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살 곳을 잃은 '북극곰의 눈물'이 이제 우리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경고음도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상황이다. 강대국과 글로벌 리더, 기업들은 기후 재앙을 피하자는 대원칙 속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가 바꾸고 있는 세상은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새로운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강대국들의 헤게모니 다툼, 기회를 잡기 위한 기업들의 전략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우리 역시 기후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재편되는 국제질서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정책과 냉철한 전략이 요구된다. 미디어펜은 '기후위기 리포트' 심층 기획시리즈를 통해 '신기후 시대'에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을 짚어보고 급변하는 환경에서 도약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친환경 재생에너지는 기업이나 국가 모두에게 핵심 미래경쟁력으로 꼽힌다. 태양광과 해상풍력 위주로 보급이 확대되면서, 노후화된 석탄발전시설의 대규모 폐쇄에 따른 공급자원 공백을 대체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전세계 전체 에너지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27.0%로 전년도(2019년) 대비 1.3%포인트 증가했다. 세계에너지기구(IEA)는 이러한 상승 추세가 이어져 오는 2025년에는 33%에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본보는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지난 10년간 에너지원별 발전량(한국전력공사 연도별 한국전력통계)을 따져보았다.
이에 따르면 원자력의 비중은 31.1%에서 29.0%로 소폭 감소했고 석탄은 40.8%에서 35.6%로 감소한 반면, 가스는 22.7%에서 26.4%로 올랐고 재생에너지는 2.5%에서 6.6%로 늘면서 지난 10년간 264%라는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원자력과 석탄이 감소한 만큼, 가스와 재생에너지가 함께 증가했다. 재생에너지만 놓고 보아도 발전량(GWh)이 2011년 1만 2190에서 3만 6527로 뛰면서 정확히 3배 성장했다.
친환경 재생에너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유럽연합(EU)이다. EU는 2026년부터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탄소 국경세를 도입할 예정이고, 2035년부터는 가솔린 등 내연기관차의 판매를 사실상 금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20일 EU의 탄소 국경세 도입에 대해 "오히려 기회"라고 평가하고 각 부처에 대응전략 마련을 지시했다. 최고 수준의 배터리를 비롯해 전기차 기술, 친환경 선박산업을 최대한 활용하면 국가경쟁력을 더 높일 수 있다는 복안이다.
친환경 지표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한다는 문제의식은 세계 민간 국가경쟁력 평가기구 중 최고로 꼽히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또한 마찬가지다.
제주탐라 해상풍력 발전단지. /사진=두산중공업 제공
IMD가 발표하는 경쟁력 지수는 OECD 국가 및 신흥국 등 총 64개국에 대해 통계지표 163개, 설문조사 92개, 보조지표 80개로 평가한다.
기획재정부 이억원 1차관은 지난 6월 18일 관계부처와 민간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 10차 국가경쟁력 정책협의회'에서 IMD의 국가경쟁력 평가결과를 분석하면서 "탄소중립 시나리오 마련, 기후대응기금 신설 등 친환경 저탄소 경제 전환에도 철저히 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매년 2차례 열리는 정책협의회는 IMD 및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결과 발표에 맞춰 우리나라의 강점과 약점 요인을 분석하여 이에 맞는 경쟁력 제고 전략을 논의해왔다.
이달 들어서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에 에너지 전담 2차관을 신설하고 조직을 개편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두달 뒤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수립했는데, 이번 2차관 신설 및 조직 개편은 올해 중 정부가 감축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부문별 이행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발 빠른 대응방편이다.
앞서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이번 조직 개편에 대해 "탄소중립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새로운 국제질서"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다만 일각에서는 기존 에너지 안보 등 투트랙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너지 전환은 글로벌 트렌드의 대세이지만, 에너지는 우리가 당장 직면한 현실 경제의 핵심이라는 점을 감안해 화석연료에 대한 안전성 확보 또한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안세현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지난 10일 한 언론 기고문을 통해 "국내적으로 에너지 전환 정책을 표방하더라도 대외적으로는 기존의 석유와 가스에 기반을 둔 에너지 안보 정책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며 "완전한 석유고갈 시대가 오기 바로 직전까지 해외 자원개발에 대한 국가경쟁력은 절대적으로 보유해야 한다"고 밝혔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포스코 포항제철소,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동국제강 당진공장, 세아제강 포항공장. /사진=각 사 제공
또다른 관건은 현실성, 경제성이다.
지난 5일 대통령직속 탄소중립위원회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공개하면서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업계는 큰 틀에서 취지에 공감하지만 이러한 정부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우려하고 나섰다. 철강·자동차·정유·석유화학 등 업계 실정을 고려한 방법인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가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요구하고 있는 사안은 몇가지로 나뉜다.
획기적인 세제 지원 및 보조금 개선, 관련 전력 인프라 구축이 최우선적으로 선결되어야 한다. 또한 민간부문에서 친환경 재생에너지 사용 촉진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경제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개별 기업이 선뜻 나서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기존 에너지원 대비 낮은 효율성 문제도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기업들은 정부에게 금융·보증 프로그램 신설, 환경 규제비용 완화, 개인소비세·취득세 일몰연장 등도 시급하다고 건의했다.
이미 국내 거의 모든 기업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기조와 맞물려 재생에너지 창출 및 탄소 절감 노력에 들어간 상황이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기업들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정부는 업종·규모별로 기업이 맞닥뜨린 여건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 (경제성을 고려한)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를 세우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각 기업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달성하기 불가능하다는 업계의 우려섞인 목소리는 한두곳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기업경쟁력, 국가경쟁력의 급속한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