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항공사간 운항 제휴에 대해 미국 연방 법무부가 경쟁 제한이 우려된다며 소송을 건 가운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통합에도 일부 영향이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시장 판도와 속성이 달라 어려움 없이 국적 항공사 간 합병이 이뤄질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제트블루항공·아메리칸항공 항공기 수직 꼬리 날개./사진=아메리칸항공 제공
2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미 연방 법무부는 아메리칸항공과 제트블루항공이 알짜 노선인 뉴욕-보스턴 구간 운항에 전면 협력한다는 점에 대해 7개 연방 지방검찰청과 함께 메사추세츠 연방 지방법원에 반독점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아메리칸항공과 제트블루항공은 '노스이스트 얼라이언스'라는 항공 동맹체를 만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항공 동맹은 타국 항공사들끼리 맺는 만큼 자국 시장 내에서의 이 같은 조직 구성은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를 시장 내 공정 경쟁을 해치는 반독점 행위라고 판단해 칼을 빼들었다. LCC인 제트블루항공이 규모가 큰 아메리칸항공과 동맹 관계를 맺으면 가격 경쟁력을 포기하고 서비스 질의 하락으로 이어져 고객 편익이 훼손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반독점 소송과 관련, 메릭 갈랜드 미 법무부 장관은 "(미국) 국내선 항공 수요의 80%를 (델타·유나이티드·사우스웨스트 등) 4개 항공사가 쥐락펴락 한다"며 "아메리칸항공과 제트블루항공 간 제휴는 향후 기업 간 인수·합병(M&A)로 이어질 전례없는 술책"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겉으로는 제휴를 표방하나 사실상 M&A 직전 단계라는 얘기다. 미 법무부는 지난날 아메리칸항공이 현행법상 외국 항공사를 사들이는 방법이 없어 조인트 벤처(JV) 형식을 빌려 회사 규모를 키워온 점에 비춰 노스이스트 얼라이언스 창설 의도에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노선 및 수익 배분·투입 항공기 기종 결정 등 경영 계획 전 과정에 걸쳐 협력한다는 게 법무부 입장이다.
2019년 기준 두 항공사는 연간 2억5700만명을 실어나른 바 있다. 이에 규제 당국은 "전미 항공 승객들에게 수천만달러의 손해를 끼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일러스트./사진=연합뉴스
'전세계 시장경제체제 끝판왕'으로 통하는 미국에서 이와 같은 제재 방침이 나오자 일각에서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간 통합 작업에도 다소 영향이 가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존재한다.
노스이스트 얼라이언스의 경우 미국 내 순위권 싸움이 팽팽한 아메리칸항공·유나이티드항공·델타항공 3개사 중 하나가 거대 LCC와 한 편이 된 것으로, 국내선 시장을 두고 동종 업계 반발이 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국내선에서 LCC들에 밀리고 있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중장거리 국제선으로 승부를 보고 있어 주력 시장이 다르기 때문에 미 법무부의 반독점 소송 건과는 결을 달리한다는게 업계 중론이다.
지난 26일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 심사 장기화에 대한 설명자료'를 제출받았다. 공정위는 자료를 통해 "해외 주요국 경쟁 당국 심사는 아직 진행이 많이 된 건 아니나, 실무상 경쟁 제한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고 전했다.
공정위는 어느 나라 규제 기관이 부정적 입장을 표했는지 공개하지는 않았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중복 노선은 국제선 기준 67개다. 노선별로는 △미주 6개 △유럽 6개 △중국 17개 △일본 12개 △동남아·동북아 24개 △대양주 1개 △인도 1개인 점을 고려하면 중국과 일본 정부가 우려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 소재 대한항공 빌딩 간판./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대한항공 고위 관계자 역시 "일본과 중국은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바로 맞붙은 만큼 당사와 아시아나항공이 하나로 합쳐지면 자국 항공사들의 파이가 작아질 것을 걱정한다"며 "노선 조정 카드 등을 꺼내들 가능성은 제한적으로나마 상존한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 했다.
그러나 일본은 항공자유화조약(Treaty on Open Skies)에 가입했고 중국은 산둥·하이난 2개성에 대해서만 적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중국이 난색을 보였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공정위는 자신들이 내린 시정 방안과 외국과의 조치가 충돌하지 않고 일치해야 하므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안방인 국내에서부터 공정위가 합병 심사를 지연시키고 있는 와중에 타국 입장을 살펴보는 것은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온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사진=한국산업은행 제공
최근 이동걸 한국산업은행 회장은 "괘씸죄에 걸리겠지만 EU 집행위원회가 구글·페이스북 등을 규제하려 들면 미국 정부가 적극 보호에 나서는데, 공정위는 '다른 나라 하는 거 보고 하자'는 기분이 들어 심히 섭섭하다"며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간 합병을 글로벌 시장 내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봐달라"고 읍소했다.
공정위가 외국 경쟁 당국인 양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에둘러 말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는 외국 경쟁 당국 핑계를 댄다지만 세계 그 어느 나라도 본국보다 앞서 M&A 승인 조치를 내는 경우는 없다"며 "건실한 두 항공사 간 맞손을 잡는 게 아니라 아닌 일자리 지키기와 경영 정상화, 더 큰 차원으로는 산업 재편이 걸린 문제인 점 등을 인식했다면 빠른 결론을 내야 할 것"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노스이스트 얼라이언스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항공업은 국가간 상호주의적인 면이 반영되며, 지금까지의 M&A 전례들을 본다면 세계 각국에서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합병 승인도 큰 무리 없이 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