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우리 민족은 계절마다 얻을 수 있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절기에 맞는 절식(節食)을 먹는 풍속을 발전시켰다.
정월 대보름에도 다양한 절식을 즐겼는데, 우리 몸에서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벽사'의 의미를 지닌 음식이 대부분으로, 소중한 가족과 이웃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음식에 담은 것이다.
15일 한식진흥원에 따르면, 대보름 절식을 대표하는 오곡밥은 다섯 가지 기운으로 몸의 균형을 찾자는 의미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소지왕은 역모를 알려 준 까마귀에 대한 고마움의 뜻으로, 해마다 1월 15일에 잣이나 대추 등 귀한 재료를 넣은 약식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서민들은 찹쌀, 수수, 팥, 콩, 차조 등을 넣어 지은 오곡밥으로 대신하면서, 한 해의 액운을 막고 건강과 풍년을 기원했다.
오곡은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을 띠는 다섯 가지 곡물로, 한의학에서는 이 오색 기운을 고루 받아 몸 안의 균형을 이룬다는 의미로 풀이한다.
또 오곡은 '모든 곡식'을 일컫는 표현으로, 모든 농사를 다 지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오곡밥을 지으면, 집안을 보살펴주는 가신(家神)들에게 먼저 올려 가정의 화합과 풍요를 빌었고, 가난한 이웃을 배려해서 "성씨가 다른 3명의 이웃과 나눠 먹으면, 한 해 운이 좋다"는 속설도 생겨났다.
오곡밥과 함께 반찬이 되는 것은 '묵은 나물'이다.
지난해 산과 들에서 채집해 볕에 말려, 겨우내 묵힌 나물 재료들을 정월 대보름에 꺼내 삶아 먹는다고 해서 묵은 나물이라고 하며, 한자어는 진채(珍菜)다.
주로 호박고지와 가지, 버섯, 고사리, 도라지, 시래기, 아주까리 잎, 토란대 등이다.
묵은 나물은 다가올 여름 더위를 미리 물리치기 위한 건강 기원 음식으로, '동국세시기'에는 "묵은 나물을 먹으면 다가올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기록돼 있다.
신선 채소가 귀한 겨울철에 묵은 나물은 영양 많은 귀중한 식재료였다.
오랜 기간 저장해서 먹을 수 있는 뛰어난 저장성과 높은 활용도, 생 채소와는 다른 구수한 맛에다, 추운 겨울에 열량을 돋우는 음식이기도 하다.
절기 상 초봄이지만 아직 추운 정월 대보름은 열량 있는 절식이 필요한 시기다.
한편 대보름 이른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부럼 깨기다.
온 가족이 모여 밤이나 호두, 은행, 잣, 땅콩 같은 견과류를 어금니로 단번에 깨물며 "올 한 해 무사태평하고 부스럼 안 나게 해 주십시오"라고 축원사를 함께 외운다.
이때 먹는 견과류가 '부럼' 또는 '부름'인데, 처음 깨문 것은 축원사를 외며 마당이나 지붕에 던지고, 두 번째부터 껍질을 깨문 뒤 먹는다.
부스럼(종기)을 막기 위해 부럼을 깨무는 이 세시 풍습은 오랜 기간 광범위하게 전승돼 왔다.
이는 또 '단단한 것을 깨물어 치아를 튼튼하게 한다'는 인류 공통의 주술적 목적에서 비롯된 행위이기도 하다.
부럼은 굳은 껍질의 과일을 총칭하고, 부스럼의 준말이기도 한 동음이의어인데, 이것이 부럼 깨기라는 주술성과 축원성을 띠는 세시 풍속이 된 것이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