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및 복권을 전격 결정하면서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단행된 이번 사면의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에 한명숙 전 국무총리도 복권 대상으로 특별사면 대상에 명단을 올렸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제외됐다.
특히 청와대는 전날까지도 전직 대통령의 사면 여부와 관련해서 확인해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심지어 이날 법무부의 사면 발표 직전까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송영길 당대표나 이재명 대선후보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이번 특사 대상 주요인사에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포함됐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제외됐다.
청와대 관계자나 여당의 전언을 종합해볼 때 박 전 대통령의 최근 건강 문제가 가장 결정적인 사유가 됐고, 문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고심을 거듭하던 끝에 전격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사면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법무부 심사위원회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과 관련 토론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이번 사면을 결정한 사유에 대해 국민통합과 겸허한 포용을 언급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지난 시대의 아픔을 딛고 새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며 “이제 과거에 매몰돼 서로 다투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담대하게 힘을 합쳐야 할 때이다. 특히 우리 앞에 닥친 숱한 난제들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국민 통합과 겸허한 포용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경우, 5년 가까이 복역한 탓에 건강 상태가 많이 나빠진 점도 고려했다”면서 “이번 사면이 생각의 차이나 찬반을 넘어 통합과 화합, 새시대 개막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사면에 반대하는 분들의 넓은 이해와 혜량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달 초 정부가 연말연시를 앞두고 특별사면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두 전직 대통령의 포함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청와대는 줄곧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해왔다. 이 때문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가능성에 대해 대선 이전엔 희박하다는 것이 중론으로 자리잡은 상황이었다.
한 여당 관계자는 “차기 정부에서 가능한 일”이라는 말도 했다. 이재명 대선후보는 지난 2일 “이분들의 뉘우침이 없고 반성이 없는 상태에서 사면을 얘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그만큼 이번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예상 시기가 앞당겨진 ‘깜짝 발표’인 셈이다. 이번 사면은 문 대통령이 임기 중 5번째 단행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청와대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을 만났을 때 전직 대통령 사면을 건의하는 질문에 “국민공감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두분의 전직 대통령이 수감돼 있는 일은 가슴 아픈 일이다. 고령이시고 건강도 안 좋다고 해서 안타깝다”는 말도 했다.
실제로 이번에 박 전 대통령의 건강이 매우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인 박 전 대통령은 어깨 질환과 허리디스크 등 기존 지병 외에도 최근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는 진단을 받은 바 있으며, 치아 상태가 나빠져서 음식물을 씹지 못할 정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은 사면 이후에도 병원에서 출소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에서 징역 22년을 확정받은 박 전 대통령은 87세가 되는 2039년 만기 출소할 예정이었지만 이번에 복역 4년 9개월만에 풀려나게 됐다.
이날 청와대 관계자는 그동안 종교계나 시민단체 등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건의가 이어졌던 것도 감안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찬성과 반대 의견이 두루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계속 고심이 깊었던 것 같다. 마지막 순간까지 고뇌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면서 “문 대통령의 임기가 내년 5월 9일까지인 만큼 임기 내 많지 않은 기회 가운데 이번이 적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왜 지금인지’를 묻는 거듭된 기자들의 질문에는 “박 전 대통령의 건강 문제도 고려하지 않았나 싶다”면서 “사면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객관적으로 합당한 시기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사면 시기 선택도 대통령 사면권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이번 성탄절이 아니라 만약 3월 9일 대선 직전인 3.1절 특사 단행으로 박 전 대통령을 사면했다면 더욱 충격적이고 큰 논란을 부를 수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 만큼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이 적기”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관계자는 대선을 고려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결단코 선거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것이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할지 저는 잘 모르겠다”면서 “만약 선거에 대한 고려를 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좋은 타이밍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의 사면과 관련해 국민공감대를 강조해왔는데 최근 모 언론 보도를 보니 사면에 대한 찬성 여론이 조금 올라갔더라”면서 “아마 대통령은 미래지향적으로 국민통합에 기여하기를 바란 것 같다. 새로운 동력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면에 반대하는 분들의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