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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 아니라 '공권력 상실' 구조적 문제다

2021-11-22 13:31 | 김규태 차장 | suslater53@gmail.com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지난 15일 인천시 남동구 한 빌라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당시 경찰이 현장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사태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일어나고 있다.

우선 1차적인 비판은, 여경이 '지원 요청'을 이유로 현장을 이탈해 1층으로 내려갔고 건물 밖에 머물다가 뒤늦게 3층 사건 현장으로 올라가 피해가 커졌다는 점이다.

층간소음 갈등으로 40대 남성이 아래층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두른 이 사건에서 여경이 지원 요청하느라 현장을 이탈한 것에 대해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 21일 직접 사과했다. 관할 경찰서장인 인천 논현경찰서장은 이날 직위 해제됐을 정도다.

현재 일가족의 아내는 목 부위를 찔려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남편과 20대 딸 또한 손과 얼굴을 다쳐 치료를 받았다. 가해자는 지난 17일 살인미수 및 특수상해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경찰은 22일 시도 경찰청장과 경찰서장이 모두 참석하는 회의를 열고,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해 현장 대응력 강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문제의 초점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이 법조계로부터 나온다.

일반 시민들과 네티즌들 상당수는 여경에 초점을 맞추어 지난 몇년간 여경 채용을 대거 늘린 문재인 정부의 경찰 임용정책에 대해 성토하고 있지만, 법조계 의견은 다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경찰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긴 하지만, 이를 위해 직접적인 실행력-공권력을 발동하기가 현재의 법령·판례상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김창룡 경찰청장. /사진=경찰청 제공

실제로 대법원 판례(1999.3.23 선고 98다 63445)에 따르면, 경찰은 목적달성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필요한 한도 내에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총기 사용의 경우 사용 요건을 충족하려면 범죄의 종류, 죄질, 피해법익의 경중, 위해의 급박성, 저항의 강약, 범인과 경찰관의 수, 무기 종류, 무기 사용 여부, 주변 상황 등을 고려하여 사회통념상 상당하다고 평가되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문제는 법원이 총기 사용에 있어서 이러한 요건을 더 엄격하게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지역 일선에서 근무하고 있는 형사 A씨는 22일 본보 취재에 "집행 과정에서 이번과 같이 범인이 흉기를 휘두르고 있다면 이에 대처하는 경찰이 여경이든 남경이든 혹은 몸싸움에 능한 덩치 좋은 남경이든 상관없이 지극히 위험한 상황"이라며 "경찰이 이에 맞서 총기 등 무기를 적극 사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적법한 형태와 한계가 있다는게 가장 큰 위협 요소"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한국은 미국 경찰과 완전히 다르다"며 "미국 경찰처럼 실시간으로 현장에서의 즉각적인 판단으로 총기 사용이 무한정 허락되는 일은 꿈만 같은 일"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일선에선 법집행에 있어서 총기휴대를 기피하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경향 또한 일어나는데, 이건 총기사용의 허용범위를 지나칠만큼 엄격히 적용하는 법원 태도가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법원의 관련 판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있어야 위법 여부를 확신할 수 있다"며 "현장에서 흉기를 든 범인과 대치하고 있는 경찰 누가 총기 사용에 대한 합법을 자신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지역 경찰청에 근무하는 또다른 형사 B씨는 이날 본보 취재에 "재판에 들어가 보면, 법원 판사들은 총기 이외에 다른 수단의 사용 가능성을 항상 강조한다"며 "총기사용이 되는 경우에도 가능한 한 다리 등 하체부위를 겨냥해 피해를 줄일 것을 요구하는데, 다리 부위에 총격을 해보셨냐 묻고 싶다. 맞추기 매우 어려울 뿐더러 설사 다리를 총격해 맞추더라도 그것이 허용 한계를 초과했다고 판사 나으리가 제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선 경찰들은 이런 판례들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며 "적법한 총기 사용과 위법한 사용의 한계가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아 누구나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법조계는 안타까운 시각으로 이번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 경찰에게 걸린 제약이 너무 많다는 설명이다.

관련 사건을 여러차례 다뤄본 변호사 한모 씨(46)는 이날 본보 취재에 "경찰이 안전수칙을 위반한 행위가 위법 또는 불법적인 직무행위라고 법원이 판단하는 순간, 그 경찰의 공무상 생명은 사실상 끝난 것"이라며 "그것이 업무상 과실이면 형사책임도 져야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은 당연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 변호사는 "국가는 총기사용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범죄자에게 손해배상을 주고, 총을 발사한 경찰관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정도"라며 "공권력 집행을 위해 총기사용 규제가 대거 완화되면서 법원이 전향적인 판결을 내리지 않는한, 경찰들의 몸사리기는 계속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몸싸움이나 물리적 충돌을 기피하고 지원을 요청하겠다는 이유로 현장을 피한 여경에게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흉기를 든 범인을 제압하기에는 몸 건장한 남경들도 어려움을 겪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게 현실"이라며 "경찰청은 맨날 똑같은 대책을 내놓기에 앞서, 해당 법령과 법원 판단에 제대로 호소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경찰 총기사용의 제한은 '경찰장비의사용기준등에관한규정'이라는 대통령령에 달려 있다. 경찰청이 향후 대책으로 이에 대해 전면적인 개정을 촉구할지 주목된다.

시민 안전을 지키기에 너무도 많은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누구의 목숨이든 소중하다. 경찰이 자신의 안전과 시민의 안전을 모두 지킬 수 있도록 방패와 검이 제대로 주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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