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현대인에게 지천명(知天命·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은 어떤 의미일까? 100세 시대서 바라보면 절반쯤 돈 인생시계이지만 고작 60 인생을 못 넘기던 때를 생각하면 삶의 기적이다. 50인생이든 100세 인생이든 반환점에서 느끼는 삶의 무게와 인생에 대한 여추는 남다른 것임은 분명하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느낌만큼은 다르다. 인생 50이면 과연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일까? 오만한 시인의 광오한 자기 부정 내지는 반성은 아니었을까? 어쨌든 세월을 내포한 '50'이란 단어는 다가가기도 멀어지기도 어려운 '생각의 머뭄'쯤일거다.
그래서 많은 생각을 하게끔 되는 즈음이 100의 절반이다. 희망과 설렘의 사이쯤. 희망은 반쪽의 부족을 채우기 위한 남은 삶에 대한 기대다. 설렘은 과거의 사라진 시간에 대한 되뇌임이다. 희망과 설렘 그 중간을 살아가는 것이 어쩜 오늘이자 숙명이다.
그 반쯤의 어중간한 설렘과 희망 사이를 침묵에서 깨움으로 일깨우는 시집이 나왔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한 물리학도 출신 전대호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지천명(知天命)의 시간'이 죽비같이 느껴지는 이유다. 이력부터 특이하다.
두번째 시집 이후 번역가이자 철학자로서 살아온 저자는 거의 사반세기가 지나서야 다시 시인으로 돌아왔다. 199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전대호 시인은 학사를 마친 후 돌연 전공을 바꿔 모교 철학과로 대학원에 진학, 석사를 마치고 독일로 떠나 '헤겔 철학'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독일로 떠나기 전 첫 시집 '가끔 중세를 꿈꾼다'(민음사 1995)와 둘째 시집 '성찰'(민음사 1997)을 냈다.
독일 유학 후에는 과학 및 철학 관련 전문번역가로 정착해 '위대한 설계', '로지코믹스', '물은 H2O인가?'를 비롯해 100권이 넘는 번역서를 냈다. 철학 저서로 '철학은 뿔이다'와 '정신현상학 강독1,2' 등이 있다. 자신의 글과 거리를 두었던 그가 오십을 넘기면서 설렘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돌아왔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지천명(知天命)의 시간'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두우면/ 뿌리가 되어 나아가라/ 빛도 이곳엔 그렇게 임하리라/ 구원하지 않는 무력함으로/ 아무것도 마다하지 않는/ 캄캄한 사랑으로. ('뿌리' 전문)
유자효 시인은 해설에서 "이 시집은 '뿌리'에서 말해 '배'로 끝난다. 이 시는 25년의 침묵을 깨는 전대호 시인의 정신적 결의로 읽혔다. 84편 시의 세계를 여행한 그가 다다른 곳은 어디일까?"라며 "이렇게 아름답고 깊이 있는 시를 쓰는 전대호 시인의 침묵이 화려하게 개화하기를 바란다." 말한다.
과거와 미래로의 인생 시간여행을 읆조리는 시인의 내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