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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광화문] 장관후보자와 악마의 대변인

2022-04-22 14:10 | 김진호 부사장 | sedtiger@hanmail.net

미디어펜=김진호 부사장

크리스토퍼 히친스(1949~2011)는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에서 상종할 수 없는 불쌍놈 취급을 받는다. 그만큼 영향력이 지대했고, 지대하기 때문이다. 

도킨스가 진화생물학이라는 과학적 접근을 통해 무신론에 다가섰다면 히친스는 저널리즘의 인문학적 관점에서 신의 부존재를 전파했다. 버트런트 러셀이 서구 지성계에 무신론을 심었다면 히친스는 무신론을 주류문화로 성장시켰다고 평가된다. 

그런 히친스가 가톨릭과 협업을 한 전력이 있다. 2003년 교황청은 노벨상 수상자이자 성녀로 추앙받는 '마더 테레사'를 시복하고자 했지만 히친스가 눈엣가시였다. 그는 이미 테레사 수녀가 생전이던 1995년 발간한 저서 '자비를 팔다(The Mission Position)'에서 테레사 수녀의 한계와 빈틈을 신랄하게 비난해 주목을 끌었다. 

그의 저서로 인해 테레사 수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점증하고 있어 히친스가 제기한 의혹을 무시할 수 없었다. 교황청은 아예 히친스를 테레사 수녀의 시복을 검증하는 '악마의 변호사'로 선임했다. 테레사 수녀의 이중성을 고발한 히친스가 시복 검증과정에 참여하자 전 세계가 눈과 귀를 모았다. 

'악마의 대변인' 혹은 '악마의 변호인'로 알려진 제도는 가톨릭에서 시복과 시성 과정에서 파생할 사이비를 걸러내기 위해 작동한다. '악마의 대변인'은 성인으로 추대하려는 측에 맞서 추대 불가를 주장하는 논리를 설파한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악마의 시험대에 올라 추잡한 또는 의심스러운 소문이 불길 같은 검증을 통해 진멸돼야 한다. 또한 '악마의 대변인'이 내뿜는 역설의 논리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이런 의미에서 교황청의 인선(人選)은 적절했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고, 나아가 부재하다고 주장하는 세계적 지식인인 히친스 만큼 '악마의 대변인'에 어울리는 인물이 또 있을까. 그가 내뿜는 불길을 통과한다면 중세 마녀시험을 통과하는 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최근 제기된 자녀 의혹에 대하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검증과정의 내용은 교황청과의 약속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으나 그의 신랄한  성격상 어떠했을지 짐작이 된다. 여하튼 히친스는 종교 여부와 상관없이 이러한 시스템에 만족감을 표했고 여론 역시 히친스라는 불길을 통과한 테레사 수녀를 성인(聖人)으로 맞이했다.

우리 시대 필독서 중 하나인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저자인 야마구치 슈는 "아무리 개인의 지적 수준이 높아도 동질성이 높은 사람이 모이면 의사 결정의 질이 현저히 저하된다"고 주장했다. 

"이때 필요한 존재가 바로 '악마의 대변인'이다. 악마의 대변인은 다수파의 의견이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서 대수롭지 않은 일을 세세하게 캐내어 결점을 찾는다. 이 결점을 통해 그때까지 간과했던 문제를 깨달음으로써 빈약한 의사 결정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막는다"고 논파했다.

장관 후보자들의 검증이 화제다. 아들, 군대, 땅, 재산, 과거 언행 등 과거와 동일한 사안을 주제로 논쟁한다. 팩트냐 공정성을 담보했느냐가 논쟁의 중심이자 갈등의 원인으로 부각된다. 한 쪽에서는 "검증결과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고 또 다른 쪽에서는 "검증결과 문제가 있다"라고 맞받는다.

하지만 앞선 사례가 교사하듯 '검증'이 아니라 '검증절차에 대한 적절성'이 오메가 포인트다. 양 측 모두의 후보자 검증절차에는 과연 '악마의 대변인'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당리당략을 넘어서지는 못하는 정략적 미숙함을 탓하려는게 아니다. 진정한 당리당략을 위해서도 '악마의 대변인'이 절실함을 알아챈 이가 정녕 없다는게 우리 정치의 불행이 아닐까.

가톨릭은 테레사 수녀의 검증과정에 히친스를 참여시킴으로 '시복과 시성'이라는 종교적 테마를 일반화시키는데 성공했다. 또 테레사 수녀를 둘러싼 추문과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는데도 성공했다. 

무엇보다 히친스를 용인한 교황청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포용성과 관용성에서 우월한 자리에 앉게 됐다. 이는 모든 종교가 위축되는 시기에도 가톨릭이 교세를 넓히고 있음에서 확인된다. 결국 공정하냐가 아니라 공정하게 보이느냐의 문제다. /미디어펜=김진호 기자 

[미디어펜=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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