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코로나19 위기로 글로벌 항공업계가 고사 위기에 빠졌다. 대한항공도 어려운 시기를 보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기지를 발휘하며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있다.
7일 대한항공에 따르면 조원태 회장은 최근 아시아·태평양 지역 유력 항공 전문 매체 '오리엔트 에비에이션'으로부터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업계는 글로벌 항공업계가 사상 초유의 위기인 코로나19의 장기화 상황 속에서 조원태 회장이 보인 과감한 결단과 리더십이 한 몫 했다고 평가한다.
조원태 회장은 지난해 6월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기에 국적 항공사 대표이사 자격으로 중국 우한 현지 교민들을 국내로 수송하는 전세기에 직접 탑승해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조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솔선수범하는 리더의 모습으로 비춰지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같은 달 조원태 회장은 유휴 여객기를 화물기로 활용해 밀려드는 수출 물량을 소화하는 기지도 발휘했다.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산 의약품·의료 장비 등에 대한 수요가 세계적으로 급등해 화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특히 의료 물품 수출은 당시 전년 대비 10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조업사 한국공항 직원들이 기내 좌석에 짐을 실은 모습과 좌석 탈거 작업을 진행 중인 대한항공 정비본부 직원들./사진=대한항공 제공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세계 항공사들은 미화 520억달러(약 61조5160억원), 지난해에는 1380억달러(약 163조2540억원) 수준의 적자를 본 것으로 파악됐다. IATA는 내년에도 116억달러(약 13조7228억원) 규모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이래 3년 간 2010억달러(약 237조7380억원) 가량 누적 손실을 기록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전체 손실액은 코로나19가 찾아오기 전에 쌓아온 9년 간의 수익을 뛰어넘는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런 난국 속에서 조원태 회장의 기지는 빛을 발했다. 대한항공 여객 사업 부문 역시 여느 항공사들과 마찬가지로 2019년 대비 탑승률이 90% 이상 줄어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화물 운송사업을 적극 전개하며, 흑자를 유지하는 묘수를 만들어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여객기를 화물기로 전용한 것은 가히 혁신이라고 부를만 하다"고 평가했다.
이 밖에도 코로나 위기 속 비상 경영 체제임에도 조원태 회장은 실적 부진으로 매물로 나온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과감한 결정을 했다.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항공 분야의 일자리를 보존하기 위한 대승적인 결단이었다는 게 업계 평가다. 특히 조원태 회장은 양사의 합병 조건에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정은 양 사 합계 2만7000여명의 고용 안정을 지켜냈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국내 항공업계를 1·2위를 다투는 두 회사의 통합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경영 효율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가 개발해온 무인기들./사진=대한항공 뉴스룸 캡처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 조원태 회장은 지속 가능한 미래 성장 동력 발굴에도 집중하고 있다.
최근 대한항공은 현대자동차·현대건설·인천국제공항공사·KT 등 5사 간 '한국형 도심 항공 모빌리티(K-UAM)' 업무 협약을 체결해 'UAM 팀 코리아' 컨소시엄에 동참했다. 대한항공은 UAM 운항·통제 시스템 개발과 여객·물류 운송 서비스 사업 모델 연구 등을 수행을 통해 국내 UAM 시스템의 글로벌 표준화를 시키기 위한 전략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밖에도 지난 1976년부터 항공우주사업본부를 조직해 운영해온 대한항공은 자사의 역량을 바탕으로 무인기 개발 사업도 꾸준히 추진 중이다. 이미 정찰용 드론을 육군 사단급 부대에 납품한 이력이 있는 만큼 앞으로도 해당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대차의 UAM 개발과도 시너지가 기대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당사는 무인기를 제작해보는 등 지난 수십년 간 항공기를 다뤄본 경험이 있다"며 "항공 역학 관련 전문 인력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당사는 UAM 개발과 관련, 국토교통부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며 "교통 관리·운송 서비스·기체 제작 분야 참여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 회장(오른쪽)이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도 소재 아이에이티㈜의 항공엔진테스트시설(ETC) 완공 기념행사에서 이영근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왼쪽), 안상수 의원(가운데) 등 내빈들에게 보잉 777 엔진과 테스트 시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 외에도 조원태 회장은 대한항공의 항공 엔진에 관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프랫 앤 휘트니(P&W)와 2016년 6월 인천 영종도에 대한항공 자회사 IAT를 설립해 항공기 엔진 테스트 셀(ETC)을 완공한 바 있다. 이곳에서는 프로그래밍을 통해 엔진 제조사와 형식에 관계 없이 15만파운드급 엔진까지 테스트 할 수 있다.
이를 더욱 확장하기 위해 조원태 회장은 3346억원을 투입해 부천 엔진 정비 공장을 영종도로 옮겨 통합 운영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유지·보수·정비(MRO)는 항공 분야에서 대표적인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국내 대부분의 항공사들은 자체 중정비 시설이 없어 외국에서 서비스를 받는 게 현실이다. 지난 2018년 기준 전체 정비 비용 중 54%인 1조3796억원이 해외에서 집행돼 국부가 유출됐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영종도 내에 더욱 확장될 엔진 정비 공장과 테스트 셀을 아시아 지역 민항기 MRO시장의 메카로 육성해 대한항공은 새로운 수익과 일자리 창출을 해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지난 2015년 조양호 회장이 그룹 임원들과 청년 구직자 취업 기회를 확대하고자 '청년 희망 펀드'에 30억원을 기탁해 간접적으로 구직난 해소에 힘쓴 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기업 경영의 기본은 사람'이라며 '인재'를 대하던 아버지의 철학을 대를 이어 지켜가고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2019 IATA 연차 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대한항공 제공
2004년 조양호 회장은 대한항공 창립 35주년을 맞아 '세계 항공업계를 선도하는 글로벌 항공사'를 만들겠다며 '엑셀런스 인 플라이트(Excellence In Flight)'라는 슬로건을 선포하는 등의 수많은 과업을 남겼다. 이런 아버지의 후광에 가려있던 조원태 회장이 뒤이어 사령탑에 오르며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만들어가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대한민국 항공 물류와 여객 사업을 책임져온 당사는 기존 사업 모델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자 한다"며 "이를 통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대한항공은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6개 분기 연속 흑자를 내고 있다"며 "이는 조양호 선대 회장 사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조원태 회장의 경영 능력이 입증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짚었다.
허희영 항공대 교수도 "조원태 회장은 직원들에 대해 순환 휴직을 단행하면서도 대화와 소통으로 노사간 화합을 잘 이끌어내고 있고, 그 사이 기업 가치도 많이 올려둔 공이 있다"며 "경영권을 방어하는 와중에도 주주 권익도 잘 챙겼고, 이 같은 흐름대로라면 한국산업은행과 체결한 7대 의무 사항도 무리 없이 이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