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 후 통합 방향에 대한 계획안을 확정해 경쟁 당국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관계 기관이 심사를 미루고 있어 대한항공의 경영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자금력이 탄탄한 새 주인을 만나게 된 이스타항공은 채무 조정 등 행정 절차만 거치면 되나 추후 경영진 선임이 중요한 이정표로 작용할 전망이다.
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최근 대한항공은 주채권자 한국산업은행의 검토와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를 거쳐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 통합 계획(PMI)'를 최종 확정지었다. 지난 3월 산업은행에 PMI를 제출한 지 4개월 만이다.
앞서 대한항공은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 신주 인수·영구전환사채 인수 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에어서울 등 자회사에 대한 재무·현장 실사를 진행한 바 있다. 최종 PMI안에는 운임·고용·MRO(항공기 유지·보수)·협력사 상생 협력 등이 사항이 반영됐고, 이는 산은이 요구한 수준에 부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아울러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한진칼의 행위 제한 이슈 해소 방안·고용 유지·단체협약 승계 방안·지원사업 부문 효율화 방안 등도 포함됐다. 이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의 자회사가 되며, 최대 2년 내로 법인이 소멸돼 '통합 대한항공'으로 거듭나게 된다. 같은 기간 통합 LCC 또한 대한항공 자회사가 된다.
PMI에는 운임 인상 억제 방안도 명시됐다. 통합 대한항공 법인은 점유율이 높은 노선은 운임관리대상 노선으로 선정하고 관련 자료를 국토교통부 운임 심사 담당 부서에 제출해 검증받는다는 계획이다.
산은은 대한항공과 체결한 약정에 따라 설치된 경영평가위원회를 통해 PMI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감독한다.
이를 비춰볼 때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는 게 항공업계의 중론이다. 그러나 여전히 M&A 과정 상 불안한 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 결합 심사 지연이다.
당초 공정위는 지난 2월 서강대학교 산학협력단과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에 대한 경제분석 연구용역' 발주를 계약하며 기한을 6월 초로 설정했으나 10월 말로 연장했다. 때문에 공정위가 2024년 1월 통합 대한항공을 출범시키고자 했던 계획을 세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우기홍 대한항공 사장 등 경영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 일정 연장으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M&A가 지연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공정위 결정이 하염없이 늦어지면 타국 경쟁 당국 승인도 줄줄이 미뤄진다. 이에 따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부담해야 하는 금융 비용도 커지고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항공경영대학 교수는 "공정위는 양대 항공사 간 합병 거부는 할 수 없으되 전문가들의 자문도 구하지 않고 여론의 눈치만 살피며 시간만 질질 끈다"고 질타했다. 그는 "경쟁 당국은 과거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합병 사례 등에서 나타났던 폐해만 의식한다"며 "아시아나항공이 죽어가는 와중에 전문성 부족을 기관의 권위로 감추며 속 편한 소리만 한다"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실제 공정위는 대한항공-델타항공 간 조인트 벤처에 대해서도 수개월 간 답을 내지 않은 전례가 있다. 반면 미국 연방 교통부(DOT)는 "두 항공사 간 협정이 공익을 해치지 않고 경쟁을 막지 않는다"며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에 반독점면제권을 부여했다. 독과점에 의한 소비자 편익 훼손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지루했던 이스타항공 M&A 버퍼링, 자금력은 문제 없다
이스타항공은 중소 건설업체 성정의 품에 안기게 됐다. 이로써 제주항공과의 협상이 결렬된 이후 계속 표류하고 있던 M&A에도 종지부를 찍게 됐다. 다행히도 이스타항공은 대한항공과 같은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는 없어 자체적인 문제만 해결하면 경영 정상화는 무리 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성정은 5년 간 직원 고용 승계를 천명하며 1087억 원에 이스타항공을 인수했다. 이에 따라 국토부 운항증명(AOC) 재취득 등이 현업 과제이나 채무 조정이 급선무다. 성정은 공익채권 800억 원과 매출채권을 포함한 각종 문제 해결 등에 2000억 원을 쏟아부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중소 부동산 업체에 불과한 성정이 해낼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형남순 성정 회장 개인 자산이 수천억원대에 이르러 통 크게 베팅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타항공의 자금난 이슈는 금방 사그라들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주기장에 서있는 이스타항공 여객기./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이스타항공 정상화에 성정은 50억 원 씩 20개월 간 약 1000억원 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중에는 여객기 리스 비용과 직원 급여 등 각종 운영비가 포함 돼 있다. 내년 하반기 말이면 손익 분기점을 계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성정 측 계산이다. 이익은 낼 수 없어도 수지타산이 0에만 수렴해도 경영 정상화 시점으로 보겠다는 뜻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타항공의 차기 대표이사직에는 누가 오르느냐는 것이다. 현재 정재섭·김유상 이스타항공 공동 관리인 체제는 오는 10월 종료된다. 형남순 회장 측근 중에는 항공업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해당 인사가 이스타항공 경영을 맡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가능하다.
한때 이스타항공은 20여대의 여객기를 보유했을 만큼 규모가 상당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19대를 돌려보내 4대만 남은 상태다. 얼마 전 이스타항공은 다시금 20대로 사세를 확장해 중동 노선을 확보하겠다며 사세 재확장을 천명했다. 이 역시 경영진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해결될 것인 만큼 형남순 성정 회장의 움직임에 귀추가 주목된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