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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원장 고전특강(49)- 시민의식 퇴조가 로마의 멸망 불렀다

2015-01-31 13:06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49)- 로마 패망의 교훈, 평화는 돈으로 살 수 없다
몽테스키외(1689~1755)의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로마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장수한 국가인 동시에 최고의 번영을 구가한 제국이었다. BC 753년에 건국하여 1453년에 동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2천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동안 존속했던 국가는 로마 외에 인류사에 어떤 나라도 없다. 하지만 로마의 진정한 힘은 국가의 장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공화정을 거쳐 제정시대를 열어 가며 이들이 창조하고 성취해낸 문명의 위대함에 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숱한 지성인들이 로마를 연구하고, 숱한 국가들이 로마를 모방하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샤를 드 몽테스키외(Charles De Montesquieu, 1689~1755)는 1734년에 ‘로마의 흥망성쇠에 대한 원인 고찰론’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로마가 번영하게 된 원인과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주요 원인들을 진단하고 있다.

   
▲ 몽테스키외 초상, 작가 미상, 1728 作

로마는 사실 궁벽한 환경에서 보잘 것 없는 촌락으로 출발했다. 로물루스와 동생 레무스는 건국의 시조가 된다. 이후 형제간의 골육상쟁으로 로물루스가 초대 왕으로 시작한 이래 7명의 왕이 다스렸다. 하지만 민중의 힘으로 왕정을 전복하고 공화정을 수립한다. 몽테스키외는 로마가 번영하게 된 중요한 덕목들이 이 공화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형성되었음을 관찰해낸다.

로마는 근본적으로 군사 국가였다. 주변 도시 국가들을 끊임없이 공격하여 약탈하고 영토를 넓혔다. 로마인들은 타고난 전사였다. 육체적으로 강인했고 군사작전 수행에 기민함을 보였다. 27kg에 상당하는 완전무장을 한 채 다섯 시간 동안 35km를 행군하는 것도 익숙해 있었다. 부단한 훈련과 엄격한 규율, 나태하지 않았던 군인정신이 초기 로마를 타락하지 않게 만든 요인이었다.

몽테스키외는 “로마에게 해악은 분열이 아니라 번영이었다”는 독특한 주장을 한다. 내부의 반목과 분열, 외적의 침입 등이 멸망이 주원인이라는 통설과 거리가 있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이야기는 아니다. 로마가 급격하게 팽창하고 많은 국가들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급증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초기 로마인들이 공유하던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던 ‘로마인의 정서’가 흩어지게 되었다.​

물론 로마가 패망한 것이 분열 때문이었던 점은 맞다. 하지만 그 분열의 씨앗을 잉태시킨 것은 바로 로마의 번영이었다. 이런 차원에서 몽테스키외가 ‘번영’이 해악이 되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거대한 제국의 번영은 다양한 이해를 가진 시민들로 사회를 분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공화정 시기에 로마가 이룬 작은 번영이 역설적으로 로마의 큰 결집력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저자는 로마가 모든 민족을 종속시키기 위해 사용한 전략을 7가지로 압축한다. 1) 대항할 틈 자체를 주지 않는다. 로마의 군대가 휩쓸고 지나가고 난후 곧이어 원로원이 상벌을 결정하는 등 피정복민을 휘어잡는다. 2) 동맹 관계를 교묘히 이용한다. 잘 복종하지 않는 민족에게 ‘로마의 동맹자’라는 칭호를 준 후 서서히 실질적 예속 관계로 만들어 간다. ​

3) 방해가 될 수 있는 세력은 분열시킨다. 강한 적이 나타나면 주변의 약자 나라를 도와 대항하게 하여 힘을 빼거나, 도시 간에 연합체를 만들려 할 때 분할 정책을 썼다. 4) 강화 조약을 자기 식으로 활용한다. 조약의 미묘한 표현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적을 기만하여 이익을 취하는 방식이다. 5) 돈이란 돈은 모두 로마에 바쳐지게 만든다. 로마인들은 정복자로서 약탈한 것은 모조리 가져하고, 우방이나 동맹국에게서도 선물 명목으로 숱한 금전과 재물을 걷어 부를 축적했다. ​

6) 서서히,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복종시킨다. 로마와 전쟁할 경우 죽음이 아니면 개선식에서의 치욕스런 구경거리로 전락할 수 있었다. 이런 두려움을 심어주면서 점진적인 정복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7) 로마는 정복자의 체제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로마인들은 정복지의 법과 관습을 존중했다. 로마의 7대 국가전략을 간파해낸 몽테스키외의 통찰력이 놀랍다.

로마는 이런 전략으로 아프리카의 상업 강국 카르타고를 멸망시켰고, 끝까지 저항하던 동방의 폰투스의 왕 미트리다테스도 제압했다. 세계의 강적을 모두 제압했지만 정작 더 강한 적은 로마 내부에서 생겨났다. 곧 민중과 귀족의 대립이었다. 귀족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민중을 대변할 호민관제도가 생긴 것도 그 결과였다.

로마를 번영시킨 가장 큰 공헌 집단은 ‘로마시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로마 군인이었다. 하지만 ‘로마 시민권’이 이탈리아 반도 전체로, 나아가 속주의 유력자에게로 확대되면서, ‘로마시민권’이 부여하는 시민의 권리와 책무에 대한 충성도가 희석되었다. 이는 공동체를 떠받치던 군인들의 ‘시민의식’이 희박해 졌음을 의미한다. ​

시민이 강력한 주권을 행사하는 시민적 미덕이 사라지면서 귀족과 야심가들의 권력 투쟁과 내란이 격화된다. 술라,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등 사병화한 군사력을 거느린 장군들이 정치에 참여하면서 원로원의 기능이 약화되고 결국 공화정이 무너진다.

   
▲ 고대 로마의 중심지였던 포룸 로마눔(Forum Romanum) 유적지이다. 로마제국의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로 각종 공회당, 신전 등이 즐비했던 곳이다. ⓒ박경귀

몽테스키외는 카이사르의 죽음 이후 로마의 공화정을 지키려했던 카토를 높이 평가했다. 반면 키케로는 “개인적으로 원한을 품고 있었던 안토니우스를 파멸시키기 위해 옥타비아누스를 발탁하는 나쁜 수를 쓰고” 말았다고 비판한다. 실제 옥타비아누스는 사람들이 경계하지 않도록 교묘하게 공화정의 외양을 존중하는 척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황제정의 토대를 닦는 영악함을 보여주었다. 저자가 옥타비아누스를 “공화국에서 가장 사악한 시민”이라고 비판한 이유다.

몽테스키외는 로마의 공화정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독재적 권력을 장악했던 술라조차 공화주의를 지향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아우구스투스가 전제정치를 만들어낸 것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다. 아우구스투스가 내전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로마의 질서를 확립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그로 인해 “기나긴 굴종 상태를 확립”했다는 점을 안타깝게 지적하고 있다. ​

특히 몽테스키외는 로마의 황제정이 시작된 로마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특히 황제들의 전제정치로 인해 신음하게 된 시민들의 입장을 헤아리고 있다. 로마 민중이 더 이상 국사에 참여할 수 없게 됨으로써 무능해지고, 황제들이 제공하는 빵과 오락에 젖게 된다. 칼리굴라, 네로, 코모두스, 카라칼라 황제가 저지르는 폭정과 미친 짓들을 증오하고 몰아낼 힘조차 잃어버린 무기력하고 비열해진 로마 민중 역시 황제들의 폭정의 과실을 함께 즐긴 사람들이었다. ​

한 사람 한 사람이 공동체의 운명에 공동의 책임을 갖던 시민의식이 로마의 황제정 시기에 붕괴된 것이다. 이 점이 로마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더구나 로마 시민들이 로마군에 입대하지 않고 외국의 용병에 의존하게 되면서 로마는 군인들에 좌지우지 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

군대로 흥한 로마는 군대로 멸망했다. “군인들 없이는 존속할 수 없으면서도 군인들 때문에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게 된” 역설적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로마제국 후기에는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군인황제들이 재임하다 암살당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자신의 시민군으로 군대를 유지할 수 없었던 로마는 거대한 영토를 지키기 위해 야만족이라 치부하던 외국의 종족들을 로마군으로 편입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의 용병에 의존하게 되면서 위대했던 로마는 서서히 무너져갔다. 특히 고트족, 훈족 등의 잦은 침략에 서로마가 먼저 무너졌다. 그나마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한 동로마는 1453년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

몽테스키외는 로마 멸망의 결정적인 요인을 로마 제국을 침입하며 위협하던 이민족들을 각종 금품과 공물로 달래려 했다는 점을 든다. “평화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화를 판매한 사람은 그 후 다시 사도록 강요할 수 있는 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셈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평화를 얻으려고 돈을 주기보다 차라리 지더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을 벌이는 편이 더 나을 때가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

로마가 세계 최대 판도의 대제국을 만들고 법률과 제도, 문화와 예술 등 찬란한 문명을 만들어낸 것은 틀림없다. 또 황제정으로 전환된 후에도 오현제(五賢帝)처럼 훌륭한 황제가 있었다. 하지만 상당수 어리석고 포악한 황제에 의해 인민 대중을 예속시키고 시민정신을 타락시킴으로써 번영을 구가하던 로마를 멸망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

   
▲ 로마의 오현제 가운데 한 사람으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이다. 로마의 카피톨리노 광장에 있다. ⓒ박경귀

몽테스키외는 위대한 로마 문명 전반을 조명하기보다, 로마 정치체제의 변동, 즉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전환되면서 민중, 원로원, 황제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변모하게 되고, 그런 영향이 국가의 운영방식의 견실한 토대를 어떻게 무너뜨리게 되었는지를 통찰하고 있다.

특히 초기 공화정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로마의 장기간의 평화와 번영이 황제와 민중의 미덕을 타락시키고 쇠락하게 되는 과정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훗날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삼권분립의 체계를 강조하는 것도 로마 멸망에서 얻은 통찰의 투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로마는 내부의 분열 때문에 몰락한 것이 아니라 너무 빨리 이룩한 번영 때문에 몰락한 것이라는 몽테스키외의 통찰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를 준다. 결국 로마의 강인한 군인정신과 덕성을 지닌 시민정신이 쇠락하면서 멸망한 것이다. 로마 시민이 지키던 국경의 안전을 외적에게 돈을 주어 지키게 하고, 종국에는 군대마저 용병에게 맡기게 됨으로써 로마는 자멸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건강한 국민정신을 유지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때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 추천도서: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 샤를 드 몽테스키외 지음, 김미선 옮김, 사이(2013), 3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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