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구태경 기자]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가 2일(현지시간) 그린택소노미에 원자력발전 포함을 최종 결정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정부는 지난해 말 ‘K-택소노미’에 원전을 우선 제외한 뒤 EU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당초 예상보다 이른 최종안 도출에 ‘K-택소노미’ 개정요구 압박이 거세질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린택소노미(Green Taxonomy)란 ‘녹색산업 분류체계’를 뜻하는 말로서, 특정 기술이나 산업활동이 ‘친환경’인지 판별할 수 있는 기준 역할과 동시에 투자와 세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3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EU집행위는 이날 액화천연가스(LNG)와 원전에 대한 투자를 환경·기후친화적인 지속가능한 택소노미로 분류하는 규정안을 최종 확정·발의했다.
규정안에 따라, 신규 원전과 LNG에 대한 투자는 녹색분류체계로 분류된다. 여기에 조건이 붙는데, 건축허가를 받고 조달된 자금이 충분하며 오는 2050년까지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어야 한다.
LNG의 경우는 전력 1㎾h를 생산할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270gCO2eq(이산화탄소환산량) 미만이거나, 20년간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550kgCO2eq 미만인 경우로 제한했다.
이번에 최종 확정된 그린택소노미 규정안은 EU 27개 회원국 가운데 20개국이 반대하면 부결될 수 있으나, 이러한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분석으로 사실상 동 규정안은 2023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발휘하게 될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고심이 깊어지는 모양이다.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 유럽을 모델로 삼았던 만큼 EU의 원전 포함 결정을 무시할 수 없는 반면, 현 정부가 탈원전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는 지난달 EU 그린택소노미 초안이 발표됐을 때, “최종안 확정까지 3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향후 EU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검토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3월 9일 대통령선거를 치룬 뒤에야 EU의 최종 결정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것인데, 한 달여 만에 확정된 것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로, 지난해 확정된 ‘K-택소노미’에는 원전 대신 LNG를 포함했다. 하지만 EU 그린택소노미에는 LNG는 2030년까지만 인정된 반면, 원전은 2045년까지 허용됐다.
즉 LNG는 재생에너지원 이전의 과도기적 에너지원으로 보는 반면, 원전은 탄소중립 달성 차원에서 더욱 기여한다는 판단이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현 정부가 에너지원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원전이 나쁜 것으로만 막연히 인식하고 있다”며 “이번 EU의 결정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고 꼬집으면서, 조속한 ‘K-택소노미’ 개정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EU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던 환경부는 요지부동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앞으로 원전을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에너지원으로 봐야할 지를 놓고, 사회적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면서 “올해 말까지 시범사업을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관계부처, 전문가, 이해관계자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올해 안에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킬 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경부) 우리가 독단적으로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탄소중립위원회 및 관계부처와의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산업부도 아직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산업부 관계자는 “원전 세일즈에 있어서는 택소노미가 아닌 경제개발기구(OECD)의 수출신용기관(ECA)이 기준이 된다”면서 “K-택소노미 개정은 환경부가 결정할 일”이라고 답했다.
3일 서울역 대합실의 한 TV 스크린에서 '방송 3사 합동 초청' 2022 대선후보 토론이 방송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한편 이날 지상파 방송3사 초청으로 열린 첫 4자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EU 그린택소노미가 현재 매우 중요한 의제인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나갈 생각인가”라고 묻자, 윤 후보는 “어디에 지을 것인지, 핵폐기물 처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며 “이 두 가지가 해결되지 않으면 녹색에너지 분류가 안 된다”고 답했다.
[미디어펜=구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