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재기란 이름은 지금의 흑석동에서 동작동으로 넘어가는 강변에 검붉은 구릿빛 돌들이 많았다는 데서 생겨났다고 한다. 동재기에서 발음되는 대로 ‘동작’이라고 한 것. 흑석동(黑石洞) 역시 마찬가지 어원을 지녔다.
동작진 옛터는 현재 ‘동작역’이 있는 이수천(梨水川) 입구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한강의 5대 나루터 중 하나로 꼽혔던 곳이 ‘노들나루(노량진)’, ‘광나루(광진)’, ‘양화나루(양화진)’, ‘삼밭나루(삼전도)’ 혹은 송파나루(송파진)와, 바로 이 곳 동작진이다.
세월이 상전벽해(桑田碧海)처럼 변해, 옛 나루터에 지금은 철교가 놓이고 나룻배 대신 지하철이 굉음을 내며 달린다.
지금의 동작동을 대표하는 곳은 서울 현충원(顯忠院)이다.
효사정에서 본 한강/사진=미디어펜
동작구는 이 현충원과 그 바로 뒷산인 서달산(달마공원)을 중심으로, 2개의 원이 붙은 듯한 형태의 트래킹코스를 조성했다. 바로 ‘동작 충효길’이다.
동작충효길은 동작구에 산재돼 있는 공원과 녹지축, 한강 등 생태자원과 현충원, 효사정, 용봉정 등 충(忠)과 효(孝)의 역사문화자원, 그리고 노들역, 노량진역 등 교통자원을 하나로 연결한 걷기벨트다.
총 7개의 코스가 있는데, 1코스 ‘고구동산길’과 3코스 ‘한강나들길’을 엮어, 지하철 9호선 흑석역에서 강변과 산길을 따라가다가 흑석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택했다.
흑석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건물에 ‘원불교소태산기념관’이 있다. 원불교(圓佛敎)를 창시한 ‘소태산’(호) 박중빈(朴重彬) 선생과 원불교 교단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는 곳이다.
그 빌딩을 지나면, 바로 산길이 나온다.
계단을 조금만 올라도 한강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강변도로에 차량들이 막힘없이 달리고, 강 건너 이촌동엔 고층아파트들이 우뚝하다.
여기는 ‘효사정공원’이다.
효사정(孝思亭)은 조선 세종 때 한성부윤과 대사헌 및 우의정을 지낸, 공숙공 노한(盧閈)의 별장이었다. 노한은 모친이 사망하자 이 곳에 정자를 짓고 3년간 시묘를 살면서, 부모를 그리워했다. 그는 호까지 효사당(孝思堂)으로, 효의 상징 같은 인물이었다.
효사정이란 명칭은 노한의 동서였던 호조참판 강석덕(姜碩德)이 지었다. 강석덕의 아들이 유명한 명신 강희맹으로, 강희맹은 ‘효사정기’를 지었다.
이처럼 효사정은 예로부터 효도의 상징으로 유명했는데, 동작충효길의 충은 현충원, 효는 효사정에서 따 온 것으로 보인다.
한강변에 날아갈 듯 우뚝 솟아 경관이 가장 뛰어난 정자로, ‘서울시 우수경관 조망장소’다.
정자 앞 구석에는 한국전쟁(韓國戰爭) 당시의 ‘흑석동 전투지’ 표석도 있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서울이 함락되자, 국군 9연대가 3일간 적의 한강 도하를 지연시키기 위해 방어전투를 했던 곳이란 설명이다.
정자에서 막 내려오면, 동작구 출신인 심훈(沈熏)이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 동상이 보인다.
이 동네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일제 때 농촌계몽운동을 다룬 명작 상록수(常綠樹)의 작가, 영화인이자 독립운동가 심훈에 대한 기념물들이다. 심 선생의 출생지가 바로 이곳 흑석동이다. 효사정을 시작으로 노량진에 이르는 산책로까지, 그의 기념물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한강변을 따라 조금 가면, 선생의 시 ‘그날이 오면’ 시비(詩碑)와 그의 생애를 소개하는 안내판들이 나그네를 반긴다.
한 구석엔 학도의용군(學徒義勇軍) 현충비도 있다. 과연 동작충효길 답다.
도로 건너편 언덕은 ‘용봉정근린공원’이다. 이 공원은 흑석동과 노량진본동의 경계 근처에 있다. 그 아래 학교가 동양중학교다.
언덕 꼭대기엔 정자는 없고, 나무데크가 깔린 예쁜 공원이 있다. 여기서 보는 한강 조망도 시원하다. 역시 조망명소인 이 곳은 지난 2017년 9월 30일 한화그룹 ‘세계불꽃축제’가 열렸던, 불꽃놀이의 장소이기도 하다. 또 사진작가들에겐 서울 야경 촬영의 명당(明堂) 중 하나다.
한강대교와 그 밑 노들섬이 정답다.
‘용봉정’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6호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의 준말이다. 조선 정조가 화성으로 행차할 때, 배다리로 한강을 건너며 잠시 쉬던 곳이다. 정조가 이 곳의 경치가 “마치 용이 꿈틀거리고 봉황이 나는 것 같다”며, 용양봉저정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한강대교(漢江大橋) 남단 교차로에서 양녕로를 건너면, 오른쪽 ‘노들나루공원’ 옆으로 지하철 9호선 노들역이 있다.
노들역 4번 출구 오른쪽에서, 다시 낮은 산줄기가 시작된다. 이 산길이 ‘고구동산 길’이다.
정상에 수도국(水道局)이 있는 ‘수도산’을 둘러싼 고구동산의 낮은 산줄기와 근린공원을 따라가는 숲길이다. 정자와 벤치, 농구장과 테니스코트 등은 물론, 어르신들을 위한 게이트볼장도 마련돼 있다. 아파트 단지들 사이로 거짓말처럼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숲길이다.
중앙대학교 옆에서 잠시 차도를 만나는데, 길을 건너 조금 더 올라가면 왼쪽으로 다시 숲길이 시작된다. 서달산 자연관찰로(自然觀察路)다.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온다는 잣나무 숲길이 참 아름답다.
서달산자연공원의 ‘숲속 도서관’에선 아이들이 책을 읽고, 야생화와 수목학습원, 암석원(巖石園), 땅 속 체험장, 동물 발자국 찾기, 자벌레 놀이기구, 수많은 태극기로 장식된 나무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많아 호기심을 자극한다.
중간에 도로를 가로지르는 생태육교를 지나면, 곧 179m의 서달산(달마공원) 정상이다.
서달산 달마사 입구/사진=미디어펜
흑석동 남서쪽에 있는 서달산(西達山)은 북한산에서 남산을 거쳐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도심 속 자연의 축을 이루는 산으로, 달마(達磨) 대사가 서쪽 나라인 인도에서 온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 정상 바로 아래에 ‘달마사’가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재강굴산’이라고도 한다.
정상에는 동작대(銅雀臺)란 2층 누대가 높이 솟아있다. 2층에 오르면,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남쪽으로 관악산과 삼성산이 웅장하게 버티고 있고, 서쪽에는 국사봉(國師峰)이 지척이다. 북으로는 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그 너머 북악산은 물론 북한산도 멀지 않게 보인다.
하산길 흑석동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다가 포장도로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달마사가 나온다.
달마사(達磨寺)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조선불교 일본 불교화’를 반대했던 항일선승(抗日禪僧) 송만공 대선사와, 그 법통을 이은 유심대사가 함께 1931년 창건했다.
입구에는 2층 누각 형태의 일주문이 솟았고, 예쁜 황토빛 토담이 경내를 둘러싸고 있다. 그 앞에는 5층 석탑이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대웅전(大雄殿) 오른쪽 담 옆에서 보는 한강 조망이, 동작대보다 더 낫다. 발밑 장독대의 항아리들이 참 정겹다. 왼쪽 작은 계단을 올라가면 삼성각이 보이고, 조금 더 안쪽에는 마르지 않는 샘인 ‘소림굴’과, 중생들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위한 안식처 ‘봉안당’이 위치한다.
달마사를 나와 ‘달마약수터’와 ‘달마정’을 지나 다시 생태육교를 만난다. 그 아래 도로를 따라 왼쪽 방향으로, 계속 내려간다. 흑석동 주택가다.
아파트단지와 중앙대학교(中央大學校) 병원을 지나, 삼거리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흑석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