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나광호 기자] 유럽 지역 탄소배출권 가격이 톤당 90유로(약 12만1500원) 수준까지 높아진 가운데 국내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1일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KAU21 기준 탄소배출권 가격은 톤당 3만4950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1월23일 대비 5000원 가량 오른 것으로, 12월17일 이후 3만5000원 안팎을 오가고 있다.
2021.1.28~2022.1.28 KAU21 탄소배출권 가격 추이(단위 : 톤당 원)/자료=한국거래소
이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3기 시행을 앞두고 시장에서 예측한 것과 맞먹는 수치로, 업계는 비용 부담 가중을 걱정하고 있다. 기업이 시장에서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유상할당 비중이 기존 3%에서 10%로 높아지고, 공장 가동률 향상으로 배출량이 늘어나면서 판매자에게 유리한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 3분기 3931억원에 달하는 온실가스배출 충당부채를 기초금액으로 산정했으며, 2분기에는 6825억원에 달했다. 포스코도 지난해 2~3분기 총 1525억원의 관련 부채를 인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난방용 화석연료 수요 감소에도 향후 배출권 가격이 더욱 오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탄소중립이 가속화되고, 경기 회복으로 산업·발전·수송부문 등이 활발해지면서 배출권 수급이 더욱 타이트하게 된다는 것이다.
위드코로나 정책 등에 힘입어 석유제품 수요도 증가하는 모양새다.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미국의 휘발유·항공유 수요는 2019년 1월의 90% 이상으로 회복했으며, 인도와 중국에서는 휘발유·디젤 수요가 100%를 넘어섰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동서 갈등이 겹쳐 비싸진 천연가스도 언급되고 있다. 지난해 12월30일 MMBtu당 3.56달러였던 천연가스 선물값은 최근 4.65달러로 30% 이상 폭등했다. 정부도 '우크라이나 사태 비상대응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기로 하는 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탄소배출권 리서치 전문기관 김태선 NAMU EnR 대표는 "발전사들이 석탄과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많이 쓰는 중으로, 최근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석탄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탄소 배출량이 높은 발전원을 많이 사용하게 되면 배출권 수급에도 영향을 주고, 결국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포스코 포항제철소,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동국제강 당진공장, 세아제강 포항공장. /사진=각 사
다만, 국내 증권사 20곳이 배출권 거래에 뛰어들면서 시장 안정화가 촉진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확산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배출권 제출 시기를 비롯한 특정 시점에 거래가 몰리면서 일명 '패닉 바이'가 이뤄지는 등 가격에 대한 신뢰도가 낮았으나, 전문성을 지닌 플레이어들의 참여로 이같은 문제가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3년경 파생상품을 도입한다는 방침이지만, 현장에서는 조기 안착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현재 국내에서는 현물만 거래되는 탓에 가격 급등 또는 급락에 대처하기 어렵지만, 유럽처럼 파생상품이 도입되면 헤지거래를 활용해 변동에 대응하는 등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과 달리 배출권을 외국과 거래하기 힘든 환경이라는 점을 들어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을 통한 해외 감축실적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등 제도개선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19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7억137만톤)이 2018년 대비 3.5% 감소했으나, 국내에서 할당으로 얻을 수 있는 물량에 한계가 있어 수요 확대가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형성된 탓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배출권 시장은 '존버는 승리한다'는 믿음을 가져도 될 정도로 보유하는 것이 유리한 판으로, 한계감축비용에 기반한 '적정가격'도 산정하기 힘든 수준"이라며 "이같은 국면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결국 공급을 늘려 가격이 출렁이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나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