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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걷기] 은평둘레길

2022-01-08 16:12 | 윤광원 취재본부장 | gwyoun1713@naver.com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은평둘레길은 은평구(恩平區)가 조성한 둘레길이다.

북한산, 봉산, 앵봉산, 이말산, 백련산 및 불광천 등 은평 전역을 둘러볼 수 있는, 24km 길이 산책로로, 5개의 코스로 이뤄져있다.

이 중 3코스는 이말산 묘역 길로 명명됐다.

지하철 3호선 구파발(舊把撥) 역에서 시작, 진관근린공원(이말산)과 하나고등학교를 거쳐 진관사입구, ‘은평한옥마을에 이르는 길이다. 길이 약 2.7km, 1시간이면 충분하다.

이 길은 은평구청에서 주최하는 은평 가족 걷기 대회가 열리는 코스이기도 하다.

중심은 당연히 이말산(筣茉山)이다.

높이가 133m에 불과한 언덕 수준이지만, 이말산은 거대한 역사의 흔적을 품고 있는 곳이다. ‘매장문화재(埋藏文化財)의 보고라 불릴 정도다.

북한산 비봉(碑峰)에서 나지막한 산줄기 하나가 서북으로 길게 뻗어 낮은 봉우리를 만들었는데, 이게 이말산이다. 산 전체에 조선시대 묘역이 300여 기 집중 분포된 지역으로, 시대별 묘제의 변화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이말산 기슭의 조선시대 고분군/사진=미디어펜


특히 내시와 궁녀의 무덤이 대거 발견돼 이목을 끌었다. 국내 최대의 내시묘역으로 내시(內侍)들의 정원이라고 불릴 만한 곳이다.

광해군 13(1621)에 세워진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 김충영의 묘가 가장 오래됐다.

이 산의 묘역들 중 비석이나 상석에 관직이 기록된 14기 중에는 종1숭록대부’ 2, 2품 상선의 묘 5기를 비롯해 정경부인반열에 오른 내시부부 합장묘도 7기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명종 때 상선(尙膳) 노윤천의 묘도 봉분(封墳), 석물도 없이 남았다. 현종의 유모였던 상궁 옥구 임씨’, ‘임실 이씨의 묘도 마찬가지다.

이말산은 사후 고향에 갈 수 없었던 내시와 궁녀가 묻히기에 딱 좋은 땅이었다. 한양 사대문을 둘러싼 그린벨트지역인 사산금표(四山禁標)를 막 벗어난 지역이다. 궁에서 가까운 거리다. 살아서 권력이 있던 자가 죽으면, 묻힐 수 있는 적당한 공간이었다.

조선시대 내시 묘역은 도봉구 소재 초안산(楚安山) 분묘 군과 여기뿐이다. 초안산 무덤 떼는 사적 제440호로 지정됐지만, 이말산 유적은 2021년 현재 아직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

이 동네는 진관동이다.

진관동 지명은 두 말할 것도 없이, 고려 현종 때 창건된 진관사(津寬寺)에서 유래했다.

구파발역 2번 출구 뒤로 조금 가면, ‘진관동 유래비석이 있고, 그 너머 은평둘레길 안내판 옆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조금 오르니, 조선시대 여성전문직궁녀(宮女)를 찾아가는 길이란 안내판이 보인다.

국내에서 비문을 갖춘 궁녀의 묘는 지금까지 3기가 발견됐는데, 그 중 하나인 임 상궁(보모상궁) 가 이말산에 있고, 궁녀 출신으로 정1품 후궁에 오른 영조(英祖)의 생모 숙빈 최씨의 부모 묘가 있다고 알려준다.

여성친화도시를 표방한 은평구에서는 조선시대 왕실(王室)의 의식주를 책임졌던 전문직 여성인 궁녀의 이야기를 담아, ‘여성테마길을 조성했다.

이말산은 낮은 구릉이지만, 서울과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어, 수도방어에 중요한 곳이다. 길 주변 곳곳에 참호(塹壕)와 콘크리트 진지, 교통호 등, 군사시설이 많이 있다.

이어지는 고갯마루에선 궁녀에 대한 소개 글 안내판이 반겨준다.

궁궐에서 왕 및 왕실 가족들의 의식주를 도맡으며, 함께 생활했던 궁녀들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여관(女官)이라 해서 여성 관리를 뜻했고, 나인(內人)이라고도 불렸다고.

그녀들은 한글과 한문, 바느질, 요리 등 체계적인 전문교육을 받고, 각 처소에 배치됐다. 궁궐(宮闕)의 법도를 지키며 잡다한 일들을 도맡아 했던 궁녀는 왕조시대의 여성공무원이자, 한 분야에 수십 년 간 종사했던 전문직 여성들이었다고, 안내판은 알려준다.

봉건시대 궁중문화(宮中文化)를 이끌어 온 역사의 산 증인이라며, 궁녀 테마 길은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여성의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의의가 있다고, 자평한다.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가례(혼례) 도감 의궤(儀軌)에 나온, 궁녀들의 그림도 볼 수 있다.

오솔길을 따라 왼쪽으로 조금 가면, 이말산 정상이 나온다.

차량과 탱크, 포 같은 중화기(重火器)용 진지도 있는 곳이다. 맞은편에는 앵봉산이 우뚝하고, 그 너머에는 봉산(烽山) 능선도 보인다. 서울의 서북쪽 경계를 이루는 마루금이다.

고갯마루로 되돌아와, 반대편 길을 따라간다. 곧 숙빈 최씨(淑嬪 崔氏) 안내판이 나타난다.

그녀는 무관 집안 출신으로, ‘침방나인에서 정1품 빈까지 오른 궁녀다.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를 모셨던 최씨는 왕후가 쫓겨나고 장희빈(張禧嬪)이 왕비가 되자, 민씨를 위해 기도를 올리던 중, 숙종의 눈에 들었다.

이후 후궁이 되어 숙원’, ‘숙의’, ‘귀인으로 품계가 높아졌고, 인현왕후가 복위된 후 아들 연잉군(延礽君)을 낳으니, 바로 훗날의 영조임금이다. 이어 후궁 최고 품계인 숙빈에 봉해졌다.

이말산에 그녀의 아버지 최효원, 어머니 남양 홍씨 등 일가의 묘가 있다.

좀 더 가니, ‘진관근린공원말뚝이 반갑다.

다음 안내판은 궁녀의 지위와 대우를 알려준다. 입궁(入宮) 15년이 지나면 관례를 치르고 정식 나인이 되며, 다시 15년 후에는 궁녀로서는 최고 직급인 정오품 상궁(尙宮)이 됐다고.

대우는 소속 부서에 따라 다른데, 왕과 왕비의 침실인 지밀(至密)이 가장 높고, 이어 수방과 침방(針房)이 다음이며, 세수간과 세답방, 소주방 및 생과방은 낮았다. 8시간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 근무였고, 왕과 왕비 및 후궁을 직접 모시는 지밀은 주간과 야간 2교대였다.

최고위직은 어명을 받드는 제조상궁(提調尙宮)이고, ‘출궁직전의 보모(保姆) 상궁은 왕자와 공주의 육아를 담당했다고

궁녀들은 궁궐에서 의식주를 모두 제공받았고, 월급으로는 쌀, , 북어 등 현물이 지급됐다. 명절이나 왕실 잔치, () 행차 등 특별한 날에는 보너스까지 받는, 당시엔 고소득자였다.

내시와 마찬가지로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다. 궁 밖에 집이나 땅을 사면서, 재산을 축적했다고 전해진다.

산길은 매장문화재의 보고라는 평가에 걸맞게, 비석과 상석(床石) 같은 석물을 갖춘 무덤들이 즐비하다. 안내판 같은 것이 없어서, 아직 제대로 조사·정비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뿐인가? 봉분은 사라지고 석물만 나뒹구는 모습, 반쯤 쓰러진 망주석(望柱石), ‘목이 잘린문인석(文人石), 아들 낳기를 비는 주술적 의미로 코를 갈아 가루를 가져간 동자석(童子石), 어느 집 앞에 수집돼 전시된 석물들

마음이 아프지만,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조상들의 흔적이고, 우리 현주소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진관사와 하나고등학교 쪽으로 길을 잡는다. 여기도 양지바른 곳에 옛 고분군(古墳群)이 있다.

길 아래쪽에 하나고가 보인다. 2010하나금융그룹이 강원도 횡성의 민족사관고등학교와 영국 이튼 칼리지를 모델로 개교한, 전국 단위 자율형 사립고(自律形 私立高).

학교 뒤 오솔길을 돌아 내려가니, 작은 공원이 보인다.

공원 가운데 있는, 아프리카에 많고 생 텍쥐베리의 명작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 비슷한 나무에, 사람 얼굴을 새긴 조형물이 압권이다. 그 주변도 동화(童話)에 나올 듯한, 버섯 모양의 집에 의자가 붙은 조형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북한산둘레길 중 '구름정원길'에서 본 북한산


이어 마을길을 지난다. 왼쪽으로 북한산(北漢山)의 연봉들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공터의 돌탑들은 말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아스팔트 차량 도로를 만났다. 그 위로, 생태육교(生態陸橋)가 지난다.

도로 건너편에 북한산둘레길’ 8구간 구름정원길입구가 보인다. 걸어온 길이가 너무 짧아, 구름정원길로 들어섰다.

조금 가니, 내시부 상약(尙藥) ‘신공의 묘역이 나타났다.

상약은 궁중에서 쓰이는 약에 대한 일을 맡은, 내시부 종3품 환관이다. 이 묘역은 1637(인조 15) 조성된 것이다.

울창한 솔숲 길을 지나고 계곡을 건넌다. 왼쪽은 겨울왕국이다. 대형 빙폭(氷瀑)도 보인다. 계곡 옆에 무덤 잃은 문인석과 망주석이 하나씩 서서, 세월을 지키고 있다.

세거리 갈림길에서 북한산생태공원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철책 문을 통과해 내려가니, 길옆에 목 잘린 문인석 하나가 있고, 저 안쪽에 봉분(封墳) 없는 상석 한 개가 나뒹군다.

곧 농경지와 비닐하우스, 과수원 따위가 즐비하다. 북한산은 성큼 가까워졌다.

계속 내려가니, 산길 밑에 불광중학교(佛光中學校) 후문이 보인다. 이 동네는 수리마을이다. 북한산 수리봉(쪽두리봉)’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무릉 화원(武陵 花園)의 회복을 꿈꾸는 마을이라고 주장한다.

사거리에서 도로를 따라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지하철 6호선 독바위 역이 나온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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