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홍샛별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어지면서 미국, 프랑스 등 서방 강국들은 러시아를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서 차단하기로 결정했다. 가장 강력한 금융제재로 꼽히는 만큼 국제 사회는 물론 국내 금융 시장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국내 금융 시장에 미칠 영향에 시장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미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캐나다는 지난 26일(현지 시간) 공동 성명을 내고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비롯해 다른 도시를 공격함에 따라 우리는 러시아를 국제 금융 체계로부터 고립시키기로 결정했다”면서 “해당 조치들은 조만간 시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스위프트 제재 의의는?
지난 1973년 설립된 스위프트는 전 세계 금융 기관의 신속하고 안전한 자금 결제 및 메시지 교환을 위한 국제적 통신 정보망이다.
현재 200여개국 1만1000개 이상의 금융 기관이 활용하고 있다. 직접 송금은 하지 않지만 고도로 높은 보안 시스템을 갖춰 금융 거래에서 가장 안전하고 신속한 결제 시스템으로 꼽힌다.
서방 강국의 이번 조치로 우선 선별된 러시아의 일부 은행은 스위프트 결제망에서 전면 배제될 전망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국제 보유고 접근 역시 제한된다.
러시아 은행들이 스위프트에 접속하지 못하게 될 경우 수입 대금을 지불하거나 수출 대금을 받기 어려워진다. 해외에서 돈을 빌리거나 투자하는 것 역시 불가능해 진다. 스위프트 배제를 ‘금융 핵 옵션’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러시아에 대한 스위프트 제재는 이란, 북한에 이어 세 번째 사례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합병했던 지난 2014년에도 스위프트 배제 옵션은 고려됐었지만 실행에 옮겨지진 못했다. 러시아를 결제망에서 배제해 경제적 고립을 시키겠다는 의도지만, 세계적 무역국인 까닭에 다른 국가들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원유, 천연가스부터 곡물, 알루미늄, 니켈, 반도체 특수가스인 네온가스까지 각종 원자재를 전 세계로 공급하는 국가로 대체국을 찾기 쉽지 않다.
특히 러시아와의 교역 의존도가 38%로 높은 유럽 연합(EU)의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여겨진다.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시장에서는 우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개 방향에 따라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사뭇 다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우선 우크라이나 정부가 조기 붕괴될 경우에는 금융 시장이 과거 크림반도 병합 때와 유사한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시 서방 제재에도 러시아의 천연가스 및 원유 수출이 견조했으며 우크라이나 곡물과 비철금속 수급 차질은 없었다. 글로벌 공급망 피해가 제한되면서 금융 시장 역시 빠르게 복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게릴라전으로 장기전 확전될 경우에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며 금융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서방 지역의 에너지 수급 교환은 제한적으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희귀금속 중심의 공급이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의 참전 및 전방위 제재가 이뤄질 경우다. 물론 우크라이나는 나토 회원국이 아닌 만큼 보호 명분이 없어 군사적 개입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이 경우 원자재 수급 악화로 실물경제 공급 충격이 발생할 것으로 여겨진다.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는 동시에 에너지 수급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유럽의 성장세 역시 급락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금융 시장 역시 추가 조정에 돌입할 수 있다.
어떤 시나리오든 국내 금융 시장 역시 충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금융당국은 “러시아의 어떤 은행을 스위프트에서 퇴출할지 결정하지 않은 상황인 만큼 어느 기업에 영향을 줄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면서도 국내 수출 기업들의 국제 송금이 차단돼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와 러시아의 무역규모는 273억 달러로 전체 교역의 2.2%에 해당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재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어떤 은행을 스위프트에서 퇴출할지 정하지 않은 상태이고 기존 규제 대상인 은행들만 포함되는 것인지, 아니면 더 많은 은행이 포함되는지 지켜봐야 한다”면서 “스위프트 퇴출이 즉시 적용인지 유예 기간이 주어지는지도 고려해야 하고,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러시아 은행과는 거래해도 괜찮은지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동결로 인한 파급효과 또한 제한적일 전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은 6306억 달러로 세계 5위 수준이다. 대부분 미국과 유럽 금융기관에 예치돼 있다.
한은 관계자는 “러시아 외환보유액이 동결 되더라도 우리나라의 러시아에 대한 익스포저가 매우 낮아 현 수준으로 봤을 때는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외환보유액이 동결될 경우 러시아로의 달러 공급이 끊기기 때문에 루블화 가치가 폭락할 수 있어 루블화 가치 변동으로 국내 금융기관에 영향을 줄 수는 있다”고 말했다 .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 세계 은행권의 러시아 익스포저는 1490억 달러 규모이며 국내 금융회사의 대(對) 러시아 익스포져는 14억7000만 달러로 전체의 0.4%에 불과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필요시 최대 2조원의 긴급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해 관련 기업의 자금애로 해소에 필요한 자금을 적극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내 증시 미칠 여파는?
국내 증시에 미칠 영향 역시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국내 증시에서는 공급망 차질 우려에 낙폭이 컸던 IT섹터의 재평가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노동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과거 지정학 위기는 약세장의 진입 재료로 작용하지 않았다”면서 “스위프트를 통한 경제 제재 현실화 및 범위가 중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 연구원은 또 “국내 유가증권시장 코스피 변동성은 크림 분쟁 당시를 상회 중”이라면서 “공급망 차질 우려로 낙폭이 컸던 IT 섹터의 재평가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지정학 위험이 반도체 제조 공정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반도체 중심의 IT 비중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게 노 연구원의 설명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도 “서방 국가들의 스위프트 차단 포함 대 러시아 제재가 이어지고 있지만, 직접 전쟁에 개입하는 전면전 형태로 전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일말의 안도 요인”이라면서 “각종 제재 및 전쟁 비용 증대로 인해 현재 러시아가 처한 상황, 국제 사회의 우크라이나 지지 확대 등을 감안할 때 교전의 장기화 가능성은 높아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 연구원은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는 3월 중 일단락될 전망”이라면서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은 3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와 국내 대선으로 이동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미디어펜=홍샛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