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조성완·이희연 기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지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보수 유권자들에 대한 그(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의 사면은 내년 3월 9일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이번 사면이 유권자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진보 진영의 반발을 살 수 있지만 야권 분열에도 불을 붙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야권 분열에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주요 외신들이 24일 문재인 대통령의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을 일제히 보도하면서 내년 대통령 선거에 미칠 영향을 언급한 내용이다.
전날 복역 중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만기출소를 아홉달 앞둔 24일 가석방된다는 사실이 알려질 때만 해도, 박 전 대통령 사면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알려졌다.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청와대 관계자들이 '검토된 것이 없다'며 부정적으로 답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 측은 형집행정지를 신청하지 않아 사면 가능성은 희박했다. 지난 2019년 박 전 대통령이 형집행정지를 2차례 신청했지만 검찰이 받아들이지 않은 전례도 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갑작스런 결단으로 이번 사면이 현실로 되자, 정치권에선 다양한 해석과 전망이 나온다.
사진 왼쪽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사진=연합뉴스
우선 최근 박 전 대통령의 건강상태가 악화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후 문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는 시각이 중론이다.
이와 관련해 김부겸 국무총리는 24일 특별사면을 결정한 임시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고령자나 중증환자와 같이 어려운 여건의 수형자분들도 인도적 배려 차원에서 사면대상에 포함했다"며 박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둔 발언을 밝혔다.
여야 분위기는 결 다르게 읽힌다.
정권 유지를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측은 원론적 수준에서 문 대통령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곱지만은 않은 시선을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날 본보의 취재에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이 선거에는 크게 상관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우리 당 지지자들의 반발과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의 환영이 있지만 선거에는 미치는 영향은 적을 것 같다"고 일축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민주당 의원은 본보 취재에 "저쪽한테도 유리하고 불리한 게 다 있어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 국민들이 똑똑하시니까 박근혜 전 사면에 대한 판단은 국민들이 냉정하게 잘 하실거라 생각한다"고 말을 아꼈다.
그는 '보수 진영이 분열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는데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그럴 가능성이 있고 우리 진영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서 어디가 더 유리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이어 "오히려 선거용이 아니냐고 국민들이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국민들이 똑똑하고 무섭다고 얘기 하는 것"이라며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민의힘 측은 친이-친박계 갈등 등 세력 싸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여당보다 말을 더 아끼고 있다. 내부적으로 복잡한 상황이다.
일단 '환영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면 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두고 구 친이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비판적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친이계 출신인 권성동 사무총장은 "만시지탄 감이 있지만 환영한다"면서도 "두 분(이명박·박근혜) 다 전직 대통령이고 고령에 병환 중인데, 한 분만 사면한 건 야권 분열을 노린 정치적 술수"라고 비판했다.
조해진 의원도 YTN 라디오에서 "문재인 정권이 한 분은 사면하고 한 분은 안 해서 야권 진영을 갈라치기 하는 전술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며 "헌법이 부여한 사면권을 선거전략용으로 쓰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친박계 인사인 김재원 최고위원은 "청와대가 박 전 대통령 사면을 통해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우리 야권에서 해결해야 할 몫"이라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단합을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이 선거에 미칠 영향에 대해 국민의힘 측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특히 이준석 대표는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 재차 고개를 숙이며 박 전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했다.
이 대표는 "다시 한 번 당 대표로서 국정농단 사건으로 국민께 실망을 안겨드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당 전신인 새누리당이 입법부로서 충분히 견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며 "윤 후보를 통해 만들고자 하는 차기 정부에선 절대 그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혁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박 전 대통령 사면이 윤 후보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도 기자들과 만나 "정권교체를 위해 뛰고 있는 윤석열 후보에 방해가 된다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게 일정한 영향을 미칠 거 같이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크게 대선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지를 않는다"라고 전망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 정권교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다른 입장을 가질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선대위의 한 관계자는 이날 본보 취재에 "가장 좋은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아무런 메시지를 내지 않는 것"이라며 "특별한 메시지를 내는 게 오히려 윤 후보에게는 악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고 말했다.
2018년 5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허리통증 치료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 또한 일정부분 여권보다 야권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에 중점을 두고 있다.
김행범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날 본보 취재에 "국민의힘이 지닌 '보수 정체성의 위기'라는 결점에 문재인 대통령이 일종의 폭탄을 던진 셈"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설사 무슨 이유로든 침묵상태를 유지하더라도 이 상태(특별사면)는 효력을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행범 교수는 "국민의힘 측으로선 박 전 대통령 보다 잠재적 미래권력인 윤석열 후보에 더 집중하겠지만 적어도 우리공화당은 그 후예로 자처하며 힘을 낼텐데 현 지지율 분포 하에선 그들(우리공화당) 표도 대선 승패에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보수 이념의 상징성이 강화된다는 국면도 주목해야 한다"며 "무분별하게 수용하던 중도 좌파노선에 일정 부분 제약을 받게 되고 이 위기를 극복 가능한가는 윤 후보가 관건인데 이미 구조적으로 양측의 조화는 어렵다"고 보았다.
이어 그는 "건강 등을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이 아무리 칩거하더라도 눈 앞의 승리 자체에만 주목하는 현 국힘당으로선 표가 나뉘어지는 위기 상태에 들어간다"며 "혹시나 윤 후보가 패배하면 보수정치 재결집 단계에서 박 전 대통령의 영향은 본의든 아니든 커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소재 사립대 정치외교학과의 A모 교수는 이날 본보 취재에 두 전직 대통령을 함께 사면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대선을 앞둔 특사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이유와 명분을 대더라도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며 "보수 야권에서는 갈라치기 사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최고의 타이밍"이라고 밝혔다.
또한 "오늘 청와대가 '선거를 고려했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타이밍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며 부정하고 나섰는데, 어불성설"이라며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누르려는 골든 크로스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 현 시점이 박근혜 특별사면이라는 카드를 들이밀기 가장 좋은 골든타임이다. 단 5%라도 윤석열 지지자들을 떼어낼 수 있다면 내년 대선에서의 이재명 후보 승리와 정권 유지 가능성이 한층 커지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쏠림 현상이 일어나 한쪽의 지지자들이 투표를 포기하게 만드는게 가장 현명한 대선 승리로의 길"이라며 "그 시발점이자 교두보를 무너뜨리는 한 수가 바로 전직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야권 내부에 분열의 불씨를 지피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당장 우리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조원진 당대표는 이날 긴급보도자료를 내고 "인간이 해서는 안 될 못된 거짓말로 박근혜 대통령을 음해한 이재명 후보나, 문재인 정권의 정치보복에 앞장서서 자유우파 국민을 숙청하는 망나니 칼을 휘두른 윤석열 후보나 한통속에 불과하다"고 화살을 날렸다.
조원진 우공당 대선후보는 이날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지금이라도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내년도 제 20대 대통령선거일(2022년 3월 9일)까지는 단 75일 남았다. 두달 반 남은 기간동안 박 전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낼지, 침묵하고 칩거에 들어가더라도 유권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의 특별사면 카드가 어떤 효과를 낼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