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미국이 영국, 호주와 함께 새로운 3자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 출범을 깜짝 발표하면서 직격탄을 맞은 중국은 물론 협의체에서 소외된 동맹국들도 반발하는 분위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화상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오커스 발족을 발표했다. 오커스는 호주(Australia)와 영국(UK) 미국(US) 의 두문자를 딴 신조어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서둘러 철수작전을 펼치면서 언급한 중국 견제에 집중할 것이란 계획을 본격 실행에 옮긴 것으로 그동안 영국 이외에 전세계 어떤 우방국에도 지원을 불허했던 핵추진잠수함 기술을 호주에 극히 예외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오커스 체제에서 미국과 영국은 앞으로 18개월간 호주의 핵잠 개발을 공동 지원한다. 미국이 핵잠 기술을 다른 나라에 이전하는 것은 1958년 영국 이후 63년만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모리슨 총리는 이날 8척의 핵잠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재 중국이 보유한 핵잠은 6~9척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커스가 인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21세기 미래위협에 더 잘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인·태지역에서의 우방국과 협력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아세안(ASEAN),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4자 협의체), 인도·태평양, 유럽 및 전 세계의 동맹 및 파트너와의 협력도 이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표적이 된 중국은 물론 당초 호주에 77조원 규모의 잠수함 건조 계약을 했다가 이번 일로 파기 당한 프랑스가 우선 크게 반발했다.
오스트리아 빈의 유엔기구 주재 중국 대표부 왕췬 대사는 이날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9월 이사회 회의에서 “미·영의 이번 조치는 적나라한 핵확산 행위이다. 한반도 핵 문제와 이란 핵 문제 등 핫이슈의 해결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핵무기와 핵기술 확산을 막는 것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취지이자 조약 시행국의 핵심 의무인데, 미·영은 당사국이면서 공공연히 핵무기 비보유 국가인 호주의 핵잠수함 건조에 도움을 준다”며 “IAEA는 핵비확산 감독의무를 이행하는 국제기구로서 미·영·호주의 행위에 대해 엄정한 입장을 공개 표명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핵 추진 잠수함 미시간(SSGN 727)이 13일 해군작전사령부 장병의 환영을 받으며 부산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지난 4월 25일 입항 이후 올해 두 번째 부산 방문이다. 오하이오급 잠수함으로 길이 170.6m, 폭 12.8m, 배수량 1만천t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이 잠수함에는 사거리 2천㎞가 넘는 토마호크 미사일 150여 발이 실려 있다. 2017.10.13./사진=연합뉴스
프랑스는 호주에 최대 12척의 디젤 잠수함을 공급하는 560억유로 규모의 계약을 빼앗겼다며 크게 분노하고 있다. 장이브 르드리앙 외교장관은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까지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주미 프랑스대사관은 17일 예정됐던 미국의 독립전쟁을 기념하는 축하행사도 취소했다.
유럽연합(EU) 역시 자체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며 또다시 자강론이 대두되는 분위기다. EU의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인도태평양 지역과 협력을 강화하는 자체 전략을 공개했다.
오커스 신설은 인도·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우방국인 일본, 호주, 인도와 유럽의 영국까지 연결하는 거대 안보전선 구축을 의미한다. 현재 핵잠 보유국은 핵보유국인 ‘P5’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에 인도를 포함하고 있으며, 여기에 호주를 가세해 중국을 견제하는 해양안보를 강화 움직임이 본격화된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주 유엔총회 기간 중국 견제용 4자 협의체인 쿼드의 첫 대면 정상회의도 개최한다.
쿼드 가동에 이어 오커스 창설은 핵잠 개발 의향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다른 미국 동맹국에도 파장을 끼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전인 2017년 4월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핵잠수함은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가 됐고, 이를 위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논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지난해 7월 김현종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비공개로 방미해 핵잠수함 확보에 필요한 핵연료 제공을 요청했으나 미국은 비확산 원칙을 앞세워 거부했다.
미국이 이번에 호주에만 예외적으로 지난 수십년간 극비에 부쳤던 핵잠 기술의 빗장까지 푼 것에 대해 앞으로 동맹들의 적극적인 대중 견제 동참을 독려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특히 호주는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미국의 대중국 견제정책에 동참하면서 중국의 호된 경제보복에 시달려왔다. 호주는 영국과 함께 미국의 전통 우방국으로서 쿼드와 기밀정보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즈’(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에도 속해 있다.
마침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가 17일 열리면서 향후 중국의 추가 대응도 주목된다. SCO엔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파키스탄·인도 등 8개국이 회원국이다. 앞서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16일 사설에서 미국을 향해 “동맹들을 결집시켜 중국에 맞서느라 이성을 잃고 있다”고 했으며, “호주가 중국을 도발한다면 호주 군대는 남중국해에서 생을 마감하는 첫 번째 서방 군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