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명백한 과오가 있긴 하지만 대한민국을 산업화를 통해 경제 대국으로 만든 공이 있는 사람이다. 대구 경북이 낳은, 평가는 갈리지만 매우 눈에 띄는 정치인이 있었다. 박정희다."
"제가 13살에 공장을 갔더니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제가 경북 안동 사람인데, 성남 공장에 취직을 초등학교 마치고 바로 했더니, 이상하게 공장에 가보니 관리자는 다 경상도 사람, 말단 노동자는 다 전라도 사람이었다. 어린 마음에 '나는 왜 경상도인데 관리자가 아니지' 이런 황당한 생각을 했을 정도로 차이가 많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기 통치 구도를 안전하게 만든다고 경상도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전라도는 소외시킨 결과란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위 발언은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바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말이다. 장소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맥락으로 말했다는 점에서 이재명 후보의 입이 '한 입으로 두말' 논란을 자초했다고 읽힌다.
앞 발언은 지난달 중순 3박 4일 일정으로 대구 경북 지역을 방문한 이 후보가 밝힌 것이다. 뒷 발언은 27일 광주 충장로우체국 앞에서 지지자들을 만나 언급한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월 26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박정희 정권이 고의적으로 전라도를 소외시켰다는 이 후보의 '호남 홀대론'은 양날의 검이다. 호남 표심을 잡으려다 경상도 표심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대구 경북에서는 환심을 사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을 높게 평가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호남이 아니라 경상도다. 27일 광주에서 했던 발언에 광주 사람들이나 호남권 유권자들이 크게 반응할 것은 없다. 암묵적이지만 익히 공감할 수 있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전해들은 경남과 경북 지역은 다를 수 있다. 역으로 경상도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악재다.
실제로 유권자 인구 규모상 호남과 경상도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광주·전남·전북 유권자 총 수가 대구·경북과 비슷하다. 부산·울산·경남의 경우 광주·전남·전북 유권자의 1.5배에 달한다.
이러한 인구 비례 때문에 여론조사전문기관들은 지역별 표본 모집단 추출에서 가중치를 다르게 부여하고, 다른 숫자만큼의 응답자 집단을 조사한다.
YTN이 의뢰하고 리얼미터가 조사한 전국단위 대통령선거 여론조사의 경우, 본보가 제작한 표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가중값을 부여한 부산·울산·경남 응답자 규모는 152~154, 대구·경북은 98~101, 광주·전남·전북은 99~100명이다.
이 표는 2021년 12월 20일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전국단위 전국대통령선거 여론조사 중 YTN이 의뢰해 리얼미터가 조사한 3건을 항목별로 따로 정리한 것이다. 각 조사방법은 표에 나온대로 유선 ARS 10% 및 무선 ARS 90%로 시행됐다. 각 여론조사의 오차범위는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다. 각 여론조사 결과는 공직선거법 및 선거여론조사기준에 따라 등록됐다. 각 조사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의 여론조사결과현황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표=미디어펜
더욱이 3차례에 걸친 해당 리얼미터 여론조사의 지역별 후보 지지도를 살펴보면,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전북이 정확히 정반대의 추세를 보인다.
부·울·경 표심의 경우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다소 쏠려있지만 지역 구도 측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으로 분석된다. 유권자 인구 규모가 동일한 TK와 호남권이 서로 정반대의 지지도 추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후보의 이번 발언은 실언 여부를 떠나, TK·PK 표심 공략에 있어서 패착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28일 본보 취재에 "내부적으로 뼈아프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재명 후보의 진정성은 그런 것이 아니다. 단편적으로 생각하거나 확대 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경계했다.
그는 이날 본보 취재에 "지역민들을 만나다보면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고, 그러는 가운데 맥락상 툭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며 "도리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가스라이팅'이라며 험악한 평가를 내린 것이 더 부정적으로 읽힌다. 국민의힘이야말로 지역 구도에 기대어 이득 보려고 하지 말라.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보다 더 나쁜 정치악습이 지역 구도"라고 밝혔다.
이제 설 연휴가 시작됐다. 가가호호 국민 대이동이 벌어질 전망이다. 제 20대 대통령선거(3월 9일)는 단 40일 남았다.
후보간 TV토론이 어떻게 성사될지 불투명한 가운데, 이 후보가 지역 구도를 딛고 승기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향후 몇주간 어떤 공약을 내놓고 어떤 발언을 할지 후보의 입에 유권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위 기사에서 인용된 각 여론조사의 조사방식은 표에 나온대로 유선 ARS 10% 및 무선 ARS 90%로 시행됐다. 각 여론조사의 오차범위는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다. 각 여론조사 결과는 공직선거법 및 선거여론조사기준에 따라 등록됐다. 위 여론조사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의 여론조사결과현황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