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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탐험(48)- 박인비의 이유 있는 포커페이스

2015-03-12 14:34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방민준의 골프탐험(48)- 적의 없는 골프의 위력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골퍼가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골프를 스포츠 경기의 하나로 대하는 것이다.
스포츠란 본질적으로 대결의 게임이다. 대결에는 반드시 승패의 판가름이 난다.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를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데, 상대방을 쓰러뜨려야만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이 대결구도에서 모든 갈등과 마찰이 태어난다.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갈등과 마찰은 승패가 결판난 뒤에도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 여가활동의 일환이라 해도 그 농도가 옅을 뿐 갈등과 마찰의 여진은 그대로 남아 있다.

승자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지만 승리에 도취돼 자만에 빠지거나 언제 닥칠지 모를 복수의 불안, 승리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헤어날 수 없다. 패자는 쓰디쓴 패배감을 맛보며 좌절에 빠질 수도 있고 패배에 승복하고 더 나은 게임을 위해 겸허하게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골프는 수많은 스포츠 중 가장 고독한 게임이다. 마라톤이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하는 고독한 게임이라고 하지만 승부는 한 사람의 승자와 수많은 패자로 갈린다. 특히 골프 경기는 남자 여자, 주니어, 청장년, 시니어 등의 구분을 둘 뿐 동등한 조건으로 대결을 벌인다. 아마추어 주말골퍼들의 라운드에서도 핸디캡을 감안하는 것 외에는 모든 조건은 동등하다. 얼마나 실수를 덜하고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느냐에 집중하며 자신과 고고한 싸움을 벌여나가야 한다.

골프를 대결구도의 쟁투로 인식하는 골퍼는 영원히 골프의 진수를 깨닫기가 힘들다. 골프를 쟁투를 푸는 ‘석쟁(釋爭)의 게임’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골프의 진수에 도달할 수 없다. 동반자는 물론 자연조건들, 골프도구들, 많은 장애물들과의 대립․대결관계를 풀고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조화를 추구할 때 골프의 새로운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

   
▲ 골프를 대결구도의 쟁투로 인식하는 골퍼는 영원히 골프의 진수를 깨닫기가 힘들다. 골프를 쟁투를 푸는 ‘석쟁(釋爭)의 게임’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골프의 진수에 도달할 수 없다. 동반자는 물론 자연조건들, 골프도구들, 많은 장애물들과의 대립․대결관계를 풀고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조화를 추구할 때 골프의 새로운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 /삽화=방민준
어떤 사람이 융자금을 얻기 위해 은행의 대리를 찾아갔다. 서류검토가 끝난 다음 대리는 말했다.
“당신에게 융자를 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자 내 눈을 잘 보십시오. 내 두 눈 가운데 한쪽이 유리눈입니다. 어느 쪽이 유리눈인지 알아맞히면 당신에게 융자해주겠습니다.”
그 사람은 잠시 동안 대리의 눈을 보았다.
“오른쪽 눈이 유리로 박은 눈이군요.”
“선생, 어떻게 그리 잘 아십니까?” 대리는 놀라면서 말했다. 대리는 이 사내가 어떻게 알아맞혔는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오른쪽 눈이 유리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 사람은 말했다.
“글쎄요. 당신의 오른쪽 눈이 보다 더 자비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지요. 이 눈은 틀림없이 유리눈일 거라고.”
(오쇼 라즈니쉬의 '지혜로운 자의 농담' 중에서)

자아가 끼어들지 않은 유리눈은 맑고 자비롭다. 자아를 고집할 때 거짓과 욕심이 잉태된다. 나를 내세우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바로 투쟁이다. 투쟁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자아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무(無)가 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투쟁은 무의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골프에서 최대의 무기는 마음의 평정이다. 아무리 기량이 뛰어난 골퍼라 해도 마음의 평정을 잃고 격랑에 휩싸이면 자신의 리듬을 잃고 추락하고 만다. 박인비가 건조하리만치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은 플레이 결과에 따른 희로애락을 얼굴에 드러내는 순간 마음의 평정을 잃고 동시에 게임의 리듬을 잃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승리를 쟁취해야 하는 프로골퍼들은 동반자들을 적으로 인식하는 순간 자신의 리듬을 잃고 승리와 멀어진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오직 자신을 상대로 고고한 경기를 펼쳐나가려고 애쓴다. 물리쳐야 할 상대가 있지만 투쟁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으려 무든 애쓴다.

아마추어 주말골퍼라고 예외는 아니다. 프로도 두려워하는 실수(상대를 적으로 돌리는 일)를 주말골퍼들은 매번 아무 생각 없이 범한다.
적의(敵意) 없는 라운드, 한번 시도해보면 분명 놀랄 것이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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