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유진의 기자]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최초로 아파트의 분양원가를 공개한 가운데, 자칫 분양원가에 대한 공개 범위가 민간으로까지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건설업계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 내 아파트 전경./사진=미디어펜 김상문기자
업계에서는 민간으로 확대될 경우 각 건설사만의 경쟁력은 사라질 것이고, 영업비밀까지 대외적으로 공개되면 기업의 사익추구 논리에 맞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심지어 분양가가 낮게 책정되더라도 시장 안정화 보다는 향후 로또청약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는 시각이다.
1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서울시와 SH공사는 지난 15일 고덕강일4단지에 대한 분양원가를 시작으로 사업정산이 마무리된 최근 10년치 건설 단지 34곳에 대한 분양원가를 내년까지 모두 공개하기로 했다. △마곡지구 △내곡지구 △세곡2지구 △오금지구 △항동지구 등 5개 지구 28개 단지에 대해서는 내년 상반기 중에, 준공과 정산을 앞두고 있는 △마곡지구9단지 △고덕강일지구8·14단지 등은 하반기 중 관련 정보를 공개할 계획이다. 정보 공개는 서울시와 SH공사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분양원가 공개 항목은 건설원가(61개 항목)와 택지조성원가(10개 항목)다. 특히 아파트 가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필수 공개 항목으로 지목되던 택지조성원가도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10개 항목은 △용지비 △용지 부담금 △조성비 △기반시설 설치비 △이주대책비 등이다. 설계·도급 내역서를 포함해 상세 근거와 객관적 지표가 담긴 원자료까지 모두 제공한다.
오세훈 서울 시장은 지난 2007년 재임 당시 '분양가심의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SH공사 아파트에 대한 분양원가를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공개한 바 있다. 하지만 2008년 분양가상한제 시행 이후 서울시와 SH공사는 분양가격만 공시했다. 지난해 SH공사가 항동 공공주택지구 4단지에 대한 분양원가를 공개했으나 택지조성원가는 미포함돼 있었다.
김헌동 SH공사 신임사장은 "지난해 공개한 분양원가 61개 항목에 더해 설계·도급·하도급 내역서까지 범위를 대폭 공개범위를 확대한다"며 "풍선처럼 부풀려진 주택 분양가의 거품 제거에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서울시가 대표 사례로 공개한 고덕강일4단지의 택지조성원가는 1㎡당 271만7119원, 건설원가는 1㎡당 208만6640원으로 확인됐다. 총 분양원가는 1765억800만원에 분양수익은 980억5300만원이었다. 분양수익 980억원은 다시 고덕강일4단지 임대주택 건설비로 260억1100만원, 2019년 SH공사 임대주택 수선유지비로 475억4500만원, 2019년 다가구 임대주택 매입에 244억9700만원이 사용됐다.
그러나 문제는 분양원가 공개를 민간으로 확대됐을 경우다. SH가 모든 비용을 투명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이를 민간 기업에까지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분양원가 공개는 2007년 참여정부 시절에 도입됐던 제도다. 아파트를 건설하고 분양을 진행할 때 공사비 항목으로 들어가게 되는 부분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사업주체의 폭리를 막고 수요자들에게 합리적인 분양가로 공급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제도 시행 당시 시장에서는 건설사들이 소비자에게 세부적인 품목까지 공개하게 되면 거품낀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 시킬 수 있다고 봤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단순 시공하는 건설사의 경우 큰 타격을 입지 않겠지만, 시행·시공을 다하는 자체개발 사업의 경우 분양원가 공개가 당연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문제는 민간에까지 강요했을 때 각 건설사만의 경쟁력도 떨어지고 기술력 또한 노출될 가능성이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건설사는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이익을 남겨야 하고, 건설기술에 들어간 비용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분양가를 산정한다. 이에 건설사가 분양가 원가 공개만으로 소비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분양가를 책정하기 어렵다 목소리다.
일각에서는 원가 공개로 인해 분양가가 저렴하게 책정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로또 청약으로 또다른 시장 왜곡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또 다른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기업의 폭리를 막고, 합리적인 분양가 책정 등은 좋은 취지이지만, 이미 분양가상한제를 통해 건설사를 규제하고 있다"며 "원가 공개로 인해 공급이 위축될 가능성도 있고 로또청약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유진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