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출범 1년을 맞았지만 대북정책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를 계승하겠다고 내세웠지만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이후 북한이 조건으로 제시한 적대시정책 철회에 발목이 잡힌 형국이다.
바이든 정부는 당초 북핵 문제에 대해 같은 민주당 이전 정권인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다르게 접근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런 차별화에도 불구하고 바로 직전 공화당 정권이 북한과 진행했던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바이든 정부는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 ‘외교적 관여와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협상의 조건이 아닌 대화의 조건으로 적대시정책 철회를 천명한 바 있고, 이런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은 결국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나 대북 제재 완화 없이는 대화에 나설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물론 북한과 협상 테이블에 한번 마주앉아보지도 못한 바이든 정부가 쉽게 들어줄 수 있는 조건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정부 초기 북미 간 ‘말 폭탄’을 주고받다가 정상회담을 두 번씩 개최한 사실에 비추어볼 때 바이든 정부에게는 북핵 문제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정부가 어정쩡한 태도로 북핵 문제의 시급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7일(현지시간) 아직까지 북한의 호응을 받지 못했다고 밝히면서 자신들의 대북정책은 오바마 정부와 트럼프 정부의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외교협회(CFR)가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해 “우리의 대북정책의 목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로 향하는 단계적 진전을 위한 외교적 관여에 준비될 수 있도록 두 정책 사이에 자리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북 제재를 계속 이행할 것이란 입장도 재확인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제재는 계속 이행하고 있으며 동맹인 한국, 일본과도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북한은 계속 특정 역량을 시험하고 있고, 다른 형태의 도발은 자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왼쪽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PG) 홍소영 제작 일러스트./사진=연합뉴스
설리번 안보보좌관이 밝힌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은 결국 오바마 정부나 또 트럼프 정부와도 차별화를 이루지 못했고, 북한에 시간만 벌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역효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의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으로서는 바이든 정부에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을 측면이 강해졌다. ‘하노이 플러스 알파’와 같은 의제를 활용하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진행한 북미 정상회담은 사전에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과거 리처드 닉슨 정부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의 대중 정책을 떠올리게 했다.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1971년 중국을 극비리에 방문해 미중 정상회담과 양국간 수교를 성사시켰다. 당시에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미·중 밀착 전략이 이번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새로운 북미 간 밀착 전략으로 등장하는가 싶었지만 미완성으로 표류하고 말았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9월 유엔총회에서 제안한 종전선언에도 바이든 정부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한미 간 종전선언 문구 조율이 거의 끝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종전선언(end-of-war declaration)이 아니라 ‘종전성명’(end-of-war statement)으로 ‘속 빈 강정’ 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과 두 번의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문재인정부의 임기가 5개월여 남은 시점이어서 앞으로 남북관계를 전망하기도 쉽지 않게 됐다.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지난 15일 ‘2022 한반도 연례 정세 전망’ 간담회에서 트럼프 정부 때 추진됐던 종전선언과 관련한 내막을 소개했다. 문재인정부의 중재 역할 등에 따라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계기로 종전선언이 추진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미국 관료들의 반발을 넘지 못하고 종전선언 합의는 무산됐다.
고 원장은 “이 회담 직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종전선언에 대한 조건으로 핵시설에 대한 신고 및 검증을 요구했다”면서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을 만나주지 않은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북한은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에 종전선언 대신 대북 제재 완화를 제안했다. 고 원장은 바로 이 부분이 ‘김정은의 패착’이었다고 평가했다.
고 원장은 “미국으로서는 ‘제제 효과론’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됐고, 그 확신은 바이든 정부에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워싱턴을 방문하고 돌아온 고 원장은 “미국 정치권에선 국내정치를 감안할 때 종전선언도 북한에 양보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