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외교안보팀장]문재인정부에서 남북,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한창일 때에도 북한에 과연 ‘핵포기’ 의지가 있을지 이견이 있었다. 또 남한 정부와 북한 당국, 미국 행정부가 말하는 ‘비핵화 개념’이 동일하지 않다는 논란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딜’로 끝난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그해 9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요구해온 ‘행동 대 행동 접근법’에 동의한 바 있다. ‘선 비핵화 후 보상’을 고수하던 미국의 입장이 비로소 달라진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문재인정부는 비록 북미 간 합의에 실패했지만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을 것으로 해석하고 ‘하노이 교훈’을 강조했다. 하지만 김정은정권은 ‘하노이 보복’에 일관했다. 북한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했고, 남북통신선을 차단했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지금에 와서 3년 전 ‘하노이 노딜’을 다시 해설하는 이유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측과 조 바이든 행정부 사이에서 나오는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표현 때문이다. CVID에는 ‘선 비핵화’가 내포돼 있으므로 지난 4년여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기도 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CVID 표현을 주저없이 쓰는 입장에는 북한의 핵포기 의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노이 노딜이 한미 간 불일치에서 나온 것이었고, 특히 ‘네오콘’ 볼턴의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란 점을 상기하면 문재인정부의 시도와 노력을 수포로 돌리는 일은 ‘역사의 퇴보’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싶다.
하노이회담 직전 평양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을 볼 때 남한 정부는 ‘스몰딜’을 구상했다. 대신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 19일 평양 5.1경기장 연설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과 15만명 평양시민 앞에서 “남북 정상이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 없는 평화의 터전을 확약했다”고 밝혔다. 북한 핵포기 의지도 확보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직접 지도에 따라 24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 17'형 시험발사를 단행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25일 전했다. 2022.3.25./사진=뉴스1
그런데 하노이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빅딜’로 승부수를 바꿨다. 남한의 스몰딜 구상을 사전에 공유 받았겠지만 거부한 셈이다. 하노이회담 직전 정의용 안보실장과 볼턴 간 NSC라인이 몇 달째 먹통이었고, 두 사람의 회담마저도 결렬된 일이 이를 방증한다.
하노이회담 전 평양에서 남북 정상은 스몰딜을 약속했지만 하노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빅딜 담판을 벌이면서 한때 기대를 모았던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실패로 끝났다. 이는 북핵 문제 해결에서 무엇보다 철저한 한미공조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긴 것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새정부가 한미공조를 백지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까, 그래서 이미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을 상대로 뻔한 기싸움부터 반복하는 것이 맞을까.
북핵 위협 앞에서 한국과 미국의 형편은 똑같지 않다. 접경을 맞댄 북한의 불시 무력도발에 우리가 훨씬 취약하고, 김여정 부부장은 최근 남한에 대한 핵공격도 시사했다. 미국보다 우리가 갈 길이 훨씬 바쁘다는 말이 된다. 북한 핵·미사일은 미국 문제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은 안타깝게도 북한에 눈을 돌릴 여력이 전혀 없어보인다.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세력은 확장하고 있고, 유럽국가와 러시아 관계도 관리해야 하는데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쟁까지 벌인 상황에도 관여해야 한다.
문재인정부를 끝내는 시점에 여권에서도 대북 문제에서 너무 욕심을 부렸다는 아쉬움이 들린다. 그래서 ‘핵동결’도 놓쳤다는 안타까움이 진하다. 그러면서도 북한과 협상이 가능했다는 경험과 새로운 바이든 정부를 상대로 ‘싱가포르 합의 계승’을 이끌어낸 것에 대한 평가도 크다. 이제 차기 정부가 앞선 정부의 공과를 발판으로 ‘북한 핵동결’을 우선 대북정책으로 삼고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키기를 기대해본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