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합병이 순항 중인 가운데 특혜 의혹·불공정 행위·고용 불안 등 각종 문제점을 따져봐야 한다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에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문제를 삼기 때문에 문제'라는 반응과 함께 비전문적 단견에 따른 피해가 발생할 경우 책임질 수 있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16일 이날 오전 10시 여의도 스카우트 빌딩 1층 대강당에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홍석만 참세상연구소 실장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 △심규덕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 위원장 △이영수 공공운수노조 사회공공연구원 실장 △이상훈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변호사 △최동선 한국산업은행 기업금융실장 △신우철 국토교통부 항공산업과 사무관 △강지원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사진=미디어펜 산업부 박규빈 기자
박상혁·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 심상정 정의당 의원, 민주노총 산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들은 16일 오전 10시 여의도 스카우트 빌딩 1층 대강당에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축사를 맡은 배 원내대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합병이 결정된 지 수개월이 지났다"며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생겨난 대한 특혜 의혹, 항공산업의 독점화와 이에 따른 소비자 피해, 중소 하청·협력업체에 대한 불공정 행위와 고용불안 등에 대한 예방책과 보완 대책에 대한 충분한 검증은 없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대한항공이 독점적 운수권을 보유하고 있던 인천발 몽골 울란바토르행 노선 운임은 거리가 비슷한 인천발 홍콩행에 비해 3배 이상 비쌌다"며 "합병 이후 점유율 50% 이상인 노선이 늘어나면 대한항공의 (일방적인) 가격 결정권이 더욱 강해질 갓"이라고 주장했다.
박상혁 민주당 의원은 "(양대 항공사 통합) 결정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독과점으로 인한 소비자 편익 침해와 노선 통·폐합, 대규모 구조조정 등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단순히 항공산업 재편이 아닌 국가 기간 산업 전체의 발전 저해와 항공 생태계 파괴라는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현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위원장은 "한국산업은행이 법과 기준을 무시한 채 공정거래위원회의 고유 권한을 침범하면서까지 결합 심사를 조속히 승인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점은 심히 유감"이라고 전했다.
이날 발제는 홍석만 참세상연구소 실장·김경률 경제민주주의21 대표·심규덕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 위원장·이상훈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변호사 등 4인이 맡았다.
홍석만 참세상연구소 실장은 "독일 정부는 루프트한자를 한시적으로 국유화 했고, 이탈리아 정부는 알리탈리아를 정리해 새로운 항공사인 ITA를 설립해 내달 중순 경 운영에 착수한다"며 "유럽에서는 국영화 바람이 불고 있다"고 소개했다.
홍 실장은 "조직 혁신성·효율성·민주성·소비자 친화성 등은 관공이냐 민간이냐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와 시장의 민주적 성숙도에 달려 있다"며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 등 갑질이나 인권 유린 행위 등 비상식적인 행동은 대부분 민영 항공사가 보유한 기내에서 발생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은 사건이 국영 항공사에서는 벌어지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관련 기사를 찾아보라"며 얼버무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수많은 지역에서는 정부가 50% 이상 지분을 소유한 국유 기업이나 100% 지분을 소유한 국영 항공사로 운영된다"고 설파했다. 자치 정부 포함 전 세계 96개 국가가 운영하는 112개의 항공사가 국영이라는 것이다.
홍 실장은 미국과 유럽의 민영 항공사들에게 정부 지원금이 몰렸다며 정부가 항공사를 소유해야 하는 근거를 댔다. 그는 "중국·러시아 국영 항공사들이 받은 정부 지원금은 2000억~4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며 "유가 인하·세금 면제·좌석당 보조금 등 항공업계에 대한 지원 덕"이라고 부연했다. 다시 말해 국영 항공사이기 때문에 국내선 운항에서도 민간 항공사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어 위기 대응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산은이 대한항공을 직접 지원하지 않고 한진칼 지분을 취득한 건 오직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라는 말도 이어졌다.
그러나 산은은 지난해 11월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가 경제와 국민 편익·안전 측면에서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한진칼 경영에 참여는 구조 개편 작업의 성공적 이행 지원과 건전·윤리 경영의 감시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한 것"이라며 "조 회장 경영권 보장 차원이 아니었다"고 반박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홍 실장은 "채권자들의 빚을 상환해주고 대주주 지배권을 안정화시켜 주는 재무적 구조조정이 아니라 주주와 채권자의 책임을 물어 부채를 일소해야 한다"며 "소수 재벌이나 대주주가 아닌 국가와 사회가 항공이라는 기간산업을 지배하는 구조로 질서가 재편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계사인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는 "아시아나항공에 투입되는 인수 자금 1조8000억원 중 상당 부분의 실질적 최종 부담자는 대한항공의 소액 주주들"이라며 "사실상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은 아시아나항공을 무자본 M&A로 인수하게 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산은이 구조조정을 자임하는 국책은행이라면 기존 채권자의 채무 조정 등 아시아나항공 회생 가능성을 극대화 하는 작업부터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며 "구조조정 책임자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금융기관의 이권 대변자로서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은은 대한항공을 직접 지원하지 않고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을 선택한 이유를 이것저것 제시하고 있으나 타당성이 떨어진다"며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 존재하지
않는 변칙적 방식"이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한편 산은이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에 자금을 댄 이유는 안정적인 지주사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한진칼은 8000억원 전액을 차입할 경우 재무구조 악화를 우려해 빠르고 확실하게 자본을 확충할 수 있는 제3자 배정 방식 유상증자를 추진했다는 게 재계 중론이다. 아울러 8000억원으로 대기업 집단을 통제할 수 있다면 오히려 산은이 좋은 조건에 딜을 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김 대표는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특정 주체에게만 배타적으로 신주를 배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무효라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는 지난해 12월 1일 "신주 발행은 상법과 주식회사 한진칼의 정관에 따라 아시아나항공 인수·통합 항공사 경영 등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원고 KCGI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긴박한 경제적 상황을 고려했고 경영권 개입 차원에서 유상증자를 한 게 아니라는 점이 소명된 셈이다.
심규덕 아시아나항공 노조 위원장은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양사 중복 인력 2000명은 사직·정년 퇴직·부서 재배치 등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산출 기준이나 근거를 공개하지 않아 믿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심 위원장은 "그 2000명은 아시아나항공 일반직을 염두에 둔 건 아닐지 의구심이 든다"며 "1000명이 자연 감소되기를 기다리면 향후 수년 간 신규 채용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냐"고 따졌다. 그는 "기업은 고용 창출이라는 기본적인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음에도 우 사장이 전면 거부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산하 KA·KO·KR 등 항공기 직접 서비스 협력사 직원 3000여명은 고용 유지 대상에서 조차 빠졌다"고도 했다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이 대한항공 뉴스룸을 통해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 통합(PMI) 방안과 관련, 사전 질문 사항에 대한 답변하는 모습./사진=대한항공 뉴스룸 캡처
실제 우 사장은 인위적인 정원 감축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에어서울·아시아나IDT·아시아나에어포트 등이 이에 해당되며, 심 위원장이 언급한 회사들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자회사들이자 아시아나항공의 협력사들이어서 우 사장이 말한 고용 유지에 관한 사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심 위원장은 "아시아나항공은 롤스로이스 plc의 트렌트 엔진을 쓰는데 반해 대한항공은 정비 문제로 채용하지 않았다"며 "당사의 주력 기종인 A350은 대한항공이 절대 받지 않는 기종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점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정비본부장을 역임한 최세종 한서대학교 부총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기본적으로 각 항공사들에는 엔진 정비 권한이 주어진다"며 "아시아나항공은 항공기 도입 당시 롤스로이스 plc에 일정 기간까지 독점 정비권 부여를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비 운영 노하우가 쌓인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롤스로이스 plc 간 체결된 엔진 계약 조건을 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롤스로이스 plc 트렌트 엔진 제품군./사진=롤스로이스 제공
이상훈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변호사는 "시장 획정을 위한 실증 자료가 부족한 탓에 의견 제시가 어렵다"면서도 "국민 대다수가 아는 2개 대형 항공사(FSC)와 3개 저비용 항공사(LCC)가 이번 기업 결합으로 인해 하나의 그룹이 됨에도 불구하고, 기업 결합 회사가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분류되지 않으면 상식에 반할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내놨다.
이에 업계는 이 변호사가 운송 네트워크 산업 판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우선 2개 FSC와 3개 LCC 모두를 합쳐도 인천국제공항 슬롯 점유율은 45% 가량 되나, 미국 애틀란타공항 내 델타항공은 79%를 차지하고도 독과점 논란은 없다. 허브공항인 특성상 당연하다는 것이다.
각 공항별 항공사 슬롯 점유율 그래프./자료=대한항공 제공
이 외에도 통합 대한항공이 일방적으로 운임을 인상할 경우 인천공항에 취항 중인 80여개 외국 항공사들이 좌석 공급을 늘리면 수익 확보가 어려워져 좌석 단가 조정은 쉽지 않다는 전언이다. 가격 결정권이 대한항공 수중에 있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셈이다. 국내 신생 항공사 에어프레미아는 미주·유럽 등 중장거리 노선을 목표로 보잉 787-9를 도입했다. 이는 통합 대한항공의 시장 지위 남용을 방지해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변호사는 "항공 운임 인가 기준이 지나치게 추상적인 탓에 부당한 운임 인상에 아무런 제어장치가 없다"고 언급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일러스트./사진=연합뉴스
이를 의식한 듯 올해 3월 17일 대한항공은 산은에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 통합 계획(PMI)안을 제출하며 국토교통부 운임 심사 담당 부서에 점유율이 높은 노선을 관리 대상 노선으로 선정해 관련 자료를 내고 검증받는 운임 인상 억제 방안을 담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변호사는 "공정위가 기업 결합으로 인한 경쟁 제한성은 인정할 것"이라며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결합에 대한) 허가를 내지 않거나 최소한 독립 경영을 통한 제한적 경쟁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종선 산은 기업금융실장은 "당행과 한진칼·대한항공 간 투자 합의서에 따르면 고용 보장을 하지 않을 경우 중대한 계약 위반으로 간주해 조원태 회장은 퇴진해야 한다"며 "5000억원의 위약금을 물게 되고, 경영 평가에도 반영되는 만큼 고용 불안은 있을 수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신우철 국토부 항공산업과 사무관은 "정부와 산은이 공정위를 에워싸고 압박한다고들 하셨는데, 사실과 다르다"며 "법적 절차대로 양대 항공사 결합 심사를 진행하되, 속도를 내달라고 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강지원 국회 입법조사관은 "'시장 획정'은 통합 항공사와 경쟁 관계에 있는 항공 운송 서비스의 영역과 범위를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국토부 규제와 경쟁사들의 저렴한 경유 노선 등으로 운임 상승 가능성(경쟁 제한성)은 높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나모리 가즈오가 되살린 일본항공(JAL)도 민간의 손을 거쳤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국유화는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황 교수는 "국토부 공무원들이 내려와 회사를 망치게 될 것임은 너무나도 자명하다"며 "산은이 한진그룹을 인수자로 지명한 건 항공사 경영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사들여도, 안 사도 그만"이라며 "이런 식으로 딴죽들을 걸면 아시아나항공에만 해를 끼치게 된다"고 질타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박상혁 민주당 의원 △민형배 민주당 의원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 △심상정 정의당 의원 △공공운수노동조합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동조합 △아시아나항공노동조합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민주한국공항지부 △아시아나에어포트지부 △아시아나케이오지부 등이 참석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