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지난 23일 한진칼은 제9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했고, 재무제표와 사외이사·감사위원 선임 건과 이사 보수 한도 승인안이 가결됐다. 하지만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겸 대한항공 대표이사의 대항마로 나선 강성부 KCGI 대표 측이 제안한 안건은 모두 표결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우선 KCGI가 추천한 서윤석 전 한국관리회계학회장은 주주들의 찬성률이 25.02%에 불과해 사외이사로서의 이사회 진입에 실패했다. 조 회장을 위시한 현 경영진을 지지하는 주주들이 그를 회사 운영을 방해하는 인물로 여겼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소공동 소재 한진빌딩 26층에 주주들이 모인 가운데 제9기 주식회사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가 개최됐다./사진=한진칼 제공
KCGI는 정관상 이사 자격 기준 강화 명문화도 주장했다. 이는 도입 의도가 오너 가문 중 특정인의 품행을 저격함으로써 이사진으로의 합류를 막고자 하는 데에 있어 취지부터 불순했다. 찬성률이 53.4%였으나 통과됐을 경우 대상을 불문하고 이현령 비현령 논란이 따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진짜 고민해봐야 할 문제는 전자 투표제 부결이다. 이는 주주가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도 전자적 방법에 의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이는 2010년 소액 주주권을 보장하고자 생겨났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현재에도 많은 회사들이 주총 현장에 참석했거나 위임장을 제출한 경우에만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 게다가 이번 한진칼 주총에서 전자 투표제는 과반이 넘는 57.9%라는 높은 찬성률에도 불구하고 표결을 통과하지 못했다.
현행 상법상 정관 변경 건은 출석 주주 중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고, 찬성 주식 수가 의결권 있는 발행 주식 수 중 3분의 1 이상이어야 가결 처리되도록 한 '특별 결의' 규정을 따른다.
전자 투표제 자체를 거부하는 건 비민주적 처사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서와 같이 주주 자본주의의 핵심은 '1주=1표'라는 대원칙이다. 요즘 세상은 과거와 달리 디지털 환경이 발달했으며, 코로나19가 판을 치고 있다. 이럴 때일 수록 물리적 제약이 따르는 소액 주주들의 권익 신장 차원에서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전자 투표제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국내 기업들은 너도나도 앞다퉈 전방위적 디지털 전환을 주창하고 있지만 정작 주총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아날로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택적인 디지털화는 옳지 않다.
한국예탁결제원 K-VOTE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주총을 여는 기업이 전자 투표를 진행할 경우 표준 수수료를 최대 500만원까지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지 투자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엄연히 회사의 주인인 소액 주주들이 전자 주총 표결에 참여해 사업의 향배를 결정하는 행위의 가치는 결코 수수료 보다 작지 않다. 주식회사의 모든 움직임은 주주들 결정에 따르는 법이다.
일각에서는 해킹이나 이중 투표로 인해 원활한 주총 운영을 저해할 우려가 있고, 업무가 추가돼 지나치게 자율성을 침해받는다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전자 투표제와 관련한 철저한 보안은 믿고 투자한 주주들에 대한 예의요, 의무다. 따라서 여기서까지 경영 자율성을 운운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