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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조원태 회장 고졸 만들기' 실패한 교육부, 더 신중했어야

2021-11-03 11:33 | 박규빈 기자 | pkb2162@mediapen.com

미디어펜 산업부 박규빈 기자

[미디어펜=박규빈 기자]'정치에 관한 사무적, 행정적인 것을 인식해 특정한 논리나 기준 따위에 따라 판정을 내리는 인간의 사유 작용.'

국어사전이 내리는 '정무적 판단'에 대한 정의다. 때에 따라서는 자의적 판단에 의해 내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부의 행정 행위는 상식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않은 경우가 왕왕 발생하곤 한다.

지난 1998년 교육부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인하대학교 부정 편입학 의혹에 대해 조사를 벌여 '편법'이 동원됐다는 결론을 도출해냈으나 입학 자체에 대한 취소 조치는 하지 않았다.

2018년,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이 불거지자 교육부는 재차 진상 조사에 나섰고, 그해 7월 11일 조원태 당시 대한항공 사장의 인하대학교 편입학과 졸업을 취소할 것을 정석인하학원과 인하대학교에 요구했다. 미국 힐리어 칼리지 이수 학점과 성적이 편입학 지원 자격에 미달하는데도 인하대학교가 조 회장을 받아줬고, 조 회장이 2003년 인하대를 졸업할 때에도 학사 학위 취득에 필요한 학점을 취득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인하대학교는 '학생 편입학은 특정한 규정이 없는 한 학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장이 행한다'는 내용을 규정한 교육법과 내규에 따른 만큼 불법 행위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외국 대학에서 학점을 이수한 경우 이것만으로 자격 여부를 따질 수 없어 교내 해외교류심사위원회와 편입학 자격심사위원회를 개최해 이수 학기를 심사했고, 3학년 편입학 응시 자격을 부여했다는 게 인하대학교 측 주장의 요지였다.

실정법 위반 사항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20년의 간극을 두고 같은 사안에 대해 교육부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되는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송사에 휘말리는 것은 어찌보면 예견된 수순이었고, 그와 동시에 교육부는 국가 기관 행정에 대한 신뢰도를 스스로 깎아먹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사진=대한항공 제공


애당초 여러 정황상 조 회장에 대한 교육부의 조사는 한진그룹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편승한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의 인하대 졸업을 취소하면 과연 우리 사회는 무엇을 얻을 수 있었으며,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에 대한 정의는 구현될 수 있었을까. 교육부 당국자들이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내심 명분으로 내걸고자 했던 공익적 가치는 무엇이었나.

너도 나도 대학교에 진학하는 마당에 한국 사회에서 학사 학위의 무게는 그리 무겁지는 않다. 하지만 멀쩡히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조 회장의 학사 학위에 대해 취소 처분하겠다는 교육부는 어쩌면 처음부터 그를 '고졸 회장님'으로 만들어 망신주기로 마음 먹었던 것은 아닌지도 의심스럽다.

지난 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는 교육부 조치가 위법하다며 정석인하학원의 손을 들어줬고, 이로써 조 회장은 학사 학위를 지켜냈다. 반기업적이고도 관존민비 정서가 팽배한 한국 사회 속 지극히 당연한 판결이다.

정부 당국의 움직임은 언제나 보편타당하고 신중해야 하며, 예측 가능해야 행정 서비스를 받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교육부는 법원의 이번 판결을 엄중히 인식하기 바란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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