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
9.11 이후, 지금은 ‘에너지 패러다임 시프트’ 시대
2001년 9월 11일, 세계는 바뀌었다. 아무도 상상 못한 방식으로 뉴욕 맨하탄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다. 헐리우드 영화의 기발함을 뛰어넘는 테러였다. 수도 워싱턴 DC를 포함한 미국 본토는 사상 최초의 외침을 받았다. 이후의 국제정치는 반테러 전쟁(Anti Terror Warfare)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몇 년이 지나 중국의 부상이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Rise of China, 중국의 경제적 성공은 미국에서 G2라 부를 정도로 강렬했다. 인구 13억 중국은 독일과 일본을 제치고 미국 경제규모의 절반에 이르렀다. 성장 속도가 저하되었지만 여전히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일구어 나가고 있는 중국은 경제대국으로 커가고 있다.
2015년 지금은 American Energy Bom, 미국의 에너지혁명 시대다. 셰일가스 채굴기술 개발 이후, 미국에서 촉발된 셰일가스 상업화로 인해 석유 및 천연가스가 급격하게 증산되고 있다. 2007년에서 2013년 간 미국 천연가스 생산량은 50% 증가했다. 천연가스 가격은 폭락했다.
앞으로 몇 년 내에 미국은 세계 최대의 석유․천연가스 생산국이 될 뿐 아니라 석유수출국으로 전환될 것이다. Exon Mobile 2013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미국은 2025년 에너지 수출국(net energy exporter)이 완전히 전환된다고 한다. 이미 지난 2013년부터 세계 최대의 석유 수입국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
참고로 개발 가능한 에너지 부존량에서 미국은 러시아, 중국, 사우디를 앞서고 있다. 미국은 세계의 17%, 러시아는 16.6%, 중국은 8.3%이다. 미국 에너지성 에너지정보원(Energy Information Agency)의 평가에 의하면, 미국은 현재 100년 이상 사용가능한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 미국의 오바마, 중국의 시진핑. /사진=CNN 뉴스 캡처 |
미국은 지금껏 석유생산금지법과 수출제한법을 통해 에너지 생산을 제한해 왔다. 하지만 최근 미국은 대륙붕 석유개발을 천명했다. 셰일가스를 비롯하여 에너지 생산을 점차 늘려가겠다는 의지다.
10년 전, 미국은 사용하는 석유의 60%를 수입에 의존했다. 7년이 지난 2012년, 미국은 석유 사용량 중 42%만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다. 현재 일본이 수입하는 양 만큼의 물량이 국제시장에 남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다 셰일가스의 은총이다. 지금은 ‘에너지 패러다임 시프트’의 시대다. 에너지 최대 소비국인 미국이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저유가의 경제학, 미국과 사우디
2014년 초 배럴당 110달러였던 국제유가는 1년 뒤인 2015년 2월 48달러까지 하락했다.
지난 몇 개월간 저유가 기조를 촉발한 방아쇠는, 에너지 시장의 투기 세력이 빠지면서 셰일가스 석유 공급이 늘어난 것이었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가 판매가를 고려치 않고 더욱 증산함으로써 방점을 찍었다. 진짜 방아쇠는 사우디의 증산이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이 조금씩 늘다가 갑자기 더 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지금의 가격대가 형성되었다.
참고로 현재의 유가 48달러를 견딜 수 있는 나라는 사우디가 유일하다. 배럴 당 채굴 생산비용이 30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사우디는 가장 강력한 원가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사우디는 미국 셰일 석유 업자들을 파탄 낼 목적으로 석유를 무제한 채굴하고 있다. 그런데 이 때문에 곡소리 나는 곳은 미국 셰일 업자들이 아니라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등 생산원가가 훨씬 더 높은 나라들이다. 미국 셰일 오일의 생산단가는 60달러이지만, 러시아 베네수엘라 이란 등은 100달러를 넘는다.
▲ 1월 22일 국제유가가 일부 석유화학 기업의 투자 축소 발표와 주요 에너지 기관의 반등 전망, 유로화 약세 등으로 상승 마감했다. /사진=뉴시스 |
러시아의 붕괴 위험, 중국의 어부지리
현 저유가 기조가 지속될 경우 러시아는 파국의 길을 걷게 된다. 러시아는 배럴당 100달러로 유지되어야 재정수지가 맞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금 러시아는 원유를 생산할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다.
미국이 천연가스를 액체화 시킨 후 독일 등 유럽으로 수출하면 러시아 천연가스의 판로는 자연스레 축소된다. 미국 천연가스 BTU 가격은 3~4달러이다. 유럽은 14달러, 아시아는 16달러다. 러시아에 비해 미국 천연가스의 가격경쟁력은 압도적이다.
반면, 셰일가스로 인한 유가 하락은 중국에게 나쁘지 않다. 이에 발맞추어 중국은 석유 비축량을 늘리고 있다. 낮은 유가가 유지된다면 세계 최대의 석유 수입국인 중국에게 이익이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베네수엘라 이란 등 중소 생산국들의 석유 산업이 정리된 뒤 가격이 안정화될 것이라 보고 있다. 지난 며칠간 유가가 반등한 것도 고무적인 사실이다. 비록 50불 초반 대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말이다.
중국에도 셰일가스가 있다. 오히려 셰일가스 부존량으로는 미국을 능가한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처럼 셰일가스를 개발하기 힘들다. 중국은 수자원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오지에 셰일가스가 매장되어 있어 모든 시설을 새로이 깔아야 한다. 수십 년 간 유전 위치파악과 공정기술 축적이 이루어진 미국과 비교하면 중국은 이제 첫 걸음을 내딛는 수준이다.
중국은 미국을 따라잡기는 더욱 힘들어졌지만, 유가하락의 기조를 잘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러시아와 달리 천연자원 채굴 및 자원 수출에 의존하는 나라가 아니다. 중국은 시장경제 자유가 보장되면서 상속세가 제로인 나라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성장 기로에 있으며 기업과 개인, 부자들은 계속 커가고 있다. 중국이 현재의 국지적 패권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최고의 부를 이루려는 바램에, 셰일가스 시대는 보탬이 될 것이다.
▲ SK인천석유화학 단지. /사진=뉴시스 |
에너지독립국 미국의 앞날, 그리고 한국
미국은 향후 에너지를 자급자족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앞날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언급되고 있다. ①러시아의 붕괴 위험, ②중동이 미국 외교정책에서 별 볼 일 없는 지역이 되는 것, ③미중 패권 전쟁에서 미국이 완전한 승자로 남는 것, ④석유 덕택에 미국은 22세기까지 슈퍼파워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지킬 것 등 여러 가지가 꼽힌다.
그런데 이 중 우리나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나리오가 하나 있다. ⑤에너지 독립국으로서 누구와도 싸울 일이 없는 미국이 스스로 세계경찰국의 지위를 버린다는 시나리오다.
미국이 세상일에 관심을 꺼버리면 지금의 국제 질서가 유지될까? 북핵에 따른 위협과 통일의 기회와는 별개로, 한미동맹이 계속 유지될지 의문이기도 하다. 동북아 한가운데 반도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는 초강대국 고래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 속에서 한국이 돌고래처럼 질주할 것이냐, 새우로 등터질 것이냐는 우리나라 위정자들의 역량에 달려 있다.
저유가 셰일가스시대, 한국의 과제는
저유가 셰일가스시대를 맞아,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국내 산업 추이는 다음과 같다. ①국내 LNG 도입선 다변화와 가격협상력 증대, ②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상대적 경쟁력 증가, ③저유가로 인한 제품가격 하락 및 화학제품 수요 증가 기대, ④발전원가 하락, ⑤해운산업의 LNG 물동량 증가, ⑥수출 증가하는 강관 업계, ⑦기계산업 대미수출 급증, ⑧기회와 위협이 상존하는 조선업 등이다.
현재 한국 석유화학 업계의 업태는 나쁘지 않다. 기업들은 정유 고도화 설비 등을 십분 활용한 콤플렉스 마진의 증가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매출은 떨어지고 있지만, 현재의 유가 변동 상황은 일시적이기에 업계에 큰 의미는 없다고 분석되고 있다.
지금껏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평을 듣던 유가다. 지금은 일종의 ‘유가 비정상의 정상화’ 단계라고 한다. 원가 하락으로 인해 제조업 경쟁력은 올라갔다. 기업별로 주력업종의 재편과 중흥을 꾀할 좋은 기회다.
▲ 해저 석유 탐사. /사진=한국석유공사 제공 |
저유가 셰일가스시대는 에너지 가격의 하락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산업에는 좋은 기회이다. 그런데 에너지 가격의 하락은 궁극적으로 우리 삶에 어떠한 의미와 개선을 가져다줄까?
풍족한 자원을 저렴하게 이용만 한다면, 우리가 누리는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는다. 무인작동로봇, 인공지능, 가상현실, 나노생명의학, 신소재화학 등 앞으로의 먹거리로 작용할 신산업 분야에서 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쟁과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의료와 교육, 유통과 각종 서비스업이 돌아가는 칸막이 식 규제와 사회주의 방식의 법제도는 여전하다.
경제는 자원의 풍족함으로 인해 발전하지 않는다. 자원의 부족함을 딛고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사람의 역량에 달려 있다. 이러한 사람의 역량이 최대한 발전되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것 또한 필수적이다. 관건은 사람과 제도다. 이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혁신의 자유, 시장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재산권 보호 기조와 법치주의가 쇠퇴한 나라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이는 저유가 셰일가스시대의 파고를 현명하게 넘는 유일한 방법이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