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壬寅年)이 밝았다. 올해는 호랑이 중에서도 검은 호랑이의 해다. 검은 호랑이(흑호)는 원기가 양성해 모험과 명예욕이 강하고 큰 야망을 이룰 수 있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시험대에 올랐다. 3월엔 대선이, 6월엔 지방선거가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래서 더 기억해야 할 신축년(辛丑年)이 저물었다. 부지런함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소에 더해 신비로움과 상서로움까지 보탠 '하얀 소의 해'는 희망 고문만 한 채 떠났다. 지난 한 해는 어떤 수식어로도 담아낼 수 없는 혼돈 그 자체였다.
'모두의 희망'이 '모두의 무덤'이 됐고 모두의 눈물과 분노로 얼룩졌다. 'K방역'에 도취돼 오락가락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은 모두의 우울증을 불러 일으켰다. 전문가들의 경고는 번번이 무시됐다. 마스크에 이은 백신 대란이 낳은 불안과 불편은 고스란히 국민들 몫이었다. 재난지원금이라는 명분의 '정치 방역'이 국민을 갈랐다.
서른 번에 가까운 부동산 정책은 누더기가 됐다. 시장을 무시한 정치적 판단은 결국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승자 없는 패자들만의 시장을 만들었다. 이념과 정치의 욕구가 만들어낸 오만한 위정자들의 자화상은 슬프다. 성장 없는 분배는 모두의 몰락이자 가난의 굴레라는 '잃어버린 시간'으로 남았다.
2022년은 임인년은 호랑이 해다. 호랑이는 용맹정진의 동물로 새해 대한민국이 다시 힘차게 뛰기를 기대한다. 사진은 경북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백두산 호랑이가 날카로운 눈매를 보이고 있다. 현재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숲에는 한청, 우리, 한, 도 등 총 4마리 백두산호랑이가 살고 있다. 국내 최장수 호랑이로 꼽히던 2001년생 수컷 '두만'은 이곳에서 함께 지내다 지난해 말 생을 마쳤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실험실 밖을 벗어난 설익은 정책의 후유증은 가혹했다. 고질적인 아집은 또 다른 병폐를 나았다. 실패가 실패를 덮는 끝없는 도루 속에 코로나19에 지친 일상은 육체가 아닌 정신을 감염 시키는 바이러스로 확산됐다. 잘못된 온갖 처방이 난무했다. 억압과 눈치 사이를 오가는 사이 정책은 빛이 바랬다. 그 자리에는 권력이라는 독버섯이 자리했다.
코로라19는 세계 질서와 리더십에 대해 많은 생각을 던졌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K방역이 아니었지만 국민들은 정부를 믿었다. 마스크와 백신의 대란 속에 정부는 안 보여도 국민은 돋보였다. 세계가 놀란 K방역의 주인공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었다. 숟가락을 얻은 것은 정부였다. 아프고 슬프고 가슴을 쥐어 짠 국민들을 뒷전이었다. 그렇게 정부는 K방역을 홍보했다.
엄동설한 오늘도 의료진은 사투중이다. 자영업자는 문을 닫는다. 정부의 지원과 대책은 2년 전 코로나 발생 시점에서 달라진 게 없다.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는 숱한 도루를 오롯이 견뎌내야 하는 것은 국민과 일선의 의료진들이다. 생계를 박탈당한 자영업자를 쥐꼬리로 달래려 든다.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싸움을 붙여놓고 불구경하는 구경꾼의 모습이다. 세입자 권익보호는 집주인과 분쟁을 양산했다. 전월세 시장은 극도로 혼란을 겪고 있다. 입출구를 틀어막은 보유세, 거래세는 집 가진 자와 집 없는 자를 갈라 쳤다.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오만이 시장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실패한 정책의 후유증은 고스란히 세금폭탄이라는 기막힌 선물을 안겼다.
빚투·영끌이라는 벼랑 끝 승부를 걸어야 했던 만큼 비정상의 현실이었다. 희망보다는 요행을 바라는 거대한 도박판이 젊은 세대를 관통했다. 위기에 내몰린 세대에게 희망의 사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양극화는 심화됐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제국의 몰락'이 겹쳐진다.
슬픈 일상이다. 이런 와중에도 국민의 우울증을 날려 준 건 'K한류'다. 'K방역' 홍보에 열 일하는 정부에 죽비 같은 울림이었다. 지구촌의 눈과 귀를 홀린 BTS, '미나리'에 이어 투자자마저 구하지 못해 시나리오에 그칠 뻔했던 '오징어 게임'의 반란. 코로나 블루를 잠시나마 잊게 해준 유쾌·상쾌·통쾌한 쾌거다.
시련은 희망에 대한 갈망이다. 어둠은 빛의 기다림이듯 슬픔 또한 기쁨의 전조다. 아픔은 치유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좌절은 일어서기 위한 힘겨운 몸부림의 시작이다. 희망은 스스로가 불러야 하는 자기 위로가다. 누군가 대신 해 줄 수 있을 것이란 바람은 더 깊은 수렁을 불러올 뿐이다. 새해엔 모든 시작의 출발점을 '나'에게 두자. '남 탓'을 하는 상대적 패배감을 '내 탓'으로 돌리면 답이 보일 것이다.
총체적 위기다. 글로벌 시장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얼어붙고 있다. 코로나19가 부른 가보지 않은 길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이다. 선진국 그룹에 진입한 대한민국이지만 '미완의 K방역'처럼 마침표가 없다. 보이는 것만 내세우고 보이지 않는 숙제를 덮어서는 안 된다. 미래는 고스란히 다음 세대가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짐이다.
실망이 큰 만큼 희망에 대한 기다림은 절실하다. 아픔이 깊은 만큼 치유에 대한 갈망은 높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갈 지도자를 뽑는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3월 9일이다. 곧이어 6월 1일에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대선 정국은 그야말로 요지경이다. 온갖 포퓰리즘이 판치고 있다. 정책은 실종 됐고 비난과 조롱이 난무한다. 전무후무한 난장 선거판이다.
국민적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지나간 해를 되돌아보고 맞이하는 해를 호시우보(虎視牛步)의 자세로 가자. 호랑이처럼 날카롭게 보되 소처럼 신중하게 가자. 희망은 스스로가 피워내는 꽃이어야 하듯 내 탓에서 다시 시작하자. 아프고 슬펐던 멍에는 벗어 던지자. 새로운 시작, 새로운 대한민국의 판을 만들자. '범 내려 온다'의 기운이 세계에 울려 퍼진 것처럼.
[미디어펜=문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