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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중·저신용자 품고 고신용자 내쫓는 금융당국

2021-09-20 10:39 | 류준현 기자 | jhryu@mediapen.com

류준현 경제부 기자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주요 금융권의 주택 대출 및 신용대출 조이기가 심상치 않다. 대표적으로 주요 5대 시중은행은 주택담보대출 및 전세대출을 일시 중단하는 한편, 신용대출 상품의 한도를 차주의 연봉 이내로 축소했다. 마이너스통장의 대출 한도도 1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축소한다고 밝혔다. 

뒤이어 외국계은행과 인터넷은행도 이들과 비슷한 내용의 대출계획안을 발표했다. 지방은행도 당국의 권고에 따라, 연봉 이내로 신용대출을 옥죄는 분위기다.

'가계부채 총량관리'를 기치로 내걸은 금융당국이 금융권을 압박하면서, 은행들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 가계부채 문제는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제기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2분기 가계 빚이 1805조 9000억원을 기록해 1년 전보다 10.3%(168조 6000억원) 불어났다.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은 수치로, 부동산과 주식 투자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부채를 줄이기 위한 방책으로 '차주의 상환능력'에 걸맞은 대출집행을 강조하고 있다. 

고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차주 단위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확대 등을 통해 상환 능력 위주의 여신 심사를 확산시켜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금융권의 더욱 엄격한 대출 관행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주택 실수요자들이 대출을 못 받게 되는 피해는 없도록 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고승범 위원장이 14일 서울 중구 중앙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해 취약계층의 서민 및 소상공인의 금융 애로사항을 청취하며, 서민금융 실무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사진=금융위원회 제공



하지만 시장에서는 비상식적인 일이 연출되고 있다. 주택 자금을 마련하려는 고신용자들이 대출규제로 1금융권에서 외면받자 2금융권과 보험사 등을 기웃거리고 있다. 이마저도 병목현상을 보이며 대출 중단이 언급되고 있다. 특히 자산 증식이 아닌 전월세 거주나 단순 자금마련 목적의 예비 대출자도 천편일률적인 대출조이기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반대로 중·저신용자는 인터넷은행의 전폭적인 대출 확대로 수혜를 누리게 됐다. 업계 1위인 카카오뱅크는 중신용대출과 중신용플러스대출의 최대 한도를 각각 1억원 5000만원으로 강화하고, 대출금리를 3%대로 떨어트렸다. 

카뱅은 현재 당국의 요구에 부응해 고신용자 신용대출 한도를 7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마통 한도는 5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각각 축소한 상태다. 

2위 케이뱅크는 지난 7월부터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신용대출 플러스' 상품 한도를 5000만원에서 1억 5000만원으로 상향했다. 케뱅은 고신용자의 신용대출과 마통 최대한도를 각각 연소득 이내로 개편한 상황이다.

인터넷은행이 중·저신용자 서민금융을 확대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하더라도, "상환능력을 기준으로 대출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고 위원장의 말을 고려하면 이는 기존 방침을 역행하는 것이다. 더욱이 중·저신용자가 상환능력이 우수한 고신용자를 추월해 대출을 우대받는 건 어불성설이다. 

지난 인사청문회에서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시장에서 금리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을 어떻게 도움을 줄까 하는 것은 알겠는데, 기본적으로 운용하는 메커니즘을 왜곡시켜서 그 취지를 달성하려고 하면 그것이 이뤄지는가"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에 고 위원장은 마땅한 답을 내놓지 못했고, 현재까지 대출정책을 개선하지 않고 있다.

고 위원장은 스스로를 '가계부채 저승사자'라고 자처한다. 지난 16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5대 금융협회장과의 간담회 직후 그는 "어제 국회 대정부 질문하는 자리에서 국회의원이 가계부채 저승사자라는 별명에 대해서 물어봤다"며 "현 상황에서 가계부채 관리를 강화해 나가는 금융위원장의 별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저승사자'는 곧 죽음을 앞둔 사람을 솎아내 데려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싸한 이유로 특정 계층에게 불이익을 주는 '선택적 저승사자'는 곤란하다. 각 차주가 처한 상황적 어려움은 상대적이고,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와 간절함도 제각각이다. 

금융당국이 칼로 무 자르듯 고신용자의 대출을 일종의 '투기'로 규정하고, 은행이 해야 할 차주별 대출 여부를 가리는 것부터 지나친 월권이자 간섭이다. 더군다나 신용관리를 잘 한 사람들이 우대를 받기는커녕 역차별 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이 새로운 법과 정책에 공감하려면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갈등부터 최소화하는 게 순리다. 당국은 지금이라도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확대 등의 우대조치가 '상환능력에 맞는 가계대출 관행 정착'과 '부채총량 관리'에 부합한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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