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황희찬(25·울버햄튼)이 선배 손흥민(29·토트넘)을 혹사(?)시켰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한국-시리아전에서 있었더 일이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7일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3차전에서 시리아를 맞아 2-1로 이겼다.
한국은 후반 2분 황인범(루빈카잔)의 환상적인 중거리슛에 의한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38분 시리아에 동점골을 내줬다.
무승부로 끝날 수 있었던 경기에서 손흥민이 후반 44분 극장 결승골을 터뜨렸다. 김민재(페네르바체)가 머리로 떨궈준 볼을 손흥민이 침착하게 시리아 골문 안으로 차 넣었다. 한국에 승점 3점을 안긴, '캡틴' 손흥민의 한 방이었다.
한국이 이기고, 손흥민이 2년만에 A매치 필드골로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렸으니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크게 아쉬움을 남긴 부분이 있었으니, 황희찬의 형편없었던 골 결정력이었다.
한국은 전반 10개의 슛(시리아 3개)을 날리고도 한 골도 뽑지 못했다. 유효슈팅 자체가 0개였으니 골을 넣을 수 없었다. 그 가운데는 송민규(전북현대)의 헤더가 크로스바를 맞는 불운도 있었으나, 황희찬이 3차례나 확실한 찬스에서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해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전반 22분 손흥민이 헤딩으로 떨군 공을 송민규가 황희찬에게 패스했다. 수비 방해도 없이 열린 상태에서 슛 찬스를 맞은 황희찬이 작심하고 때린 슈팅은 골대를 크게 넘어갔다. 전반 40분에도 황희찬은 송민규가 내준 패스를 좋은 위치에서 발리슛으로 연결했으나 역시 골대를 훌쩍 넘어갔다. 이어 전반 45분 황희찬은 다시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서는 찬스를 얻었지만 이번에도 슈팅은 골대를 넘어가고 말았다.
황희찬이 전반 세 차례 찬스에서 한 번이라도 골을 넣었다면 한국은 더욱 수월하게 경기를 끌고갈 수 있었을 것이다.
후반에도 비슷한 장면이 또 나왔다. 황인범의 골로 1-0 리드를 잡은 후인 후반 14분, 황희찬에게 또 좋은 슛 찬스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황희찬의 슛은 허공을 갈랐다.
황희찬은 골을 못 넣었지만 이날 활약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유럽파들은 일정상 피곤할 수밖에 없었고, 갈수록 체력이 떨어졌다. 황희찬만은 달랐다. 시종일관 그라운드를 휘젓고 볼만 잡으면 돌파를 시도했다. 황희찬에게 좋은 찬스가 잇따랐던 것은 그만큼 폭넓게 뛰어다니며 좋은 위치를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골 결정력만 따랐다면 황희찬은 이날 만점 활약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려 4번이나 황희찬이 골 찬스를 놓침에 따라 손흥민은 어쩔 수 없이 '혹사'를 당해야 했다. 5일 입국해 이틀만에 경기에 나선 손흥민은 충분히 제 몫을 해냈고, 극장 결승골까지 넣었지만 후반 중반 이후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냈다. 조금만 스프린트를 해도 숨을 헐떡였고, 막판에는 종아리를 움켜쥐고 쓰러지기까지 했다.
지난 9월 최종예선 2연전 때의 악몽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엇다. 당시에도 손흥민은 비슷한 일정을 소화하며 1차전 이라크전에서 풀타임을 뛰었는데, 피로 누적이 원인이 돼 종아리 부상을 당했다. 그로 인해 2차전 레바논전에는 아예 뛰지 못했고, 소속팀 토트넘으로 복귀해서도 2경기 결장을 했다.
사실 이날 시리아전에서 손흥민이 풀타임을 뛴 것은 무리였다. 더군다나 한국은 12일 이란과 원정경기도 앞두고 있다. 가능하면 손흥민을 일찍 교체해 이란전에 대비했어야 했다.
하지만 상황이 손흥민 풀타임으로 이어졌다. 전반을 0-0으로 비겼고, 후반 1-0 리드를 잡은 다음 추가골을 넣지 못하다가 동점골을 얻어맞았다. 손흥민을 뺄 수가 없었고, 끝까지 뛴 손흥민은 결국 결승골을 뽑아냈다.
후유증이 걱정된다. 손흥민은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웬만한 부상은 참아가며 뛰는 것이 축구선수의 운명이라며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이란전에서 손흥민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나설 수 있을지 우려스러운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니 '황희찬이 결정적 찬스를 놓치지 않고 골을 넣어줬다면'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대표팀 소집 직전 황희찬은 프리미어리그 뉴캐슬전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최고의 골 감각을 보였다. 그래서 더욱 많은 기대를 받기도 했는데, 시리아전에서는 무려 4번의 결정적 찬스를 모두 놓쳤다.
황희찬의 골만 제때 터졌다면, 한국이 2골 차 이상 앞서가기만 했다면, 손흥민을 비롯해 김민재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유럽파들이 출전 시간을 조절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황희찬은 다음 이란전에서 시원한 골로 손흥민의 '분투'에 보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디어펜=석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