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경쟁 주자였던 이낙연 전 당대표 캠프 소속 의원들에게 손을 내밀며 '원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걸어온 길이 주목받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2005년 정치에 입문한 후 흙수저 비주류의 길을 걸어왔다. 본보는 만 57세에 집권여당 대선 후보로 올라선 그의 궤적을 조명해 보고자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성장기 시절
이 후보는 본관 경주, 경상북도 안동 출생이다. 1963년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이 후보 본인이 직접 공개한 국민학교 1학년 성적표에 따르면, 성적은 미미했지만 동무들과 잘 놀며 씩씩했다고 한다.
1977년 국민학교를 졸업하면서 지금의 이 후보를 만들어준 경기도 성남시로 이주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소년 이재명은 중학교를 다니지 않고 가내수공업 목걸이 공장을 다녔다.
법적으로 근로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여러가지 가명으로 공장들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동마고무'에서 손가락을 다치는 첫 산업재해를 당했고, 이후 '대양실업'에서 프레스에 손목이 눌려 관절이 으스러지는 두번째 산업재해를 당했다. 결국 이 사고로 이후 장애 6급 판정을 받아 '병역 면제'를 받게 된다.
소년 이재명은 대양실업을 다니던 중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후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게 된다.
선생님의 배려로 무료로 단과반을 듣게 된 이재명은 1978년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하게 되고, 2년 뒤 1980년 대입 검정고시에도 합격하게 된다.
1981년 7월 공장을 완전히 그만두고 공부에만 전념한 청년 이재명은 중앙대 법학과 82학번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1986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청년 이재명은 사법연수원에 입학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0월 12일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온라인으로 '긴급 현안 기자회견'을 열고 기존 입장대로 국회 국정감사에 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사진=경기도청 제공
사회운동가, 법조인의 길을 걷다
연수원 재학 당시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을 듣게 된다. 노무현의 강연에 감명을 받은 청년 이재명은 훗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1989년 사법연수원 18기 수료 후 변호사가 된 후 개인 변호사사무소를 개업하게 된다. 이재명 변호사는 그때부터 인천시와 광주시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활동을 하면서 노동 및 인권 변론을 하게 된다.
1995년에는 성남시민모임 창립 구성원으로 시민운동을 시작한다. 이는 성남 지역에서 사회운동가이자 변호사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집권여당의 대선후보로까지 거듭나도록 만들어준 첫번째 계기는 여기서 일어난다.
바로 변호사 이재명이 성남시립병원설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시민들과 함께 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했던 일이다.
당시 한나라당이 다수당이었던 성남시의회가 주민발의 조례를 47초 만에 날치기로 부결해 버렸고, 변호사 이재명은 이를 바라보던 방청객들과 함께 항의하다가 특수공무집행방해 죄로 수배됐다.
당시 이 사건은 변호사 이재명이 사회운동, 변호사 활동 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정치에 입문하기로 마음 먹은 계기가 된다.
성남시장 출마로 시작한 정치인의 길
이 후보는 2005년 8월 23일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면서 성남시장 출마 의사를 밝힌다. 이듬해 열린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아 성남시장에 출마했으나 득표율 23.75%에 그치며 낙선했다.
2008년 총선에서는 성남시 분당갑에 전략공천됐지만 보수정당의 텃밭 등 불리한 여건에서 득표율 33.23%로 낙선의 고배를 또다시 마신다.
이 후보에게 반전의 계기는 2010년이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 출마하여 51.2%를 득표하며 성남시장에 당선되었다.
시장 취임사에서 "시민이 행복한 시정, 기회가 균등한 성남을 함께 만들자"고 강조했던 이 시장은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0월 11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참배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당시 성남시장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지역구 정치인이 아니라 전국구로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모라토리엄 선언과 관련해 이명박정부 국토부와 진실 공방을 이어가면서 전국적 화제를 모은 그는 취임 직후부터 성남시립의료원 강화에 나섰고, 무상교복 정책을 이듬 해부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포퓰리스트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이 시장은 여러가지 복지정책을 강하게 추진했다. 정책이 가로막히면 성남시의회 또는 이명박정부와 각을 세우고 소송도 불사하는 강한 모습을 보였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연임에 성공한다. 박근혜정부를 향해 이 시장은 당시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거듭 정부를 비판하며 진상 규명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 시장은 성남시장으로 재임한 8년간 당초 본인이 제시했던 287개 공약 중 270개를 실행해 94%의 공약이행률을 기록했다.
대선 경선, 그리고 경기도지사
2016년 말 이 시장은 첫번째로 대선에 도전하게 된다. 결과는 아쉬웠다. 사이다 발언 등으로 주목받았지만 민주당 유력 대권주자였던 문재인에게 밀렸고 안희정에게도 밀려 3위로 마감하게 된다.
이 시장은 이후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도지사 관련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된다.
당내 경선에서 전해철, 양기대 후보를 누르고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된 이 시장은 본선에서 56.4% 득표을을 기록하며 남경필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치고 20년 만에 '민주당계 정당' 경기도지사가 된다.
2018년 6월 이 지사는 취임사에서 "강자의 횡포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 도지사가 되겠다"며 "저는 정치의 역할이 소수 강자의 횡포를 억제하고 다수 약자를 도와서 함께 어우러져 살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기득권 편이 아니라 평범한 도민 편에서 '억강부약(抑强扶弱)'을 실천하는 도지사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이 지사의 도정 행보는 본격적으로 전국을 향한다.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가 꾸준히 지적해온 '닥터헬기 이착륙 문제'를 해결한 것을 비롯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대유행 사태 초기였던 2020년 2월 경기도 과천시 신천지 총회본부에 직접 방문해 신도 명단 제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재난지원금 지급 카드를 꺼내 전국으로 확산시킨 것 또한 경기도지사 재임 성과 중 가장 크게 손꼽힌다. 문재인정부와의 이견 속에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해 '무거운 짐을 나누었던 모든 국민들이 골고루 보상받아야 한다'는 자신의 철학을 관철시켰다.
지난 7월 1일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했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을 참배한 후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광역자치단체별 공약이행률, 단체장 업무수행 평가에서 연일 높은 평가를 받은 이 지사는 2021년 7월 1일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온라인 비대면 영상을 통해 출마 선언을 한 이 지사는 이날 "수많은 정책 중 가장 효율적인 정책을 선택하는 것은 용기와 결단의 문제이고, 강력한 추진력이 있어야 개혁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며 "저 이재명은 지킬 약속만 하고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켰다"고 강조했다.
이 지사가 이날 출마선언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국민일꾼으로서의 자신의 경쟁력이다.
그는 "성남시장 8년, 경기도지사 3년 동안 공약이행률이 90%를 넘긴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며 주권자중심의 확고한 철학과 가치, 용기와 결단, 강력한 추진력으로 저항을 이겨내면서 성과로 증명했다"고 자신했다.
이 지사는 이날 "위기를 이겨온 사람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위기가 더 많았던 흙수저 비주류이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성과를 만들어 온 저 이재명이야말로 위기의 대한민국을 희망민국으로 바꿀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 지사는 이후 진행된 민주당 경선에서 누적 득표 과반수를 기록하며 '이재명 대세론'을 입증하며 본선에 직행했다.
다만 성남시장 재임 당시 일어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일각에서 의심의 눈초리와 불신이 자리잡고 있어 이에 대한 극복 또한 이 후보의 숙제로 남아 있다.
이 후보는 다음주 경기도정 국정감사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국감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 후보가 자신에게 제기된 일각의 의혹에 대해 명쾌한 해명을 할지 주목된다.
대권 본선의 길에 들어간 이 후보가 국민들에게 어떤 길을 제시하고 자기만의 경쟁력을 전할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