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나광호 기자]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최근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친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한 전문가들의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 협의회(에교협)는 이날 온라인으로 제13차 토론회를 개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기로 했다.
온기운 공동대표(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탄소감축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가야할 길이지만,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보유한 한국에게는 위협 요인이 아닐 수 없다"며 "제조업에 대해 탄소감축만을 강조하다가는 경쟁력을 송두리째 상실할 우려가 있다는 점은 인식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포스코 포항제철소,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동국제강 당진공장, 세아제강 포항공장. /사진=각 사
이와 관련해 산업연구원(KIET)도 2019년 기준 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8.4%라고 분석한 바 있다. 이는 독일(20.7%)과 일본(20.3%) 보다 높고, 중국(29.3%)과 유사한 수준이다. 철강·석유화학·정유·시멘트 등 탄소 다배출 업종의 비중도 주요국 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온 교수는 "탄소배출권 가격이 2015년 1월 톤당 8640원에서 지난해 4월 4만2500으로 급등한 뒤 지난 6월 1만5000원으로 떨어졌다가 현재 2만원대 후반으로 반등했다"면서 "최근 유럽연합(EU) 지역 배출권 가격이 톤당 60유로(약 8만3000원)를 넘어 급등세를 보인다는 점에서 국내 배출권 가격도 상승세를 보이는 등 배출권거래제(ETS)를 통한 국내 기업들의 탄소감축 비용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덕환 공동대표(서강화 화학과 명예교수)도 "국회의원 109명의 찬성(불출석 132명)으로 본회의를 통과한 이 법은 산업현실을 외면한 비현실적인 환상"이라며 "지난 4년간 불법·탈법적으로 밀어붙인 탈원전의 대못을 박으려는 시도"라고 꼬집었다.
또한 "혁명적인 에너지·산업 기술혁신으로도 불확실한 탄소중립을 쓰레기 분리수거와 플라스틱 재활용 비율 확대 등 '생활 속 작은 실천'을 모아 실현하겠다는 발상은 착각"이라며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의 상당부분도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 법에 따르면 중앙정부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지방자치단체는 정의로운전환지원센터·실천연대·탄소중립지원센터 등을 설치해야 하지만, 지자체 차원의 행정조직을 설치하고 예산으로 이를 지원할 당위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예산 낭비와 정치적 갈등의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2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에서 윤순진 민간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말 나올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보면 2030년 배출량을 2018년 대비 최대 35% 가량 감축을 목표로 하는 등 무리하게 작성되고 있다"며 "NDC 상향에 따라 에너지정책이 제약되면 전기요금을 대폭 올려 수요를 줄이거나 무탄소 발전원을 확충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손 교수는 "지난해 12월 발표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030년 재생에너지 보급량을 58GW로 계획하고 있으나, 실현 가능성이 낮은데 NDC안은 160GW에 달하는 설비 증설을 요구한다"면서 "문을 닫기로 한 원자력발전소 10기 운영허가 연장을 개시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분석했다.
정용훈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특정 국가를 따라간다면 외부의존이 없는 나라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며 "외부의존 없이 무탄소 전력을 구현하는 나라는 노르웨이·덴마크·프랑스 정도로, 이들 국가는 수력과 원자력을 중심으로 에너지믹스가 구성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대규모 수력자원이 없고, 국가간 연계도 없는 우리나라 조건에서 태양광·풍력 등 간헐성 재생에너지에 전적으로 의존해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은 기술적·경제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전력망을 현재의 몇 배로 키우고, 에너지저장장치(ESS)가 받아줘야 할 전력량도 물리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수준이 되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미디어펜=나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