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백지현 기자]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16일 "한국의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규모와 증가속도가 세계 최상위권이고 자산가격과 가계부채 간 인과관계 등을 고려할 때 가계부채의 선제적 대처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신 센터장은 이날 오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가계부채 1800조 시대-한국금융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미디어펜 2021 금융포럼'에서 "향후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 과정에서 신흥국 및 일부 주요국의 긴축발작(Taper Tantrum)과 위기 발생 가능성이 크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이 1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가계부채 1800조 시대-한국금융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미디어펜 2021 금융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최대 뇌관으로 지목된 가계부채는 현재 1800조원을 넘어서 사상 최대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정부부채와 민간부채가 누적됐고, 양대 위기 극복과정에서 누적된 부채 규모는 전례 없는 수준까지 급증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부채 비율과 빠른 증가속도를 보이고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가 크다고 신 센터장은 전했다. 실제 올 2분기 세계 주요국의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8.5%로 선진국(79.0%)과 신흥국(52.8%)과 비교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경제 규모 대비 가계부채 증가속도 역시 세계 1위다.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지속적인 정책 노력에도 2분기 가계대출 증가율은 상반기중 4.5%, 작년 2분기와 비교해 10.3%로 상승했다.
은행권에서 전반적인 증가세를 주도했던 가계대출은 2019년 하반기 이후 감소세를 보였던 비은행권으로 옮겨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가파른 상승세로 전환됐다. 주로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투자수요로 판단되며, 규제가 은행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비은행권으로의 풍선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대출유형별로는 주택담보대출에서 점차 기타대출로 증가추세가 강화됐다. 실제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주담대가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했다. 그러나 하반기 이후 강화된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 회피 수요 및 공모주식·가상자산 투자수요에 신용대출 규제 강화 이전의 선수요가 반영되면서 기타대출이 급증했다.
실제 주담대 가계부채 증가율 추이(전년동기대비)는 지난해 2분기 6.4%에서 3분기 7.2%, 4분기 8.0%, 올해 1분기 8.5%로 꾸준히 증가하다 2분기 8.6%로 주춤하는 모양새다. 반면 기타대출은 같은 기간 3.9%, 6.7%, 9.0%로 껑충 뛰다 올해 1분기 10.8%에서 2분기 12.5%로 상승했다.
주담대에 비해 만기가 짧은 신용대출 비중이 증가하면서 대출의 질적 안정성 저하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여기다 지난해 이후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빠르게 상승하며 차주의 채무상환능력이 금리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신 센터장은 현 상황에서 가계부채 부실화를 촉발할 수 있는 잠재적 요인으로 "주택 등 자산가격 급락과 경기국면의 침체 전환으로 인한 가계소득 감소, 기준금리 인상 등 통화 금융정책 기조에 따른 시장금리 상승"을 꼽으며 "전반적 국내외 경제·금융 환경을 고려하면 금리변동에 따른 리스크 발생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가계부채 규모가 급증한 상황에서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면 국내 가계부문과 자산시장에서의 충격이 불가피하다"면서 "특히 주택가격, 주가 등 자산가격이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는 상황에선 충격의 민감도 역시 상응하는 수준으로 높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당장 시스템 위기로 전이되지는 않겠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국의 통화정책의 방향 전환을 전제로 잠복 리스크의 현재화 가능성에 반드시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상성장경로로의 복귀와 높은 기대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점진적인 통화정책 정상화가 필요한 상황이며, 현재 거시경제 여건 및 전망 등을 기초로 한다면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 압력이 있을 것이라는 게 신 센터장의 설명이다.
신 센터장은 "향후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과정이 진행되면 신흥국뿐 아니라 일부 선진국에서도 긴축발작 및 위기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국내에서도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이 우려되며, 이 과정에서 국내 경제의 약한 고리인 가계부채 및 자산시장에서의 타격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국내 가계부채의 GDP 대비규모와 증가속도가 세계 최대 수준인 점, 부채의 질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점, 자산가격과 가계부채 간의 높은 인과관계를 고려하면 가계부채의 총량‧속도‧질적 관리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며 "가계부채 관리 대책은 가계 부실과 자산가격 리스크가 경제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거시경제의 여건이나 금융불균형의 정도,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를 고려한 점진적인 금리 정상화와 거시건전성 차원에선 국민의 경제 규모와 기초여건에 부합한 수준으로 부채의 총량 및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신 센터장은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선 "단기적으로는 가계부채 및 가수요 관리를 통해 주택가격 상승 기대를 차단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예측 가능한 공급 계획과 실효성 확보로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통화·금융정책의 정상화 과정에서 소외된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재정 측면의 지원과 보완책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대출금리 상승과 중소기업‧소상공인 원리금 상환 유예조치가 완료되면 자영업자, 다중채무자,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대출 부실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자영업자대출 원리금 상환유예 종료 등 출구전략에 대비해 특정 시점에 상환 부담 및 부실위험이 집중되지 않도록 상환 시점의 분산, 저금리 대환대출 전환, 장기분할상환 등 리스트 이연을 통한 연착륙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 센터장은 "출구전략으로 원리금 상환 불능 상환에 직면할 수 있는 잠재적 취약·고위험 자영업자들에 대한 맞춤형 지원전략 프로그램이 시급하다"며 "가령, 업종전환 지원, 온라인화 및 On&Off 융합모델 전환 지원, 신용회복 프로그램 가동 등 사회·재정적 측면의 지원이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