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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공급책은 보이지 않는데…대출규제로 집값 잡는다는 정부

2021-08-22 09:07 | 류준현 기자 | jhryu@mediapen.com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규제에 나서면서, 은행들이 잇달아 주택대출 영업중단을 선언하고 있다. 

NH농협은행이 오는 24일부터 11월 말까지 신규 주택대출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단위 농·축협도 집단대출 중단을 선언했다. 우리은행과 SC제일은행은 각각 전세자금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주요 은행들은 신용대출도 개인 차주의 연봉 수준 만큼만 받을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시중은행 대출창구 / 사진=연합뉴스 제공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전면적인 대출규제를 펼침으로써 가계부채 증가세를 잠재우겠다는 계획을 품고 있다. 하지만 주택공급 계획이 지지부진하고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이 미뤄져, 알맹이 없는 대책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주택 공급과 금리인상이 조화를 이뤄야 조금이나마 집값상승을 억누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전년 연말 대비 7.1%로 주요 은행 중 가장 높았다. KB국민·신한·우리은행의 지난달 기준 가계대출 증가율은 2%대로 알려졌다. 하나은행은 4.4%로 다소 높은 편이다. 금융당국은 연간 증가율 상한선으로 6%를 내세우고 있다. 

이를 고려해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홍남기 경제부총리와의 가계부채 간담회에서 "하반기 가계대출 증가율을 3~4%로 맞추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후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취임과 함께 은행 담당자를 불러 신용대출 한도를 대폭 삭감하는 조치를 지시했다. 

은 위원장의 뒤를 이을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계부채를 통제하겠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의 일정도 점검하겠다"고 엄포했다. 

이번 조치에 대해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를) 0.25% 올린다고 해서 (집값이) 잡히겠느냐는 의견도 있다보니 정책당국이 총량규제를 좀 더 강하게 하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주려고 창구지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금융당국의 총량규제에 의구심을 품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 관계자는 "총량 5~6% 규제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규제를 하면 꼭 필요한 사람들이 대출을 못받을 수 있다. 차주들은 부채와 이자를 얼마나 부담할 지 등을 심사숙고한다. 일생일대 중요한 결정인 것"이라며 "자율적인 (개인의) 결정에 대해 총량적으로 막아버리는 행위는 금융선택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총량규제보다 선행돼야 할 기준금리 인상이 지지부진한 점도 논란이다. 빚부담이 적어 주택구매심리를 냉각시키지 못하는 까닭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해 3월 코로나19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1.25%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과감히 0.5%포인트(p) 낮춘 데 이어 두달 후 0.25%p를 추가 인하해 13개월째 0.5%를 이어오고 있다. 

최근 이주열 한은 총재가 금리인상에 대한 시그널을 던지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피해가 커 큰 폭의 금리인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금통위는 오는 26일 차기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있다.  

유경원 상명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어떻게 보면 한국은행이 너무 일을 안 한 것이거나 일을 너무 많이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금리조정을) 우물쭈물하다가 고려할 게 너무 많아졌다"며 "선제적으로 몇 차례 나눠 올렸다면 (주택 구매) 분위기가 과열되지 않았을 텐데 시기를 놓친 측면이 있다. 지금이라도 금리를 어느정도 올려 (긴축)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처도 있지만 자산가격 급등에 대한 금통위 위원들의 고려가 들어간 것"이라며 "금통위 통화정책에 '자산가격은 물가관리대상이 아니다'라는 식의 발상은 이제 구시대적이다. 부동산가격 안정도 적극적으로 (금리결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주택공급은 내놓지 않은 채 실수요자와 은행만 옥죄어 집값을 잡으려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의 대출 증가세가 급등한 건 아파트 집단대출과 주택정책대출에서 비롯됐다. 실수요자가 많은 것이다. 

한 관계자는 "정부가 말로만 블러핑을 하고 있는데, 포인트는 통화정책이 아니라 주택물량이다. 포인트를 계속 간접적인 영역에서 찾으니 결국 (가격이) 잘 잡히지 않는 것"이라며 "(공급이 많아) 주택가격이 최소 2~3년은 뛰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면, 2~3년 후에 구매할 사람들이 이렇게 다급하게 (패닉바잉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정부는 '집값 고점론'을 내세워 일종의 공포 마케팅만 펼쳤을 뿐 뚜렷한 공급계획은 내놓지 않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21일 부동산 시장에 대해 "국내에서 연구기관·한국은행 등을 중심으로 주택가격 고평가 가능성과 주택가격 조정시 영향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밝힌 데 이어, 30일에는 "지금은 불안감에 의한 추격매수보다는 향후 시장상황, 유동성 상황, 객관적 지표, 다수 전문가 의견 등에 귀 기울이며 진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도 지난달 11일 "집값이 조정국면을 맞이하는 것은 시기의 문제이지 언젠가는 올 것"이라며 "무리하게 주택을 구입하면 2~3년 뒤 매도할 때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발언했다. 

두 인사 모두 실수요자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만 내놨을 뿐, 뚜렷한 주택공급 계획은 밝히지 못했다. 

신용대출을 개인 연봉만큼 받을 수 있게 규제한 점도 의견이 분분하다. 가계부채가 1700조원에 달하는 데다 차주들이 빚부담을 망각해 대출을 일으키는 만큼,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신용대출만 허용하자는 게 금융당국의 계산이다. 

한편으로 은행 고유의 영역인 리스크부담과 신용평가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건전성 측면에서 차주가 소득 수준만큼 대출을 일으켜야 한다는 방향은 맞지만, 당국이 특정 기준치를 시장에 내놓는 게 금융시장의 발전을 옥죄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 교수는 "(차주의) 소득이 대출금에 비해 적다면 당연히 제재가 있어야 할 것인데, 이는 금융권이 판단할 문제이지 몇 %로 맞춰라 해선 안 된다. 금융권이 손해를 보더라도 감당해야 할 문제다"며 "소득을 기준으로 규제하면 은행업무가 아주 간단해질 것이다. 금융권에서 신용평가기법을 고도화하거나 차주를 분석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꼬집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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