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서우 기자] 롯데가 이베이코리아를 놓친 것은 패배가 아니라 계산된 움직임이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내 전자상거래(e-commerce,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 3위인 이베이코리아는 매력적인 매물임이 분명하지만, 롯데가 인수 가격경쟁에서 마지막까지 ‘사활’을 걸지 않은 데는 냉정한 가치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롯데그룹 온라인 쇼핑 통합 플랫폼 롯데온 마스코트(왼쪽)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오른쪽)/사진=롯데 제공
21일 유통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일 이베이코리아 본입찰에서 신세계-네이버 컨소시엄은 인수가로 약 4조5000억 원, 롯데그룹은 이보다 1조원 가량 낮은 3조5000억 원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신세계가 선정되자. 업계에서는 롯데 자금력이 신세계-네이버에 밀렸다고 보기도 했다. 그러나 롯데는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했을 경우 시너지 효과 등을 검토했을 때 보수적으로 금액을 산정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롯데에게 이번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은 강한 의지보다는 ‘되면 좋고’ 정도의 분위기였던 것으로 읽힌다.
롯데가 제시한 금액 3조5000억 원은 신세계뿐만 아니라, 이베이코리아가 제시한 매각가 4조5000억~5조원에도 훨씬 못 미친다. 강희태 롯데쇼핑 부회장도 지난 18일 사내망을 통해 직원들에게 이번 인수전과 관련 “보수적으로 접근했다”고 밝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올 상반기 사장단 회의에서 “필요한 투자는 과감하게 진행해야 한다”면서도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해 차별적인 기업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베이코리아는 G마켓과 옥션 등 오픈마켓을 무려 20년 간 안정적으로 운영해 온 노하우를 갖고 있지만, ‘새롭지 않다’는 게 롯데에 걸림돌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와 쿠팡 등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이베이코리아 시장 점유율은 2015년 이후 줄곧 하락세다. 단순 점유율 합산으로 이베이코리아(12%)를 가진 자가 ‘이커머스 2위’가 된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사실 이베이코리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점유율 보다 방대한 소비자 빅데이터”라며 “롯데는 이베이코리아 실사 정도에 의의를 뒀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시장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던 롯데는 지난해 4월 7개 계열사 온라인 통합 플랫폼 ‘롯데온’ 출범으로 변화를 시작했다. 롯데온 자체 점유율(5%)만으로는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신세계 SSG닷컴 3% 보다 앞선다.
외형확장을 위해서는 외부 수혈이 필수적이지만, 단순히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인수합병은 지양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올 초 롯데는 국내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에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고급화를 지향하는 정통 백화점을 운영하는 롯데와 중고 거래의 만남은 꽤나 이색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MZ세대 새로운 소비·재테크 문화인 리셀(고가의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것) 플랫폼이 신설되거나, 소비자 중고거래 오프라인 거점역할을 롯데쇼핑 유통채널이 할 수 있다는 등의 전망이 나왔다. 이따금 중고 상품 기획전을 여는 롯데렌탈의 플랫폼 ‘묘미’와의 시너지도 기대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같은 변화의 맥락에서 롯데가 배달앱 시장 2위 ‘요기요’ 본입찰에 참여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롯데 측은 “전혀 논의하고 있는 부분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유통공룡 롯데의 행보를 지켜보는 업계의 관심은 계속되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롯데온을 중심으로 그로서리와 럭셔리, 패션·뷰티, 가전 분야에서 특히 차별화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며 “M&A도 지속적으로 검토한다”고 말했다.
한편 신세계는 현재 단독으로 이베이 본사와 이베이코리아 인수 방식 및 지분 등에 대한 막판 협상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시중 은행 등에 대출의향서도 제출했다. 당초 신세계는 네이버와 손잡고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할 계획이었으나, 네이버가 막판에 발을 빼는 모양새다.
지난 3월 예비입찰에 참여했던 홈플러스 최대 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 SK텔레콤 등은 본입찰에 불참했다.
[미디어펜=이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