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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걷기] 수원 화성

2022-02-19 08:37 | 윤광원 취재본부장 | gwyoun1713@naver.com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국내에서 3번째로 사적이 됐고,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水原華城)은 정조대왕의 꿈과 희망의 상징이다.

정조가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고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를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됐다.

정조(正祖)의 효심이 축성의 발단이 됐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다산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쓴 성화주략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 지휘로 17941월에 착공, 17969월에 완공됐다.

10년 넘게 걸릴 것이라는 세간의 전망을 비웃듯, 불과 28개월 만에 웅자를 드러낸 것.

축성 시 다산선생이 발명한 거중기(擧重機), 녹로 등 신 기계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해,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했다. 또 백성들을 강제동원하지 않고 정당한 품삯을 주고 일을 시킨, 우리 역사상 최초의 임금노동 국책사업이었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 때 성곽의 상당 부분이 파손·손실됐으나 1975~1979년 사이, 축성직후 발간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따라 축성 당시 모습 그대로 보수·복원됐다.

이 점은 화성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때,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다른 장점은 동·서양 각국 성곽의 장점이 두루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둘레 5744m, 면적은 130ha,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八達山)에 걸쳐 있는, 평지·산성의 형태다.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으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白眉)’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학사상(實學思想)의 영향으로 당대 최고 학자의 연구와 계획에 의해 동서양 축성술을 집약해 쌓아, 건축사적 의의가 매우 크고, 화성성역의궤 역시 기록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높다.

소장 문화재로는 보물로 지정된 팔달문(八達門. 남문), 화서문(서문), 서북공심돈, 방화수류정 등이 대표적이다. 장안문(북문), 창룡문(동문), 화홍문(북수문) 등도 있다.

1997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遺産)으로 정식 등재됐다.

성곽길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눈이 내린 날이다. 함박눈 서설이 내린 날, 수원화성을 찾았다.

눈 쌓인 수원 화성/사진=미디어펜


수도권전철 1호선 화서역에서 내려, 3번 출구에서 대로를 건너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버스정류장이 있다. 3번 버스를 타고가다 화서문(華西門)에서 내린다.

화서문 우측 성벽을 따라 산길을 오른다.

성벽 밑 억새 밭도 눈 밭이 됐다. 조금 오르면, 성벽을 통과할 수 있는 통로가 있다. 성 안으로 들어가, 성곽을 오른다.

성벽 길 계단은 눈 속에 파묻혔고, 여장(女牆) 위로 흰 눈이 소복이 쌓였다. 왼쪽 밑 숲 속에는 다람쥐, 청설모 등의 흔적이 보인다.

가파른 성곽 계단을 오르다 보면, 오래지 않아 팔달산 정상이 나온다.

128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사방으로 시야가 트여 수원(水原) 시내 전체가 한 눈에 조망된다.

옛날에는 탑산이라고 불렸는데, 이름이 바뀐 것은 고려 공민왕 때의 학자인 이고(李皐)와 관련된다.

은퇴한 이고가 이 산 자락에 살았는데, 공양왕이 사람을 보내 근황을 묻자 집 뒤 탑산의 경치가 아름답고, 산정에 오르면 사통팔달(四通八達)하여 마음과 눈을 가리는 게 아무것도 없어 즐겁다고 대답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왕조 개창 후 이고에게 벼슬을 권하자, 마찬가지 논리로 거절했다. 이에 화공을 시켜 탑산을 그려오게 했는데, 태조가 그 그림을 보고 과연 사통팔달한 산이다라고 한 데서, 이 산이 팔달산으로 불리게 됐다고 전한다.

정상에는 화성의 총 지휘소 격인, 2층 화성장대(華城將臺)가 우뚝하다.

하지만 그 뒤에 있는 서노대(西弩臺)가 더 높다. 쇠뇌를 쏘는 대인데, 계단이 높고 난간이 없어 오르려면 조심해야 한다. 발 아래 화성행궁(華城行宮)은 눈에 덮여 고즈넉하다.

정상의 소나무들이 흰 눈을 이고, 더욱 푸르다.

계속 성곽 길을 따라간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비석과 효원의 종앞을 지난다. 왼쪽에는 수원 3·1운동 기념탑이 솟았다.

서남암문(西南暗門)은 대부분이 벽돌로 축조됐다. 화성의 벽돌성벽은 적의 화포공격에 대비한 것이다. 대포에 맞아 성 돌이 깨지면 성벽이 무너질 수 있지만, 흙벽돌은 맞은 자리만 조금 패일 뿐이기 때문.

암문 밖으로 용도(甬道)가 이어진다.

서남암문부터 성벽은 급경사로 낮아진다. 평지까지 바로 떨어져 내려간다.

그 아래 도로 로터리 한 가운데 팔달문이 웅장하다. 팔달문은 밖에 반원형 옹성(甕城)을 두르고 있다. 본성은 돌로 축조됐으나, 적의 공격을 맨 앞에서 맞아야 하는 옹성은 벽돌로 쌓았다.

팔달문 양쪽 성벽은 도로 때문에 끊겨있다. 성곽 길은 수원천을 건너는 남수문(南水門)에서 다시 이어진다.

성벽에 꽂혀있는 영기(令旗)가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화성 성곽은 전체적으로 동서남북 4개의 영역으로 나눠져 있고, 각각 청백적흑(靑白赤黑) 색의 깃발로 구분된다.

봉수대 앞을 지난다.

성벽 옆에 누가 만든 것인지, 눈사람 2개가 있고, 여장 위에도 작은 눈 오리들이 줄지어 있다. 눈 오리는 장난감 틀에 눈을 넣어 쉽게 만들 수 있다.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도 보인다.

이윽고 동문 창룡문(蒼龍門)이다.

저 앞 도로가 성벽 밑을 관통하고, 그 옆에는 국궁 연습장이 있다.

동북공심돈이 보인다. 공심돈(空心墩)은 전국의 성곽 중 오직 화성에만 2곳 있다. 속이 빈 돈대여서 공심돈인데, 벽돌로 쌓아올린 요새 안에 몸을 숨긴 군사들이 적을 공격하는 곳이다.

성벽은 연무대(鍊武臺)를 돌아간다.

연무대는 화성을 지키던 장졸들의 군사훈련장에 있는 장대다. 화성장대가 서장대라면, 이 곳은 동장대다. 연무대 뒤에는 당시 무기들도 전시돼 있는데, 포르투갈에서 전래된 불랑기포(佛郞機砲) 모형이 눈길을 끈다. 명나라를 거쳐 조선에 들어온, 서양의 후장식소형 화포다.

성곽 길은 암문을 지나, 언덕을 넘어간다.

앞쪽에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 솟아있다.

보물로 지정된 방화수류정(왼쪽)과 용연/사진=미디어펜


방화수류정은 수원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보물로 지정됐다. 원래 화성의 군사지휘소인 4개의 각루 중 동북각루로, 경치를 감상하는 정자의 기능을 겸해 지어졌다. 그 밑 성벽 밖 인공호수인 용연(龍淵)과 어우러져, 그림 같은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어 북수문인 화홍문(華虹門)이다.

화홍문은 화성의 북수문으로, 7개의 무지개 모양 수문이 있다. 7개 수문의 크기가 다른 게 특징이다. 가운데 수문이 좌우보다 넓고 크게 설치돼, 수량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문 위에서 내려다 본 수원천(水原川)은 대부분 얼어붙어, 흰 눈이 쌓였다.

계속 성벽을 따라가면, 장안문(長安門)이 나온다.

장안문은 수원 화성의 정문으로,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팔달문처럼 옹성을 두른, 2중 성문이다. 팔달문은 일반인의 접근이 어렵지만, 장안문은 성문과 옹성 위를 모두 걸을 수 있다.

성문 양쪽에는 포루를 만들고, 당시 최대·최강의 대포인 홍이포(紅夷砲)를 배치했다. 중국인들은 네덜란드인들을 홍이라 불렀는데, 그들의 대포를 모방해 만든 중국식 화포가 홍이포다. 모형이지만, 크기만 봐도 그 막강한 화력을 짐작케 한다.

장안문 위에서 내려와 성 밖으로 나가, 화서문을 향해 걷는다.

성벽 밖은 장안공원(長安公園)이다. 이 곳에도 여러 가지 조형물과 건축물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공원 한복판에 관광열차인 화성어차(華城御車) 도로가 뻗어있는데,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운행하지 않는다.

머지않아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을 볼 수 있다. 그 바로 옆이 화서문이다. 둘 다 보물로 지정된 귀중한 문화재다.

화서문 앞 정류장의 버스들은 대부분 수원역으로 바로 갈 수 있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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