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계기로 추진됐던 스가 요시히데 일본총리와의 첫 한일 정상회담이 결국 무산됐다.
수출규제 조치 철회 등 한일관계 복원을 놓고 양측이 치열하게 신경전을 전개하던 와중에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막말이 기름을 부은 격이 됐고, 이에 대한 일본정부의 소극적인 조치가 결국 문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9일 오후 “한일 양국간 역사 현안에 대한 진전과 미래지향적 협력 방향에 대해 의미 있는 협의를 나눴다”며 “양국간 협의는 정상회담의 성과로 삼기에 여전히 미흡하며, 그 밖에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번에 양국간 현안을 전반적으로 협의했지만 아직 더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봤다. 전반적으로 조금씩 진전은 있었다”면서 일본 공사의 막말에 대해 “용납하기 어려운 발언이었다. 국민정서를 감안해야 했고, 이후 청와대 내부 분위기도 회의적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는 16일 한국 기자와의 식사자리에서 문 대통령의 한일관계 행보를 ‘마스터베이션’(자위행위)에 빗대는 막말을 했다. 이 보도가 나온 이후 문 대통령의 방일에 대한 국내 여론이 악화됐다.
문 대통령의 방일 협의 중 일본은 방위백서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을 했고, 도쿄올림픽 홈페이지 독도 표기 문제가 불거졌으며, 도쿄올림픽 선수촌 한국선수단 거주 층의 '이순신 장군' 현수막이 내려지는 일도 벌어졌다.
소마 공사의 막말에 대해 주한일본 대사가 “매우 유감스럽다”고 표명한 뒤 19일 오전 일본정부 차원에서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날까지도 소마 공사에 대한 경질이 발표되거나 이뤄지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일본정부는 적절한 후속 조치를 조속히 취해야 할 것이며, 향후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오른쪽)./사진=청와대 ·로이터
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첫 만남은 지난 6월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때 추진된 바 있다. 하지만 돌연 일본측의 거부로 마지막 순간에 한일 정상회담은 무산됐다. 이후에도 우리정부는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계기로 문 대통령의 방일을 추진했다. 이후 한일 양국은 ‘명분’과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기싸움을 벌였다.
한일 당국간 물밑에서 진행되던 협의 사실이 일본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일본매체의 보도로 지난달 22일 처음 공개됐다. 이후에도 일본매체는 한국이 일본에 문 대통령의 방일 의향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마치 한국이 일본에 매달리는 식이란 뉘앙스가 담겼다. 이에 대해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국내 방송 인터뷰를 통해 “품격 있는 외교”를 주문했다.
이후에도 일본측은 문 대통령의 방일을 기정사실화하면서 “15분 회담”이라는 말로 형식적인 회담을 예고했다. 일본 매체들은 11일 총리관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측의 정상회담 개최 요구를 수용했다고 밝히면서도 “1인당 15분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박 수석은 14일 “15분 회담을 해도 양국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성과가 나와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우리정부는 지난 2019년 7월부터 일본정부가 한국에 대해 조치하고 있는 수출규제 철회를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성과로 삼을 의제 및 선결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여러 차례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의 방일 계기로) 한일 간 갈등이 풀리는 성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상식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언론도 수출규제 철회와 지소미아 안정화를 정상회담 의제로 논의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한 ‘스가 내각’은 도쿄올림픽 개최를 고집하면서 지지율이 더욱 곤두박질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정부의 수출규제 철회를 수용하면서 한일관계 개선에 집중할 여력이 없어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선거를 앞둔 스가 내각이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정치적 셈법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 문 대통령의 임기 내 한일관계 개선 기회를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됐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이 끝나고 가을에 총선거를 치를 예정이고, 한국도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한일관계를 개선할 기회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