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태우 기자]중고차 소비자들의 피해 사례가 최근에도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시장 볼륨은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의 불신은 팽배한 상태다. 신차의 감가상각비용을 중고차시장에서 입는 정신적, 물적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보험금으로 생각하는 소비자들도 있을 정도다.
이에 일부에서는 대기업의 진출을 통해 시스템을 갖추고 이를 바탕으로 신뢰회복을 먼저 해야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에 진출해 있는 수입차 업체들은 몇 년전부터 이 같은 인증중고차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 완성차 기업들은 규제의 벽에 가로막혀 여전히 시장을 지켜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일부에서는 역차별 논란까지 등장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고차 시장개방은 정치권의 이권다툼에 가로막혀 양성화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 초.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중고차 시장 개방 여부에 대한 결론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계속해서 미뤄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때 이미 중고차 업계에서 중고차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줄 것을 신청(2019년 2월)한 지 2년이 지났을 때였다.
또 다시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우려는 해소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산하 을지로위원회 주관으로 진행된 중고차 매매업계와 완성차 업계간 중고차시장 개방 관련 상생협의가 지난달 10일 최종 결렬되며 중소기업벤처부가 결론을 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한 달 넘게 아무 소식이 없다.
사실 중기부의 이같은 미온적인 태도는 하루이틀일이 아니다. 지난 2013년 중고차매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이후 3년씩 2회 지정 후 2019년 2월 보호기간이 만료됐다. 원칙대로라면 이때부터 대기업의 중고차매매업 진출이 허용됐어야 한다.
하지만 중고차 업계에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하며 중고차 시장 개방은 미뤄졌다.
'소상공인 생계형 접합업종 특별법'에 따르면 소상공인단체가 종사 업종에 대해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신청을 하면 동반성장위원회가 생계형 업종 추천 여부를 담은 의견서를 최대 9개월 안에 중기부에 제출해야 하고, 중기부는 이를 참고해 최대 6개월 내에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지정 여부를 최종 결정해야 한다.
중고차 업계는 최대 15개월의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중기부는 그보다 더 오래 시간을 끌었고, 동반성장위는 법정 시한에 맞춰 2019년 11월 7일 중고차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 '부적합'으로 중기부에 의견서 제출했다. 하지만 중기부는 법정 최종심의 종결일이 2020년 5월 7일이었음에도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그해 7월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중기부 상생간담회에서 국내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시장 진출 의견을 표명했다. 10월에는 중기부 국감에서 현대차와 기아가 중고차시장 진출 계획을 공식화했지만 중기부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불신으로 가득한 중고차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현대자동차그룹과 같은 완성차 업계나 대기업이 직접 나서서 분위기 전환을 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진=미디어펜
이후 경제단체와 소비자 단체에서 기존 중고차 사업자들의 허위매물, 사기, 협박 등으로 소비자들이 받는 피해를 거론하며 시장 정화 차원에서 완성차 업체의 시장 진입 허용을 촉구했으나 중기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법정시한 1년이 넘게 지난 올해 6월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중재에 나서 '중고차매매산업발전협의회'를 발족시켰으나 중고차 업계에서 중고차 매집 제한과 신차 판매권 양도 등 무리한 요구를 고수하면서 양측간 협의는 최종 결렬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또 다시 공은 중기부로 넘어왔으나 2년 넘게 그래왔듯 버티기에 나선 것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중기부가 소비자 권익이나 업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결정을 미루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중기부가 시간을 끌어온 지난 2년여간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하면 꽤 합리적 의심이다. 지난해는 총선이 있었고 올해는 역대급 재보선이 있었다. 내년엔 정치 이벤트의 끝판왕이라는 대선이 예정돼 있다.
중기부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건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다수지만 중고차 업계와 그에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은 결사반대한다. 숫자는 소비자들이 많지만 정치적 적극성은 생업이 달린 중고차 업계가 더 높다. 둘 다 여당이 무시할 수 없는 여론이다.
이에 일부에서는 조심스레 중고차 시장 개방 여부가 대선 때까지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중기부가 계속해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 예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셈이다.
이런 태도는 직무유기다. 결단을 내려 좀 더 많은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아야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는 매년 1만건 이상의 중개·매매 관련 불만 상담이 접수된다. 중고차 강매를 당한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도 최근에 보도된 바 있다.
정부 부처가 선거를 앞두고 큰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은 오랜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안이긴 하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오랜 기간동안 수많은 소비자들의 피해가 있었고 이번 기회를 계기로 새로운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만큼의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 정치권역시 소비자역시 중요한 국민이라는 사실을 되새겨 봐야 할 때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