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외교안보팀장]차기 대통령선거를 6개월 앞두고 4차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남북미중의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북한은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담화를 고쳐내면서까지 적극 대응했다. 대외 메시지를 아껴온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까지 직접 나서 한미에 강온 전략을 구사했다. 55일만에 남북통신연락선도 복원됐다.
일단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이 언급되는 것은 북한의 반응 때문이다. 북한은 조 바이든 정부에 이전 정부와 다를 바 없이 적대적이라고 비난하면서 남북관계 진전을 강조하는 소위 ‘통남배미’(通南排美) 전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대북제재 완화란 소기의 목적을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해볼 것이란 예상이 가능해졌다. 북한 매체는 최근 ‘금메달로 조국의 영예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 카드도 흔들어보였다.
지난 9월 유엔총회 직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방한했을 때 이미 한중 간 문 대통령의 베이징올림픽 참석 여부가 논의된 바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이 “베이징올림픽이 남북관계 개선의 또 한번의 전기가 되길 바란다”고 하자 왕이 부장은 “적극적인 태도와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하루에도 역사적인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중국은 올림픽 흥행은 물론 미중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는 종전선언이나 남북정상회담에 긍정적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현재 미국은 떨떠름한 기색이다. 자칫 베이징올림픽 계기 ‘종전선언 예고편’ 등이 연출될 것을 경계하는 눈치이다. 종전선언은 미국이 주도할 북한 비핵화 협상을 견인할 중요 요건이 되어야 하는데 허투루 쓰일까봐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야말로 지금 종전선언이 시기상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올림픽이란 축제와 종전선언이 맞물리는 것자체가 그동안 종전선언의 시기를 숙고해온 미국의 입장과 거리가 멀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에선 4차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이 언급되고 있다. 특히 내년 2월은 너무 늦으므로 연말연초에 회담이 열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야당은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이나 4차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모두 ‘대선용 쇼’라고 치부하면서 주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탄탄한 남북관계 복원이 중요하고, 혹시라도 정상회담이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징검다리로 활용될 수도 있지만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사랑채 부근에 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 설치돼 눈길을 끌고 있다. 2018.12.7./사진=연합뉴스
이번에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처음 ‘시기상조’라던 북한 리태성 외무성 부상의 담화를 고쳐서 ‘좋은 발상’이라며 톤 조절한 ‘김여정 담화’가 이틀 연속 나와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 김정은 총비서가 29일 시정연설을 통해 김여정 담화를 되풀이한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목적으로 문 대통령과의 마지막 남북정상회담에 ‘올인’하기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 총비서는 발표 닷새만에 10월 4일이란 날짜를 골라서 남북통신선을 복원시켰다.
그런데 북한은 민족적 과업인 종전선언에 조건을 붙이면서 진정성을 떨어뜨렸고, 문재인정부를 또다시 시험대에 올렸다. 김정은 총비서가 시정연설에서 되풀이한 ‘이중 잣대 및 적대시정책의 철회’ 요구는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해서 자칫 북한의 ‘꽃놀이패’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북제재 완화’란 노골적인 표현을 안 썼다고 해서 북한의 속셈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보리 결의 위반국가인 북한은 먼저 국제사회에 어떤 약속을 이행해야 할 것인지 숙고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지난 1953년 일시적으로 맺은 정전협정이 70여년간 지속되면서 종전선언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과제로 남아있다. 일례로 독일은 1차 세계대전 막바지였던 1918년 정전협정을 체결한 이후 6개월만에 파리평화조약을 체결했다. 2차 세계대전 당사국들도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이 필요없었다. 당시 일본도 무조건 항복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반도에만 70여년간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 문제 등 ‘단절의 고통’이 존재한다. 이런 기막힌 현실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종전선언에 조건을 다는 것은 유감이다.
지난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한미가 북한과 대화에 매진한 결과 지금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시험의 모라토리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아직까지 북미 간 비핵화협상이 재개될 여지가 남아 있고, 미국이 대북 인도적협력사업 이외에 신뢰구축 조치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의 ‘조건없는 대화 요구’에 ‘조건 붙인 종전선언’으로 응대했고, 이런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야 하는 문재인정부의 마지막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