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서영 기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에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법원의 하나-외환은행 합병절차 중단 가처분 결정으로 위기의 계절을 탈출하겠다는 양행 모두 망연자실이다. 외환은행 노조조차 법원의 합병 중지 명령을 예상하지 못했고, 하나금융이나 외환은행 사측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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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법원의 결정으로 외환-하나은행 합병은 오는 6월30일까지 오고가도 못하는 신세에 처했다. 결정문에서 "외환은행은 금융위원회에 하나은행과의 합병을 위한 인가를 신청하거나 하낭느행과의 합병을 승인받기 위한 주총을 개최해서는 안된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이 하나은행과의 합병을 승인받기 위해 개최한 주총에서 합병승인에 찬성하는 내용의 의결권을 행사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했다.
하나와 외환간 2·17 합의에 따라 5년간 독립경영을 보장돼야 하며 노조와 협의를 통해 합병을 이뤄진만큼 강행법규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서 무효라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한 합의서 체결 이후 금융환경의 구조적 변화로 국내은행산업 전반의 실적과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실적이 현저히 악화되는 등 당장 합병하지 않으면 외환은행의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도 아니므로 합의서의 효력이 실효되었다고 볼만한 사정변경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판단 사유를 들었다.
법원의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일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처사다. 현지 우리 경제는 내우외환이다. 밖으로는 국제유가 하락으로 직격탄이 자본시장이 취약한 신흥국게 포문을 열 기세다. 글로벌 국가들은 안방에 몰아닥친 디플레를 방어하려고 돈풀기와 유연한 통화정책을 펼치며 환율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결국 2008년 때와 마찬가지로 신흥국으로 도미노처럼 외환위기가 이어지면 세계 경기 침체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에도 큰 충격을 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안으로는 내수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대통령마저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된다며 절박한 심정으로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분위기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화약고가 돼 버린지 오래다.
금융산업은 더 부담이다. 저성장, 저금리, 저수익, 노령화 등 맞닥드린 파고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어렵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예대마진이 크게 줄어들었다. 특히 서비스 수수료 규제에 따라 알맞은 수준의 수수료를 받지 못하면서 국내은행의 비이자수익 대 이자수익의 비중은 1대9 수준에 다다랐으며 적정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작금의 금융산업이 위기의 계절을 맞고 있는데도 법원은 현실과 동떨어진 결과를 내놓았다.
금융산업은 신뢰산업이다. 이미지를 먹고 산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자금난에 허덕이던 외환카드가 외환은행으로 합병될 당시를 떠올려보자. 외환카드 노조의 파업으로 고객들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외환카드가 자금을 조달하지 못한채 현금서비스 중단 사태가 터지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고객들은 신뢰가 무너진 외환카드에 등을 돌리고 말았다. 외환카드 전 관계자는 "그때 파업등의 여파로 대다수의 우량 고객을 놓친 것이 아쉽다"며 "새 고객을 찾는 것도 힘들지만 등 진 고객들을 다시 되돌리도록 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나-외환은행의 조기통합 명분은 수익성 악화다. 하지만 조기통합으로 2년간 1조원의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비용절감과 수익증대 시너지는 5년간 3121억원의 시너지를 도출 가능하다는게 하나금융의 입장이다.
여기에 5년간 외환은행 독립경영을 보장했더라도 이런 현실에서 투뱅크(Two-Bank) 체제의 비효율적인 운영보다 조기통합만이 타은행과의 경쟁선점과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기대감도 뚜렸했다.
언제까지 합병 논란이 이어질지 외환은행 내부에서도 근심이 가득하다. 은행권 발전보다 불안한 미래가 엄습해오는 상황에서 연이은 합병 이슈로 인해 타 은행과의 경쟁에서 도태되고 갈등국면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노조는 '진정성'만 외칠 뿐 사측과 위기위식을 공유하지 않은채 철없는 약속지키기 타령만 할 것인가. 노조의 투정을 받아 줄 아량도 여유도 없다. 금지옥엽같은 시간을 허비할수록 외환은행이나 하나은행 모두 득 될게 없다.
때를 놓쳐서는 안된다. 한시라도 한눈을 팔게 되면 고객을 잃게 되고 노사가 하나된 의지가 없으면 경쟁력만 갉아 먹을 수 밖에 없다.
기업의 경영권한과 결정은 경영권의 문제다. 법을 존중함은 당연지사지만 기업의 존망성쇄가 판가름 나는 시점에서 기업경영의 독립성을 보장해주기는 커녕 법을 내세운 월권행위는 '지록위마(指鹿爲馬)'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