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외교안보팀장]2011년 12월 17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최고권력자를 세습해 집권 10년을 맞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이 검색한 정치인 순위 3위에 올라 화제를 낳았다.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백신을 지원받지 않고 봉쇄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북한사회에 대한 관심과 함께 김 위원장의 최근 급격하게 홀쭉해진 외모 변화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구글 검색어 동향을 분석한 구글 트렌드는 김 위원장과 함께 검색된 키워드는 ‘체중 감량’(Weight loss)과 ‘체중 감량 사진’(Kim Jong Un weight loss photo)이 많았다고 전했다.
김정일 10주기에 열린 중앙추모대회에 등장한 김 위원장은 검붉게 변한 피부와 깊게 파인 팔자주름 등으로 38세 나이에 비해 급격히 노화된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대역설이 등장했고, 또다시 건강이상설도 불거지기도 했지만 정부 관계자는 “건강상 크게 우려될 만한 것은 없어보인다”고 평가했다.
독재국가에서 유일한 최고지도자의 신변이상은 주목받을 만하지만 이번 김 위원장의 노쇠해 보이는 듯한 외모 변화는 마치 어려워진 북한 경제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빠진 경제 상황에도 ‘김정은 일가’와 고위간부은 건재하겠지만 독재자도 대다수 주민들의 고달픈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급격하게 다이어트도 하고 피부도 그을렸다고 생각된다.
김 위원장의 지난 10년은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함께 혜성같이 등장해 이름조차 ‘김정운’인지 ‘김정은’인지 헷갈렸던 집권 초기 앳된 모습으로 시작됐다. 이후 김 위원장은 할아버지 김일성을 연상시키려는 듯 비대해지고 노숙해진 모습으로 당과 군을 장악해갔다. 그러던 김 위원장이 이제 검붉고 홀쭉해진 외모로 악화된 민심을 경계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김 위원장의 외모 변화는 지난 10년간 북한 경제 상황을 설명하기에도 충분해보인다. 김정은 집권 초반 북한 경제는 한때 플러스 성장까지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농림·어업과 경공업, 서비스업에서 성과가 있었다. 최은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이 발표한 ‘김정은 시대 북한의 경제정책의 변화’ 보고서에선 김정은 10년 경제정책의 키워드를 '경쟁'과 '혁신'으로 요약했다.
경제정책의 특징은 독점에서 과점으로 변화, 성과에 대한 보상, 기업 관리 방식의 변화라고 한다. 가령 기업을 국가가 관리하던 것에서 자율권을 주고, 은행대출권도 갖도록 해서 스스로 운영 능력을 키우려고 했다고 최 연구위원은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경제를 발목잡은 것은 대북제재와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최지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김정은 집권 10년 북한의 경제 현황’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 상황은 코로나로 인해 2020년 국경 봉쇄 조치를 거치면서 올해 마이너스 4.5%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10주기인 17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진행된 중앙추모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1.12.17./사진=연합뉴스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북한의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5.24조치가 단행된 이후 북한은 무역에서 대중국 비중을 늘려서 현재 중국 의존도가 90%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대북제재 영향으로 2018년 이후부터 수출이 급감했고, 코로나19로 인해 이제 수입까지 급감해서 현재 북한의 무역 규모는 1990년대 초반보다도 적은 수준이라고 최지영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다만 무역 중단 상황에서도 북한은 해상을 통해 원유와 비료는 수입하고 있어 산업 전반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원유를 차관 형식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90% 이상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곡물 수입은 2020년 이후 러시아 의존도가 조금 상승하는 변화를 보였다. 무엇보다 현재 원자재 공급과 소비재 수입이 급감한 만큼 민생경제는 무척 어려워졌다.
북한경제 전문가들은 연일 '자력갱생'을 외치는 북한이 앞으로 비료나 농업 원자재 수입에 집중하고, 생존을 위해 필수 품목이 아닌 품목들은 아예 수입하지 않으면서 버티기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고유환 통일연구원 원장이 미국과 한국에서 “이젠 북미도 1992년 한중수교 모델을 적용해서 곧바로 관계 정상화나 수교를 추진하는 방식으로 비핵화를 추동해내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미중 간 전략경쟁이 본격화된 마당에 더 이상 북한도 위협론을 활용하지 못하는 시기를 맞았다. 미국도 기존 전략을 수정해서 북한에 적극 관여해서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북한을 떼어낼 방식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손짓하는 대화 테이블에 나온다면 과거 리처드 닉슨 정부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의 대중 정책을 적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당시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1971년 중국을 극비리에 방문해 미·중 정상회담과 양국간 수교를 성사시켰다.
당시에는 미국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정책이었지만 이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과 밀착한다면 비핵화란 목표 달성도 좀 더 빨라질 수 있지 않을까. 비슷한 사례는 1983년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도 있었다. 중국 민항기가 춘천에 불시착해 세간을 놀래킨 그 사건은 실은 사전에 기획된 것이었다. 한국식 개혁개방정책을 도입하기 위한 등소평의 결단으로 실행됐으며, 당시 불시착한 중국인 승객들이 현대중공업을 견학한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위기관리를 하려면 철저한 현실주의 관점 즉, 상대의 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중국 한나라의 건국 공신인 장양(張良)은 ‘어려울 때일수록 쉽게 접근하고, 큰일일수록 작은 일로 풀어가라’고 했다. 도저히 해법이 안 보이고 막막하기만 한 북핵 문제에도 이런 진리를 적용해보는 창의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