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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이 와중에…이명박 회고록이 수상한 까닭

2015-02-02 09:18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김흥기 교수

출간을 앞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내용이 공개되면서 세상이 시끄러워지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출간시기와 내용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그 중심이다.

물론 속인으로 돌아간 전직 대통령이 글을 쓰고 책을 내겠다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현직임에도 회고록을 썼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표현의 자유가 있다.

회고록에는 이 전 대통령이 외국정상들과 나눈 민감한 대화가 자세히 소개돼 있다. 2011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대해 전해들은 얘기는 물론 2012년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만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 대해 나눈 내밀한 대화는 ‘질문과 답변’ 식으로 상세히 밝히고 있고 심지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물밑 접촉과정까지 담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 비화를 공개한데 따른 논란에 대해 언급을 삼가고 있지만 여당과 야당 공히 공직 재임 중 알게 된 비밀을 퇴임 후에도 말할 수 없도록 규정된 국가공무원법과 형법을 들며 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출판을 멈추라고 촉구하고 있다. 회고록의 내용들이 공개되는 게 적절치 않다는 반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외치면서 북한과 계속 대화를 계속 시도하여 남북정상회담 성사가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마당에 이 전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경색시킬 민감한 내용을 공개하는 게 과연 잘한 일일까?

또한 회고록에는 세종시 수정안 등 이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친이와 친박이 격렬히 싸웠던 매우 민감했던 이슈도 담겨 있다. 2010년 당시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자 박 대통령은 신뢰를 강조하며 원안을 고수하며 세종시 수정안을 국회에서 부결시킨 내용인데, 회고록은 박 대통령과 친박이 (말로는 신뢰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정운찬 당시 총리가 대선후보로 부각됨을 막기 위해 수정안을 부결시키고 이명박 정부의 국정동력을 무너뜨렸다는 의혹을 제기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

   
▲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시민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출간은 과연 적절한가?

회고록이 800쪽이 넘는 걸 보면 이 전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이 많은가 보다. 하지만 왜 하필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에 회고록을 내려 하는가? 그렇잖아도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은 발간될 때마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파장을 일으키곤 하지 않았던가.

‘사자방’에 대한 검증이 임박한 시기에 출간하는 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의심받기 충분하다. 자기자랑과 비겁한 자기변명으로 치부되기 쉽다. 조지 오웰은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고 경고한바 있다. 벌써부터 야당에선 ‘회고록 아닌 참회록’을 써야 한다는 비꼬고 있다.

지금 국내 상황은 좋은 게 별로 없다. 청년실업 9%, 빈부격차, 급속한 노령화 등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치고 있고 당·정·청의 혼란상을 보면 가히 비상시국이라 할 만하다.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아도 살까 말까 한 때에 전직 대통령이 정상회담의 비밀을 공개해 나라망신을 시키는 것도 모자라 ‘잘한 건 내 덕, 못한 건 네 탓’이라며 소모적 논쟁거리를 제공해야 직성이 풀리는가?

물론 이 전 대통령은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충정과 훈수 둔다는 마음으로 회고록을 출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이 국가기밀에 해당되거나 현 정부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거나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설계에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면 이러한 출간은 스스로 자제해야 맞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출간을 강행한다면 이 전 대통령의 진정한 집필의도가 무엇이건 필부들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할 것이다. 이 전 대통령과 친이 세력이 향후 정치권력의 패권을 놓고 박 대통령과 친박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이라고. 총선과 개헌을 놓고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앞당기고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는 뒤죽박죽의 혼전양상 속에 새로운 권력질서를 재편해내려는 기회주의적 정략일 뿐이라고. /김흥기 모스크바 국립대 초빙교수, 베스트셀러 '태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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