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을 일부 수정하겠다고 밝혔지만, 5배 징벌적 손해배상 등 핵심 내용을 그대로 살리고 독소조항(법률에서 본래 의도하는 바를 교묘하게 제한하는 항목) 또한 남아있어 '꼼수' 논란이 일어났다.
현재 민주당을 제외한 국회 내 모든 정당·언론계·시민사회단체 전부 언론중재법을 반대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위공직자·선출직공무원·대기업 임원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사람들이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도록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으로 수정하겠다고 밝히면서 '2차전'이 펼쳐지고 있다.
손배 청구 자격을 제한하기로 했지만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배를 물게 하겠다는 기존 개정안 의도는 그대로 살아있어 법률 상의 비례의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
또한 민주당은 이날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자가 고의·중과실 추정의 주체임을 명확히 하여 입증 책임에 대한 모호함을 없애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이번 개정안의 핵심인 '악의를 가지고 허위·조작 보도를 한 경우'라는 문구 삽입에 대해서는 삭제하겠다는 언급이 없었다.
법조계는 '악의를 가지고 허위·조작 보도를 한 경우'에 대한 판단기준이 모호해 해석하는 사람 입장에 따라 다르게 주관적으로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가 7월 28일 "법안소위를 통과한 언론중재법의 상임위 전체회의도 속도를 내겠다"면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겠다고 밝히는 모습이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8월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도 법안 처리 의지를 재확인했다. /사진=민주당 제공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직 부장판사는 13일 본보 취재에 "손배 청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일부 제한한다고 해서 언론사에게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며 "허위·조작 보도에 따른 중과실 추정 조항의 명확성이 떨어지고 추상적이다 보니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작동하는데, 민주당은 '악의'와 '허위·조작'을 누가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느냐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위공직자나 선출직공무원이 징벌적 손배 청구를 할 수 없게 하겠다는 수정안도 가관인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례를 생각해 보자. 같은 일이 누군가에게 일어났을 때 현직 장관이 자진사퇴 후 자연인으로 돌아가서 언론사들에게 징벌적 손배 청구를 하면 본래의 의도를 절반은 달성할 수 있다. 이번 수정안 제시는 징벌적 손배 청구를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여당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이번 법 개정안은 지금까지 나온 수정안 내용으로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여전히 제한받고 있다"며 "형벌 법규는 범죄 구성요건과 법적 결과인 형벌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하는데 이러한 '명확성의 원칙'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열람차단 청구권을 의무화한 조항을 삭제하겠다고 하지만, 수정안에는 '공익성 혹은 진실이라 믿을 상당한 이유'라는 위법성 조각사유를 무력화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 그대로 살아 있다"고 강조했다.
지방청의 한 부장검사 또한 본보 취재에 "수정안을 적용하더라도, 전직 선출직공무원이나 고위공직자였던 사람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대리해서 대신 고소해 소송전에 들어갈 수 있다. 일반인 수준의 정당인이라도 정파적 입장에 따라 '언론 보도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고소할 수 있다"며 "누구나 훨씬 더 수월하게 소송을 제기할 법률적 여건은 완비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법안은 손대야 할 독소조항이 다수 있어 사실상 개정안을 수정하기 보다는 철회해야 할 것"이라며 "언론사의 '기자에 대한 구상권' 또한 민법으로 충분히 보장되는 내용인데 이를 명시하고 있을 뿐더러, 형법상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도 이미 규정되어 있어 이중처벌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교묘하게 언론의 힘을 빼버리고 알아서 사전검열해야 하는 분위기로 몰고 가는 독소조항들은 민주당이 제시한 수정안에 여전히 살아있다"며 "손배 청구할 수 있는 자격만 일부 줄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게 없다"면서 지적하고 나섰다.
실제로 한국기자협회·전국언론노동조합·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는 13일 공동입장문을 내고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독소조항, 언론의 비판 감시 기능 위축, 위헌 가능성 등 언론계와 학계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광범위하게 문제점을 제기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일부 수정이 아니라 원점에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수정이 아니라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언론인을 대표하는 이 현업단체들은 이날 "실질적인 피해 구제와는 동떨어졌고 언론 통제 및 언론자유 침해로 직결될 여지가 크다"고 반박했다.
8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이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당 또한 민주당이 제시한 수정안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13일 브리핑에서 "독소조항에 대한 수정 입장은 일부 진전이 있었으나 여전히 미흡하고 부족하다"며 "일부 수정이 아니라 원점에서 차근차근 재검토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타일렀다.
민주당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모든 언론사, 기자들과 적으로 돌리더라도 강행하겠다는 태세다.
오는 17일 민주당은 소관 상임위인 국회 문체위 전체회의를 열고 개정안에 대해 수정 심사를 벌인다. 19일까지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의결하고, 25일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하겠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민주당은 어떠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단독으로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다.
내년 초 대선을 앞두고 '언론 길들이기'라는 숨겨진 입법 의도가 여전히 드러나는 가운데, 더 큰 사회적 갈등을 낳을 법 개정을 강행할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