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 |
「안철수의 생각과 다른 생각」 책 말미의 저자의 맺음말을 먼저 살펴보면 저자가 「다른 생각」을 책으로 내게 된 이유와 바램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안철수의 생각」을 읽고 “그(안철수)가 차지하는 지위가 높고 그에게 맡겨진 책임이 막중할수록 나라를 망치는데 걸리는 시간만 단축될 뿐이다……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를 추종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 나의 자식들과 나의 손자들 세대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루 빨리 나 같은 출판인이 이런 글을 쓸 필요가 전혀 없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린다.”라는 생각으로 「다른 생각」을 썼다.
(1) 안철수의 돈 생각?
▲ 안철수의 생각과 다른생각. |
「안철수의 생각」은 대권을 꿈꾸던 안철수의 사실상의 <대선공약집>이다. 선거를 앞두고 무가로 뿌려지는 <대선공약집>을 안철수는 권당 거금 1만3000원씩을 받고 팔기로 작정한 것이다. 내용이야 어떻든 대선공약 팸플릿보다는 품위도 있어 보이고 언론의 홍보 덕분에 광고료를 내가며 광고할 필요도 없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거금을 챙길 수 있다는 약삭빠른 계산이었을지도 모른다. 출판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저자 박기봉의 계산에 따르면 「안철수의 생각」은 정가 8000원이라도 이윤율이 200%를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그의 책 1장에서 안철수가 정치에 입문하면서 “’정의’, ‘공정’,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가진 자들의 양보’를 외치며 사회적 명성을 누리면서” 실제로는 “이윤 극대화에 충실한 장사꾼의 행동을 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2) 안철수재단 재원(財源)과 책으로 파는 선거공약집
1970년대 중후반 국내 대형증권사 조사과장 겸 정보과장 경력이 있는 저자 박기봉은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摘示)해가면서 안철수재단 설립기금 조달 과정에서의 주가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안철수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설과 함께 투기세력들이 ‘안랩’의 주식을 ‘대선 테마주’로 띄우면서 2011. 8. 9. 현재 2만350원이던 ‘안랩’의 주가는 5개월만인 2012년 1월초 ‘안철수재단’ 설립 계획이 보도되는 시점에 16만7000원으로 무려 820%나 폭등했다. 안철수는 이때 자신의 주식의 약 절반인 86만주를 시장에 내다팔아 720억 원을 챙겨 재단설립기금으로 조달했다. 저자는 “이런 사람이 과연 국민을 상대로 ‘정의’와 ‘공정’ 등을 떠들 자격이 있는가?” 묻는다.
출판회사 사장이기도 한 저자 박기봉은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이 ‘한국문학 단행본(03810)’으로 분류된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이 책을 ‘한국문학 단행본’으로 인식할 사람이 안철수 자신을 포함해 이 나라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있겠는가? 책의 성격에 맞지도 않게 이 책을 ‘03810’으로 분류한 것은 독자들이 서점에서 가장 많이 들르는 위치가 ‘한국문학’ 또는 ‘세계문학’ 코너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쉽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베스트셀러 선정 발표에 “판매부수 집계”를 제공하는 일부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에만 이 책을 공급한 것도 같은 이유라는 것은 두 말할 여지도 없다. 이런 사람이 대권을 넘보며 ‘정의’, ‘공정’,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가진 자들의 양보’를 말할 수 있는가?
(3) 안철수 생각 속의 ‘상식’과 ‘비상식’
안철수는 박원순에게 서울시장후보 자리를 넘겨주고 그를 지원하는 편지에 “(박원순 후보가 나경원 후보에게 승리하는 것이) 원칙이 편법과 특권을 이기는 길이며, 상식이 비상식을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272쪽)”라고 말했다 한다. 우선, 박원순 측에서 “나경원 후보가 가입비만도 1억 원이나 되는 피부클리닉 회원”이라는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 원칙이고 편법과 특권을 이긴 길이었는가?
저자 박기봉은 안철수의 ‘상식과 비상식’의 구분의 잣대에 아연실색한다. 안철수 진영의 주장에 환호하는 무리는 ‘상식’이고, 이들 주장에 분노하고 허탈해 하는 무리는 ‘비상식’이라는 분류인 것이다. 태극기와 애국가를 부정하고,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국 철수,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FTA무효화 등을 주장하는 무리들을 ‘상식’과 ‘원칙’의 집단으로 분류하고 옹호하는 것이 과거 야당대표로서의 안철수의 ‘상식’이란 말인가? 이런 사리판단의 잣대를 가지고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리를 꿈꾸며 ‘정의’를 논할 수 있는가? 안철수가 이진법으로 이루어진 컴퓨터 언어에 세뇌된 탓일까? 안철수의 잣대로 ‘비상식’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저자는 자신의 ‘상식’의 잣대로 「안철수의 생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쏟아낸다.
(4) ‘경제민주화’ 인가, ‘경제의 민주화’인가?
1987년 ‘6·29 선언’에 이어 개정된 제9차 개정헌법 제119조 2항에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6·29 선언’을 계기로 정치의 자유화와 민주화에 보조를 맞추어 당시의 ‘관치경제(官治經濟)’에서 탈피하여 개인과 기업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틀을 헌법조항으로 마련한 것이 ‘경제의 민주화’이다.
여기서 ‘경제의 민주화’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한정된 개념이며, ‘경제주체간”이라는 말은 경제주체인 가계, 기업, 정부 3자간의 관계, 다시 말하자면, “가계와 기업, 기업과 정부, 정부와 가계 사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경제주체간의 조화’란 가계와 가계 사이나 기업과 기업 사이처럼 하나의 경제주체 내부간의 조화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는 박기봉 저자의 논리가 타당하다.
안철수는 그의 책에서 헌법 상의 ‘경제의 민주화’를 “경제 영역에서의 정의 구현”으로 해석하며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나란히 설 수 있도록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 “뒤쳐진 사람도 출발선에 나란히 설 수 있게 국가가 부축해 주는 것”이라는 등의 주장을 늘어놓았다. ‘같은 출발선이란 대대손손(代代孫孫) 이어지는 인간의 삶에서 어느 시점을 말하는가?’, 천차만별의 여건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이 무슨 수로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는가?’, ‘국가가 뒤쳐진 사람을 출발선에 나란히 세운다면 앞서가던 사람들에게는 불의이고 불공평 아닌가?’라는 저자의 질문에 안철수는 어떤 답을 할 수 있는가? 또한 그의 주장들에 대해 ‘개념이 애매모호한 경제민주화란 정치적 용어로써 그 이름을 왜곡하여 우리 사회를 혼란 시키고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비판에 대해 안철수는 뭐라고 항변할 수 있겠는가?
(5) ‘재벌개혁’ 주장에 대해서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 /사진=연합뉴스
‘경제민주화’라는 잘못된 프레임에 갇혀 재벌개혁, 순환출자 금지, 전국경제인연합회 해체 등을 운운한 안철수는 동반성장을 위해 “이제는 대기업도 사회와 국가에 제 몫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의 책 128~129쪽). 표현 그대로 해석하자면, “중소기업 등은 사회와 국가에 제 몫을 해왔는데 대기업은 그렇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라도 제 몫을 하라”는 주문이다. 무지의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한마디로 황당한 선동이다. 저자 박기봉은 이에 대해 “불과 수백 명의 일자리밖에 만들어내지 못하는 중소기업사장이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국가에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 재벌기업에 대해 주제넘게 ‘사회적 책무’ 운운할 일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저자는 ‘동반성장’이란 말에 대해서도 “개별 기업에 거래 상대방 기업의 성장까지 고려, 배려, 또는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헌법 제119조 1항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했다. 출판사를 경영하는 중소기업 사장이기도 한 저자는 “나에게 거래 인쇄소, 제본소의 경영까지 고려해가면서 동반성장하라고 요구한다면, 내가 어떻게 수용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기업의 성장과 도태, 빈부격차의 상존 등의 사회현상은 그 자체가 자본주의사회의 기회이자 한계 아닌가? 민주주의사회에서 만인에게 평등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마땅하지만, 개개인이 타고나는 불평등한 환경과 기회, 개별 기업이나 기업집단의 업종이나 경영자의 경영능력에 따른 성장과 도태의 확률까지 정부가 조정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6) ‘전면무상급식’이라는 정치적 사기
‘전면무상급식’ 문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전교조 출신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등이 선거에서 재미를 본 강력한 무기이자 좌익세력들이 그럴싸한 거짓논리로 국민을 현혹시키고 정부와 여당을 궁지에 몰아넣는 전가지보(傳家之寶)의 하나이다. ‘전면무상급식’ 문제는 옳고 그름의 잣대로 논쟁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현 상황에서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느냐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과 직접적인 함수관계에 있는 문제이고, 한정된 예산에서 ‘전면무상급식’ 실시로 인해 감축되거나 희생되어야 할 분야의 기회비용까지 따져 판단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이 고집하는 ‘증세 없는 복지’ 주장도 나름대로의 함정이 있지 않을까?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모든 일에는 예산제약이 있고 기회비용이 따른다.”라는 경제학의 기본원리로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회적 배려라는 차원에서 저소득층 자제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정책을 해왔다. 그럼에도 야당과 좌익세력들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만 무상급식을 해주면 그들이 눈칫밥을 먹게 된다”는 얼핏 그럴싸한 논리로 ‘전면무상급식’을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는 무기로 휘둘러댔고, 안철수는 그의 책에서 “낙후된 복지를 조금 확충하자는 정도의 얘기를 갖고도 ‘포퓰리즘’ 운운하는 사람들을 보고 화가 났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학교 도서관과 운동장을 팔고 저소득층 학생들의 학비 지원을 중단하고, 그 돈으로 전체 학생들에게 우선 밥부터 먹이자”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초등학교 산수 실력만 있어도 한정된 재원을 가지고 한 곳에 지출을 늘리려면 추가로 돈을 가져오거나 다른 곳의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7) 스웨덴과 우리의 복지 환경과 조건 비교
요즘 우리나라에서 ‘복지’하면 막연히 떠오르는 단어들이 스웨덴, 핀란드, 전면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등이다. 실상과 실체는 모르거나 가려진 채 나름대로의 계산과 목적에 따라 그저 떠들어댄 덕분이다. 저자는 복지문제에 대해 말하면서 “스웨덴과 한국은 그 바탕이 다르다”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리고 안철수의 기준으로 볼 때 ‘비상식적 세력’에 속할 저자의 눈에는 ‘복지’를 얘기할 때마다 스웨덴이나 핀란드를 거론하는 자칭 ‘상식적 세력’ 모두가 “한편으로는 사기꾼들로 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로 보인다.”라고 했다.
2014년 현재 스웨덴의 1인당 GDP는 57,600달러로 우리나라의 28,800달러의 정확히 두 배이다. 게다가 스웨덴의 조세부담률은 47%로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의 두 배를 넘는다. 저자가 말하는 양국간의 역사적, 정치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바탕과 현실의 차이를 차치하고라도 국민 1인당 조세부담액이 우리의 4배를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리고 부가가치세는 우리나라가 10%인데 비해 스웨덴은 25%나 된다. 그런데 안철수는 그의 책에서(108쪽) 이런 사실들은 덮어두고 스웨덴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면서 조세부담률은 우리나라와 OECD 평균 26%와 비교하며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다. 안철수는 국민들에게 스웨덴 수준의 복지를 위해 지금보다 최소한 두 배의 세금을 내야 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가? 저자가 안철수 류의 사람들이 “사기꾼 아니면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보인다고 한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같은 이유로 필자의 짧은 식견으로는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증세 없는 복지’의 비방(秘方)이 궁금하다. 현 정부 들어 2년 연속 세수(稅收) 부족의 어려움을 겪는 건 복지공약 이행을 위해 늘어나는 지출에 맞춰 수입을 무리하게 늘려 잡은 탓 아닐까? 이런 세수 부족 상황에서도 국민의 40% 내외가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현실은 덮어두고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하는 것이나 2013년 총조세(總租稅) 대비 법인세 비중(14%)이 OECD국가 중 두 번째로 높고(OECD 평균 8.3%) GDP 대비 법인세 비중이 다섯째로 높은 사실은 외면하고 법인세 인상을 해법으로 주장하는 야당 모두 무식하거나 무책임한 ‘포퓰리즘’ 구호가 아닌가? 스페인이나 그리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복지는 공짜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혜택이 아니다.
(8) 교육복지?
「안철수의 생각」 속의 문답에서 제정임의 “교육복지는 어떤 방향으로 확충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안철수는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단계적으로 늘리면서 대학들의 지출구조를 개선해서 등록금을 낮추도록 유도하는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두리뭉실 답했다. 우선, 이들의 문답처럼 ‘반값(대학)등록금’을 ‘복지’ 차원으로 논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어찌 되었건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 시내 초등학교의 전면무상급식과 서울시립대학의 등록금을 밀어붙였고, 박 대통령도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반값등록금’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했다.
만일 ‘반값등록금’이 실현된다면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가 생길까? 필자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은 2008년 83.8%를 기록한 후 2012년 71.3%로 낮아졌지만, 아직도 OECD 국가 평균의 두 배에 가깝다. 또한 서구선진국의 경우 등록금 부담이 낮은 국공립대의 비율이 90% 내외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겨우 20%에 불과하다. 결국 비싼 자녀 대학등록금이 가계부담의 주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등록금만 내면 입학과 졸업이 보장되는 대학이 수두룩하여 결국 대졸 청년 10명 중 4명이 실업자가 되고 있다. 대학등록금이 거의 없다는 유럽국가들의 대학진학률이 40% 내외인데 반해 대학등록금이 비싸다고 아우성치는 우리의 대학진학률이 이들의 두 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 아닌가? 서구선진국의 대학진학률이 낮은 이유는 대학공부를 필요로 하지 않는 학생들은 등록금이 무료라도 대학진학을 하지 않고 전문기술을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나 직장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대학은 전문지식을 배우고 학문을 탐구하는 곳이지 취직을 위한 자격증을 취득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9) ‘반값등록금’과 ‘청년실업’ 문제
저자는 우리나라 인성부재교육과 청년실업 문제의 근본 원인을 김대중 정부 당시 이해찬 교육부장관의 교육정책 실패의 탓으로 보고 있다. 대학 입학을 쉽게 하여 사교육을 근절한다는 그의 단세포적인 발상으로 대학과 대학생 수를 늘려 결과적으로 부실대학과 청년실업자를 양산했으며, 전교조를 합법화해 ‘스승’이 아니라 ‘교단에 서는 노동자’들이 편향된 이념교육과 인성부재 교육으로 나라의 교육을 망쳤다는 시각이다. 정치권이 ‘반값등록금’ 문제를 운운할 것이 아니라 대학진학률을 현재의 반 수준으로 낮추고, 기업이 고용을 늘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백 번 타당한 얘기다.
이런 현실에서 ‘반값등록금’을 실행한다면 대졸실업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며, 고졸기술인력의 감소로 노동시장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노동의 질을 떨어뜨려 국가산업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반값등록금’ 혜택에 따른 무리한 대학진학으로 저소득층의 가계부담을 오히려 가중시키거나 ‘반값등록금’에도 대학에 못 가는 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심화시킬 우려도 있다. ‘반값등록금’이 아니라 부실 대학들을 과감히 퇴출시켜 대학 수를 반으로 줄이고 대학 졸업을 어렵게 하여 공부하는 학생들만이 장학금을 받아가며 대학에 다닐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 아닌가?
자본주의체제에서 선진복지국가로 가기 위해 노동자의 권익 보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기업의 경영권 보장이다. 경영 상황에 따라 기업이 일부 종업원들을 일시해고(layoff) 할 수 있는 노사간의 기본역학관계가 정립되지 않는다면 기업은 직원채용에 소극적이거나 인건비가 싼 해외 공장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노조가 철밥통을 고수하는 가운데 대학졸업자만 양산하게 될 ‘반값등록금’ 정책으로 얻어지는 국가적 이득이 무엇인가? ‘재고정리’ 구호 같은 ‘반값’이란 말 자체가 비논리적이고 주먹구구식 선동 아닌가?
(10) 한국형 복지
「안철수의 생각」 책 속에 열거된 복지정책의 세부 항목들은 스웨덴 식 복지를 외쳐왔던 사람들의 구호 이상의 것이 없다. 저자 박기봉은 복지를 ‘경제적 복지’와 ‘비경제적 복지’로 구분한 영국의 경제학자 피구(Arthur Cecil Pigou, 1877-1959)의 「후생경제학(The Economics of Welfare)」 이론을 들어 우리나라의 복지 문제를 얘기한다. 피구 교수는 한 사회의 복지 수준은 경제성장, 분배의 평등화, 고용과 물가의 안정 등과 같은 경제적 복지의 증대와 함께 생활환경의 개선, 민주주의의 확립, 인간성 회복, 사회의 윤리도덕 확립 등 비경제적 복지도 동시에 향상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와 역사적, 문화적 뿌리나 정치적 현실이 다른 스웨덴의 복지를 논할 것이 아니라 공자가 꿈꾸었던 ‘대동사회(大同社會)’의 모습에서 우리의 복지 모델을 찾을 것을 정치권에 주문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한국적 복지 모델”은 맹자의 말처럼 “부자들이야 무슨 걱정이냐. 이런 외롭고 의지가지없는 자들이 불쌍하구나”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비경제적 복지가 전제되지 않은 복지국가 건설은 사기이며, 정치권에서 설왕설래하는 보편적 복지의 핵심은 경제적 복지가 아니라 비경제적 복지여야 한다고 단언한다.
국가 재정에 큰 부담 없이 국민의 삶의 수준을 높이는 진정한 보편적 복지는 공공질서와 법치의 확립, 공직사회의 부정부패 척결, 공정한 판결로 사법부의 신뢰 회복, 자유민주주의를 흔드는 자들에 대한 엄벌, 공교육 중심의 교육제도 확립, 안보의식과 애국심의 고취 등 전국민이 체감하는 비경제적 복지의 향상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복지정책은 일단 도입된 후에는 취소나 축소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최근의 그리스나 스페인 등의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증세 없이 보편적, 경제적 복지를 실행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적 구호일 뿐이다. 만일 현재의 예산 집행의 비효율과 낭비를 줄이고 공직자 부패를 척결하여 절약되는 예산이 보편적, 경제적 복지를 이룩할 수 있는 규모에 이른다면 이 나라 공직자들은 모두 감옥행이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필자가 “증세 없는 복지”의 실체와 실현 가능성을 궁금해하는 이유이다.
(11) 저소득층만 울리는 평준화 교육
저자는 작금의 우리나라 공교육의 참담한 모습은 중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최대피해자는 저소득층이라고 단언하면서, “우리나라의 공교육을 죽인 장본인은 ‘닫힌 사회, 계급사회’이며, 공교육이 다시 살아나려면 잘못된 경제적 인센티브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안철수의 생각」에 대해 ‘발등 가렵다고 구두 신은 채로 신발 위를 긁어대는 격화소양(隔靴搔癢)’ 격이라고 일축한다. 저자는 “왜 사람들이 체육이나 음악 등 예능이나 예술 분야에서는 사람마다의 차이를 당연시하면서도 지식을 배우는 학교 공부에서만은 수학능력의 차이를 부정하는가?”라고 묻는다. 평준화된 학교 교실 속에 결코 평준화될 수 없는 수학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면서 학생들에게는 관심과 애정조차 없는 ‘교단에 서는 노동자’들이 교육현장을 유린하여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죽어간 것 아닌가?
정치판에서는 ‘평준화’라는 미명으로 개인의 능력의 “차이”를 인간적 “차별”로 몰아 유권자의 표를 몰아갔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하여 ‘전면무상급식’으로 선거에 재미를 본 교육감들도 많지 않은가? 공교육이 무너지면서 각자의 능력에 따라 사교육을 찾아 나서게 되면서 여기서도 경제력 차이에 다른 “차별”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학업성적 격차 확대, 성적불량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반감, 유명 학원을 다니는 부유층 학생에 대한 반감과 증오심 등이 학교폭력과 왕따 등의 학내 문제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학생 인권을 앞세워 교사의 권위를 떨어뜨린 교육당국과 스스로 ‘노동자’로 나선 일선 교사들도 공교육을 죽인 장본인들이다. 저자는 원인과 결과가 이러함에도 학교폭력 등의 문제가 입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안철수의 논리에 대해 “입시 부담이 지금보다 훨씬 컸던 옛날에는 왜 학교폭력이 사회문제가 되지 않았던가?”라고 묻는다.
「다른 생각」의 저자는 정부가 공교육의 권위를 되찾는 제도를 도입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은 ‘저소득층 사람들에게 평준화 교육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당신의 자녀들이라는 받아들이기 싫은 현실을 깨닫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그들의 잘못된 인식, 아니 그간 속아왔던 것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우선임을 역설한다.
(12) 부패 문제의 해결 방안
저자는 우리사회의 부패 문제는 경제범죄가 아니라 공직자의 부패가 문제임을 역설하면서 안철수가 그의 책에 늘어놓은 부패 문제에 관한 그럴싸한 구호에 대해 “부패와 경제범죄를 혼동함으로써 부패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식견도, 의지도 없다”고 못박았다. 또한 저자는 복지국가 건설의 전제조건은 “국민들이 정부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자신들의 돈지갑을 국가에, 정부에, 따라서 공무원들에게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때 비로서 그 재원 조달이 가능해진다”라고 했다. 이런 논리에 근거하여 안철수의 “부정부패의 문제는 대기업들, 대재벌들 등 경제계의 문제이고, 공무원이나 공직자들의 경우에는 윤리와 도덕성의 문제”라는 인식자체가 잘못임을 지적했다.
공무원이 공복(公僕)의 입장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불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여 그 수혜자로부터 부당하게 획득한 이득이나 권리의 일부분을 받아 챙기는 뇌물수수행위가 바로 ‘공직자의 부정부패’이다. 이런 행위들은 결국 국민과 기업들에게 시간적, 경제적 손해를 끼치고 기업의 생산성과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저자는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기업의 생산성과 국제경쟁력을 해치는데 그치지 않고 국민의 애국심마저 크게 해치는 것을 우려한다.
‘공직자의 부정부패’에는 반드시 상대가 있다. 뇌물을 요구하는 공무원들에게 국민 또는 기업이 뇌물을 바치는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와 경제적 이득을 지키려는 생존을 위한 자기방어로 볼 수도 있다. 뇌물이 통하지 않고 뇌물을 줄 수도 없는 사회에서 굳이 뇌물을 주려는 국민이나 기업이 있을 리 없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수그러드는 상당 기간 동안 ‘쌍벌죄’ 적용을 유보하여 뇌물 공여자(供與者)는 처벌하지 않고 뇌물을 받은 공직자만 처벌하는 과도적 조치와 함께, 부정부패 공직자에 대한 형사처벌 외에 명단 공개, 파면, 연금 몰수 등의 징벌을 병과(倂科)하도록 공무원법을 개정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일반 국민과 기업들은 공무원과 결탁한 부당이득 취득이 불가능해지면 자연히 윤리경영에 전념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기대이다. 이것이 선진복지국가로 가는 바른길 아닌가?
(13) 새 둥지가 뒤집어지면 온전한 알이 없다
저자는 ‘새 둥지가 뒤집어지면 온전한 알이 없다(覆巢之下 無完卵)’라는 중국 속담을 들어 국가안보와 법치 확립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꼭 필요한가, 꼭 강정마을이어야 했으며, 주민들에 대한 설득이 충분했는가”라는 안철수의 의문과 그가 소위 ‘상식세력’으로 분류한 야권인사들과 전문시위꾼들의 망동에 분노한다. 대권에 도전하려던 안철수가 정녕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필요한 이유를 모르는가? 강정마을이 아니라 서귀포나 다른 마을이었다면 문제가 없었다는 건가? 강정마을 주민들과는 이미 대화와 설득이 끝난 상황에서 정의구현사제단과 외지의 전문시위꾼들이 몰려들어 난동을 벌인 사실을 모르는가? 그리고, ‘용산참사사건’은 철거된 그곳 주민들이 아니라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을 위시한 외부 세력들이 벌인 참극인 걸 모르는가?
저자는 안철수에게 “안랩의 주주총회에 아무 관련 없는 내가 나타나 돈을 내놓지 않으면 안 나가겠다고 행패를 부린다면, 안철수 교수는 끝까지 대화를 통해서, 나의 요구조건을 들어주면서, 나로 하여금 주주총회장에서 나가도록 설득할 텐가?”라고 묻는다. 아무런 권리도 없는 자가 부당하게 나서서 막무가내로 버티면 경찰을 불러 쫓아내는 것이 법치사회 아닌가?
안철수는 그의 책에서 “나쁜 경험을 오래하는 것보다 아무런 경험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낫다”라고 했다. 이에 대한 저자의 반문(反問)을 읽기에 앞서 필자는 교수라는 사람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모르는지 의아했다. 그는 그에 대한 경험부족 우려에 대해 "수영하는 사람에게는 수심 2m 수영장이나 태평양이나 똑같다"라는 기개로 응수하더니 그 후 “수영장과 태평양은 많이 다른 것 같다”며 슬그머니 철수(撤收)했다. 이런 안철수의 모습에 대해 저자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진심으로 고대하는 정치지도자는, 정치판 밖에서 고고한 체하며 그럴듯한 거짓말로 젊은이들을 선동하는 정치 미숙자인 학자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14) 평화만 구걸해서 될 일인가?
저자는 ‘지식은 존중하되 지식인은 경멸하라.”라는 모택동의 말을 인용해서 이 사회에서 경멸 받아 마땅한 지식인에게 일침을 가했다. 매스컴 덕에 과대포장된 너절한 식자들이 경거망동하며 국민을 현혹시키는 현실을 개탄하는 말이다. 저자는 「안철수의 생각」 속의 안철수의 통일관, 대북관, 안보관에 대해 “어린아이의 유치한 발언에 대해 논평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 같은 한심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정부의 햇볕정책은 교류협력으로 남북 긴장완화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안철수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북한이 개방체제로 변화하리라는 기대로 돈을 퍼줬던 ‘햇볕정책’이 오히려 “(북한이) 햇볕을 쬐는 동안 변한 것은 저쪽이 아니라 우리 쪽이 되어버린 꼴”이라고 개탄했다. 북한이 그 돈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서해교전 사태를 일으켜 수많은 우리 장병들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민들로 하여금 대북경계심을 허물어버리도록 했고, 대공 정보조직을 해체해버리고, 저들이 요구하는 돈을 마구 퍼주도록 하지 않았던가? 이런 현실에서 “만약 안철수가 대통령이 된다면”이라는 전제 하에 저자는 “우리나라는 지금의 상황보다 더욱 한심하게, 더욱 비굴한 태도로…… 오직 ‘평화! 평화! 평화!’만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북의 폭력집단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면서 그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갖다 바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라며, 안철수가 이런 시각을 갖게 된 이유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대한민국은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주장하는 세력에 기만 당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이 사회의 ‘소통’을 외치기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거짓이 아닌 진실……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의 애국심……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공유하는 것이 우선임을 강변한다. 두 말할 나위 없는 얘기다. 우리 사회에서 ‘대화와 소통’, ‘화해와 용서’가 남북간, 진보와 보수간의 갈등해소의 해법인 양 떠들어대고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무리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겠는가?
(15) 맺음말
조우석 문화평론가는 2012년 8월 「<안철수의 생각> 비판적으로 읽기」라는 제목의 평론에서 ‘빌려온 남의 생각을 짜깁기한 책, 그것도 급조된 흔적이 역력해 수상쩍다’라고 전제했다. 그는 ‘안철수의 엉거주춤주의란 보수·진보의 균형을 잡는 척하며 좋은 말이라면 일단 쓸어 담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반영하는데…… 그런 모호함이란 안철수라는 남자의 철학 부재, 비전의 실종을 보여준다고 나는 본다…… 「안철수의 생각」에 대한 나의 중간결론은 이렇다. 한 무자격자의 용감한 출사표, 그러나 내용은 부실하며, 싸움터로 나갈 담대함조차 부족한 자의 공허한 결전 의지……’라고 비판했다.
안철수는 MBC TV 연예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여 인기를 얻었고, 결국 그때의 거짓말들로 스스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올가미에 걸렸다. 그는 자신의 어눌한 말투나 나약한 이미지를 털어내고 ‘터프가이(tough guy)’ 이미지를 심으려고 “집에조차 알리지 않고 입영열차를 탔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고, 미국의 여러 회사들이 이미 안티바이러스프로그램을 개발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었을 당시에도 “V1 백신을 세계최초로 개발하여 국민과 국가를 위해 무료로 배포했다”고 호언했다. 그의 수많은 거짓말들을 생각하면 그가 만약 국회인사청문회에 설 날이 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정치인 또는 정치지망자들이 그런 거짓말을 하는 건 애교로 봐준다고 하더라도 그의 이름 ‘철수’처럼 과거의 사소한 철수(撤收)는 제쳐놓더라도 서울시장 후보 철수, 대선 후보 철수, 야당 공동대표 철수 등 중요한 때마다 슬그머니 철수하는 사람을 어떻게 정치판에 나서도록 후원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그(안철수)가 차지하는 지위가 높고 그에게 맡겨진 책임이 막중할수록 나라를 망치는데 걸리는 시간만 단축될 뿐이다……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를 추종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 나의 자식들과 나의 손자들 세대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루 빨리 나 같은 출판인이 이런 글을 쓸 필요가 전혀 없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린다.”라는 저자의 절절한 마음에 공감하며 졸고를 마무리한다. 앞으로 장래가 창창한 안철수가 또 어느 자리에 나설지도 모르니 그의 사람됨됨이와 그릇을 국민들이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철영 재단법인 굿소사이어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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