부족한 배출권에 대해서 기업들 간의 거래를 허용한다.
즉 온실가스 감축 여력이 높은 기업은 남는 감축량을 시장에 판매할 수 있고, 낮은 기업은 배출권을 구매해 온실가스 배출 할당량을 맞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배출허용 총량을 점차 낮출 경우 기업들의 감축 압력이 증가하며 배출권 가격이 상승하고 이는 곧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투자를 늘리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것으로 보고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1기 때만 하더라도 정부는 제도 초창기임을 고려해 배출권 전량을 무상으로 할당했다. 하지만 2기부터는 유상할당 비중을 3%로 늘렸고 3기에서는 10%로 올라간다.
이 밖에도 지난해까지 적용된 1·2기에는 3년 단위 계획이던 반면 3기부터는 중장기 종합계획의 성격이 커졌다. 계획 단위도 5년으로 변경된다. 특히 해당기수 계획만이 아니라 다음 기수에 실행될 가이드라인을 잡는 종합계획의 성격이 커진다.
3기 계획구간에서는 4기까지의 계획을 염두하고 더 엄격한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기업들의 대외여건과 계획기간별 큰 틀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지원하기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운영방안의 첫 번째는 변화는 할당 체계의 정비다. 기본계획에서는 3차 기간에서의 배출허용총량을 지난 2017년 7월에 수정된 '2030온실가스 감축로드 맵'의 감축경로를 따라 간다.
2018년~2020년(2기) 배출허용총량은 6억9100만톤 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약 6억6800만~6억6200만톤으로 줄어들었다. 예외조항 역시 축소됐다. 기존 국내 외부사업(CDM)시설을 배출권 할당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1·2기 계획구간에서는 국내 CDM시설은 배출권 할당대상에서 제외 됐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여기서 발생한 감축 실적을 외부사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3기부터는 국내 CDM 시설은 배출권 할당부분에 포함하도록 명시했다.
이에 산업계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배출권 비용 증가로 투자가 저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5월29일~2021년 5월27일 탄소배출권(KAU20) 가격 추이(단위 : 원/톤)/자료=한국거래소
지난달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배출권(KAU20) 가격은 톤당 1만7050원, 거래량은 17만6447톤으로 집계됐다. 거래량이 15만톤을 넘은 것은 지난 2020년12월29일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업계는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른 공장 가동률 향상 등을 이유로 배출권 가격이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배출권 가격이 50유로(약 6만8000원)를 돌파하는 등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석유화학 업체들이 '슈퍼사이클'을 맞아 설비 신·증설 및 공장 가동률 향상에 나서고 있으며, 정유업계도 석화·윤활기유를 중심으로 생산량 확대가 점쳐진다.
철강 역시 자동차·가전·건설을 비롯한 전후방산업 회복에 힘입어 수요 상승폭이 글로벌 수요가 전년 대비 4.1%에서 5.8%로 상향 조정되는 등 배출량 확대가 유력하다.
특히 1톤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CO2)가 2~2.5톤 가량 나오는 철강산업은 배출권 가격 인상에 예민한 분야로, △포스코 △현대제철 △세아베스틸 등은 바뀐 할당 방식 때문에 손실이 증가할 수 있는 업체로 꼽힌다.
이에 우리보다 먼저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실시하고 있고 시행착오를 통해 시장 안착모습을 보이고 있는 유럽연합(EU)의 사례를 통해 국내시장에도 적용해야한다는 의견이 있다. 국가별연합인 사례와 단독국가 형태인 국내실정과는 직접적인 비교는 못하지만 참고할 부분을 검토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주요 배출권 거래소 현황을 살펴보면 전력 기반으로 설립돼 점차 금융 중심으로 재편돼 운영됐거나 설립 당시부터 해당 분야 거래 전문 기관으로 계획됐다.
대부분의 거래소가 현재 금융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는 만큼 국내 배출권 거래소도 거래 시스템 등 기반제도를 고려할 경우 거래 중심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 담당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국내에서의 배출권 거래수요를 고려하면 주로 한국전력공사 등 발전회사들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 전력 기반 기관이 담당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유럽의 제도를 그대로 이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를 수는 있으나 신중을 기해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이런 문제점과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활성화된 시장의 형성이다. 탄소배출권의 거래가 활성화 되면 시장을 중심으로 가격이 형성이 되고 이런 가격은 수요를 원하는 기업들이 납득할 명분이 된다.
이런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적정한 가격이 설정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강희찬 인천대 교수는 "'적정가격'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주체가 많아야 형성될 수 있으나, 국내 배출권 시장의 경우 거래량이 많지 않아 한계감축비용과 선호도를 비롯한 정보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9년 EU 집행위원회는 탄소 국경세로 통하는 1조 유로 규모를 넘는 '유럽 그린딜'을 발표해 탄소 중립 정책을 본격화 했다. 이로써 배출권 거래 활성화 분위기가 조성됐다./사진=EU 집행위원회
시장이 활성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설정된 탄소배출권 가격에 평가되어야 할 정보가 누락돼 형성된 가격으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현행 제도 하에서 배출권은 가치 향상이 보장된 금융자산과도 같기 때문에 빨리 사고, 늦게 파는 것이 유리하다"며 "선물거래를 도입하면 미래가치를 미리 정할 수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줄여 거래량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제3자 시장진입의 경우 국책은행과 증권사들이 참여하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며 "배출권 관련 레포트가 발간되는 등 정보량도 늘어날 수 있고, 거래대행도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강 교수는 거래대행사들은 개별 기업이 보유한 것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특정 시점까지 일정한 양을 확보하기 위해 더 자주 거래를 시도하게 됨으로써 유동성을 늘리게 될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다만 미국·유럽과 달리 국내의 경우 발전사를 비롯한 에너지기업들이 장기계약의 비중을 높게 가져가는 등 전체적으로 선물거래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국내 배출권 시장은 유럽과 달리 스팟거래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밖에도 강 교수는 현행 청정개발체계(CDM)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강 교수는 "배출권을 확보하는 방법은 크게 할당과 국내외에서 벌이는 외부감축사업 등 2가지"라며 "할당을 통해 얻는 양이 뻔하다는 점에서 결국 외부에서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필요를 충당할 수 있지만, 환경부는 기업들의 감축 의지를 저해한다는 판단 하에 배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청정개발체계(CDM)를 통해 해외 감축량을 국내로 도입해도 이를 국내 배출권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심사가 까다로워 관련 사업이 정체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CDM를 통해 해외 온실가스 감축실적을 국내로 도입한 것은 지난 3월 SK증권·에코아이와 함께 방글라데시에서 클린 쿡스토브를 보급한 한국중부발전이 처음이다. 지난 2017년에 제도가 시행됐으나, 4년 만에 첫 사례가 나온 것이다.
즉 배출권 거래제도 활성화를 위해서는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제 3자 참여제를 적극적으로 권장해 시장의 거래활성화에 따른 가격형성을 달성하고 이를 통해 신뢰도를 높여 시장에서 납득할 만한 가격형성을 해야된다는 것이다.
또 현행 CDM을 유연하게 적용해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주며 탄소중립을 달성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공동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미디어펜=김태우·나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