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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프리즘] '징비록' 현실을 향한 류성룡의 직언, 가슴이 쓰린다

2015-02-15 19:23 | 김연주 기자 | office@mediapen.com

‘징비록’이 첫 방송부터 의미와 인기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

14일 방송된 KBS1 대하드라마 ‘징비록’의 첫회는 10.5%(닐슨코리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작에 대한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증명했다. 지난해 1월 첫 방송된 ‘정도전’(11.6%)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 KBS1 '징비록' 화면 캡처

강렬한 첫인상, ‘명분’ 선조와 ‘실리’ 류성룡의 대립

첫방송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1604년 류성룡이 지난 전쟁을 회상하며 징비록을 집필하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이야기는 곧장 임진왜란 전인 1589년(선조 22년)으로 돌아가 통신사를 보내달라는 왜의 요청을 두고 대립하는 류성룡(김상중)과 선조(김태우)의 모습을 그렸다.

이 당시 조정 대신들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당파싸움에 한창이었다. 왜에서 온 사신들이 통신사를 보내달라 간청하자 선조는 “왜와 국교를 맺는다면 금수와 다를바 없고, 명나라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류성룡을 비롯한 조정의 주요 대신들은 관백의 상태만이라도 살피자며 선조에게 간청했지만 쉽게 설득되지 않았다. 여기에 당파싸움까지 겹쳐 서인과 동인은 치열하게 대립했고, 백성들 또한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류성룡과 동인은 이후 겨우겨우 선조의 마음을 돌려 조건부로 사신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때 서인 송익필(박지일)의 계략으로 정여립의 역모 사건이 벌어졌고, 조정에 피바람이 예고됐다.

첫 방송에서는 명분에 집착하는 선조, 이와 대척점에서 실리를 따지려는 류성룡의 대립과 함께 동인과 서인의 당파싸움이 역모사건으로까지 번지는 과정을 그렸다. 전쟁을 앞둔 위기에 처했으나 까맣게 모르고 있던 조선 조정의 안일함이 교과서에서 보던 것보다 상세하게 설명돼 이해를 높였다.

특히 류성룡은 임금과 맞설 만큼 고집있고, 백성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인물로,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정치인으로 설명 할 수 있었다. 앞으로 그의 신념이 부를 고난과 주변인물의 고통이 예견되기도 했다.

   
▲ KBS1 '징비록' 화면 캡처

지금 우리에게는 왜 징비록이 필요한가

왜 지금 시기에 징비록이 필요한가에 대답은 류성룡이 이를 집필한 이유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징비록은 1592년 임진왜란 발발부터 7년여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대비책까지 두루 담고 있다. 제목부터 ‘시경(詩經)-소비편(小毖篇)’의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예기징이비역환(豫其懲而毖役患)’에서 따왔다.

첫 장에서 류성룡은 참혹했던 7년 전쟁을 돌아보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조정의 실책들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해야 한다고 썼다. 시시각각 변하는 경제상황과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국제적 힘의 논리에서 ‘대비’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만큼 현재에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많다.

징비록은 이와 함께 류성룡, 선조, 이순신 등 당시 전쟁의 명과 암을 함께한 주요 인물 뿐 아니라 외교문제와 피폐해진 백성들의 현실에도 시선을 나눴다. 전쟁 이전의 왜와 조선의 관계에서 전쟁 후 명이 끼어든 삼각구도는 물론, 전쟁으로 인해 10분의 1로 줄어든 백성들의 ‘죽지못해 사는 삶’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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