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백지현 기자]"살다 살다 전세대출까지 막아버릴 줄은 몰랐다. 전세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월세살이로 밀려나게 생겼는데 원하는 만큼 한도를 맞출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막막하다."
오는 11월 전세만기를 앞두고 있는 직장인 이모씨(45)는 얼마전 집주인으로부터 사정상 전세 1억5000만원을 올려주던지, 전세금 인상이 어려우면 본인들이 들어와야 살겠다고 해 전세값을 올려 재계약하기로 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주거래은행이 전세자금대출을 중단하면서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는 "아내와 함께 연차를 내고 다른 시중은행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대출문턱이 높아 대체 돈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속이 탄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억제책으로 칼을 빼든 고강도 '대출 옥죄기'가 결국 은행권의 대출 규제 도미노를 초래했다. NH농협은행이 신규 부동산담보대출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우리은행과 SC제일은행도 일부 대출 상품 취급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높아진 은행 대출 문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5대 시중은행을 포함해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마저 신용대출을 연봉 이내로 축소할 전망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다음달 중으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과 카뱅의 신용대출 상품 한도가 연 소득 이하로 대폭 줄어든다. 현재 농협은행과 하나은행이 신용대출 상품의 한도를 연 소득 이하로 제한해 시행중에 있다. 이는 고강도 가계부채 관리에 나선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 범위 이내'로 낮춰달라고 요구한 데 대해 은행권이 이를 수용한 데 따른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전날 은행들에 개인 신용대출 상품별 연 소득 대비 현재 한도와 향후 조정계획을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13일 은행 여신 담당 임원들을 소집해 현재 연 소득의 최대 2배 수준인 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의 100% 이하로 낮춰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농협은행은 지난 24일부터 신규 개인 신용대출의 최고 한도를 기존 2억원에서 1억원 이하·연 소득의 100%로 축소했고, 하나은행도 전날부터 연 소득 범위 내로 신용대출 취급을 제한했다. 상품마다 한도가 달랐던 마이너스통장 대출도 개인당 최대 5000만원으로 축소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가수요 증가와 투기적 용도 수요 급증할 것에 대비한 것"이라며 "전세자금대출, 주택담보대출 등 실수요가 연계된 대출과 서민금융대출은 기존대로 취급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도 다음달부터 신용대출 한도를 연봉 이하로 줄인다. 신규 및 증액 건에 한정해 적용되며, 기존 대출을 연장하거나 재약정하는 경우에는 제외된다. 또한 우리은행은 다음달부터 주택담보대출 및 전세대출의 조정된 우대금리를 적용한다. 이에 따라 주담대 상품인 '우리아파트론'과 '우리부동산론'의 우대금리 최대한도가 각각 0.8%에서 0.5%로, 0.6%에서 0.3%로 각각 0.3%포인트씩 축소된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을 포함해 인터넷은행인 카뱅도 이르면 9월 중 신용대출 한도를 연봉 이하로 낮출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저축은행과 보험사, 카드, 캐피털사에도 신용대출 상품 연 소득 이내 제한을 요구한 상태여서 제1금융권에서 본격화한 신용대출 한도 축소는 "제2금융권으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고강도 가계부채 관리 방안에 따른 대출규제는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수요가 제2금융권으로 쏠리는 풍선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전 금융권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