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여야 간 논란이 뜨거운 ‘언론중재법’과 함께,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 즉 의료법 개정안도 국회통과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의료법 개정안은 언론법과 달리, 여야 합의 하에 무난히 처리될 전망이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大韓醫師協會)를 중심으로 한 의사집단은 여전히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법안 저지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이런 논란을 보며, 필자는 얼마 전 한 동료기자와 정부세종청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당시 필자는 치통을 앓고 있어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했고, 자연 식사 속도가 매우 느렸다.
사실 20대 때부터 치통은 필자의 고질병이었다. 가족들이 다 그렇다. 이젠 어금니들이 너무 상해, 임플런트로는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이런 사정을 설명하면서, ‘유일한 희망’을 몇 년째 마냥 기다리고 있다고 실토했다.
그건 바로 ‘3D 트린팅’으로 ‘복제한 치아’다.
요즘은 3D 프린팅으로 못하는 게 별로 없다. 주택도 금방 뚝딱 만들 수 있다. 몸 속 복잡한 ‘인공장기’까지 어렵지 않게 만든다고 한다.
그러니 치아 정도는 아주 쉬운 일이고, 실제 그런 얘기가 나온 게 벌써 10년도 넘은 듯하다.
그런데 왜 아직도 안 나오고 있을까?
필자 생각에, 그건 의료계와 의료산업계가 서로 짜고, 봉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임플런트를 비롯, 치아관련 비즈니스는 이들에게 거대한 ‘돈벌이’다. 이걸 하찮은 3D 프린팅이 대체하게 놔두지는 않을 것 같다.
같이 식사한 동료 기자도 필자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 온 ‘서비스업발전법’ 역시 10년 넘게 ‘제자리걸음’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의료계의 반대다.
특히 의사들이 가장 목소리 높여 반대하는 것은 원격진료(遠隔診療)다.
정부는 의사와의 대면진료가 어려운 시골 오지 환자들의 ‘의료권’ 보장을 위해서라도, 단계적 원격진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단지 ‘상비약’을 타려고 병원에 가야하는 환자의 편의와 비용절감을 위해서도, 그렇다는 설명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원격진료의 필수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의사도 환자도, 그리고 간호사도 감염 걱정을 할 필요 없이 진료에 임할 수 있기 때문.
당연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을 계기로, 전 세계는 원격진료 활성화에 저마다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이는 의료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면서, 엄청난 비즈니스의 ‘신천지’를 개척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한민국은 그렇지 못하다. 의사집단들의 ‘막무가내’식 반대 때문이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모두 원격진료, 무인진료, 로봇진료 등 ‘4차 산업혁명’에 적극 부응,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데, 우리만 여전히 ‘갈라파고스 규제’를 고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사들은 원격진료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담보할 수 없고, 환자의 안위를 보장하지 못한다는데, 스스로를 이렇게도 ‘모욕’할 수 있는 것인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사람들은 다 안다. ‘원격진료=매출감소’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는 것을...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集團利己主義)의 극치를 보여준 것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인 와중에서 터진 ‘파업사태’였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대, 수련의와 전공의들이 의사 가운을 입은 채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고, 개원의들이 법을 어겨가며 ‘집단휴진’을 하는 모습은, 의사 본인들을 제외한 그 누구도 수긍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이런 저런 이유를 대더라도, 의대 정원 확대로 의사공급이 늘면 자신들의 ‘밥그릇’이 불안해지기 때문에, ‘고객’인 환자와 ‘동료’인 간호사들을 내팽개치고 파업을 하는 것이다.
이들의 파업을 집단이기주의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은, 같은 의사라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일부 양식 있는 의사들은 파업에 반대했다는 점에서다.
의사들은 과거 ‘의약분쟁’이나 ‘한·양의학 분쟁’ 때 등, 걸핏하면 환자들을 ‘볼모’로 잡고 파업을 강행, 자신들의 이익을 챙겨왔다.
의사는 아니지만, 기획재정부의 ‘도수 안경 온라인 판매’ 허용을 한사코 반대하는 안경사들, 온라인 법률중개 플랫폼인 로톡이 변호사법 위반이라며 고소한 대한변호사협회도 ‘규제 기득권’에 안주하고, 변화와 혁신을 한사코 저지하려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시 수술실 CCTV 문제로 돌아가 보자.
의사들의 반대논리는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고 자율권을 침해하며, 의료행위의 위축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미 CCTV가 보는 앞에서 일하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은 뭐란 말인가?
지난 6월 말 국민권익위원회의 대국민 설문조사에서, 무려 98%가 이 법안에 찬성했다.
그것은 의사들이 간호사에게 수술을 대신 강요하는, 이른바 ‘대리수술’ 의혹이 잇따라 터진 것이 계기가 됐다. 의료계 일각의 불법 행위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고언’을 하고 싶다.
의사(醫師)란 단어는 의료행위를 ‘업’으로 하는 ‘선생님’, ‘스승’이란 뜻이다. 그런 선생님이 제자들을 돈벌이 대상으로, 의료행위를 영리수단으로 봐선 안 될 것이다. 어느 정도의 ‘생계’에만 문제가 없다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 의사들은 어떤가?
의사파업 과정에서도 많이 나온 얘기인데, ‘의사가 되는 데 시간도 돈도 많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학생보다 공부도 훨씬 잘했다. 당연히 돈도 많이 벌고, 더 잘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기본인식이 대부분 의사들의 의식 속에 깔려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건 선생님의 자세일수는 없다.
물론 ‘자본주의시대에, 스승이란 뭔 헛소리인가? 돈 더 벌어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서비스업 본연의 자세’에 충실해야 한다. 의사에게 환자는 ‘고객님’이다. 그리고 ‘고객은 곧 왕’이다. 모든 사고와 언행을 ‘고객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모실수 있을까’에 맞춰야만 하는 것이다.
의료행위도 비즈니스고, 의사 역시 비즈니스맨이기 때문이다.
이제 의사들은 둘 중 하나를 택일해야 할 것이다. 선생님이냐, 아니면 돈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