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선택한 곳이 바로 용산(龍山)이다.
‘삼각지’의 옛 ‘국방부’ 청사를 집무실로 하고, 관저는 ‘한남동’에 있는 구 외교부 장관 공관을 관저로 골랐다.
다음 대통령도 계속 그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윤 당선인이 용산을 고른 이유는 뭘까?
‘서울특별시’의 한복판에 있는 ‘용산구’는 북동부에 ‘남산’·응봉(鷹峰) 등의 산지가 경계를 이루는 외에, 대체로 낮은 구릉성 지형으로 되어 있다.
지명이 용산이라 ‘드래곤 마운틴(Dragon Mountain)’이라 부르고, ‘주한미군’ ‘영어’로는 ‘드래곤 힐(Dragon Hill)’이다.
《증보문헌비고》에서는 이 지역의 언덕을 가리켜 “용이 나타났고 해서 용산(龍山)이라 했다”고 돼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양화나루 동쪽 언덕의 산형이 용이 있는 형국이라 생긴 이름”이라고 적혀있다.
고려(高麗) ‘충숙왕’의 아들 중 ‘용산 원자’가 있는데, 바로 이 용산에서 낳았다 하여 용산 원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를 보면, 적어도 고려 후기에는 이 지명이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역사적으로, 용산은 이 나라 국방의 중심지였다.
워낙 요지인지라, ‘임진왜란’ 때 왜군(倭軍), ‘임오군란’ 당시 청군(淸軍)도 여기에 주둔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조선주둔군사령부’ 및 주요 병력의 주둔지가 용산구에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엔 ‘국방부’ 및 ‘합동참모본부’가 용산에 자리 잡았으며, 1989년 ‘계룡대’로 이전하기 전에는 ‘육군본부’도 용산에 있었다.
또 주한미군사령부(駐韓美軍司令部)도 용산에 있었으나, ‘평택’으로 이전했다.
이태원동(梨泰院洞), 한남동, ‘경리단 길’, 해방촌(解放村) 일대는 옛 미군기지와 대사관들이 인접해 있어, 외국인들이 모여들어 독특한 거리 풍경에 이색적인 상가가 밀집해 있다. ‘한국이슬람교 서울 중앙성원(中央聖院)’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방인들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전쟁기념관’, ‘한글박물관’ 및 ‘리움미술관’이 있는, ‘보고’이기도 하다.
구 주한미군 ‘용산기지’는 2017년 말부터 용산공원(龍山公園)으로, 단계적으로 조성된다. 대부분의 미군시설이 이전, 거의가 현재 공터로 남아있고, ‘캠프 킴’과 같은 일부 지역은 이미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미국대사관’ 예정부지와 헬기장, 미군 전용 호텔은 잔류할 전망이다.
윤 당선인은 집무실을 국방부(國防部) 청사로 옮기면서, 용산기지 전체를 조속히 개방하고자 하지만, 옛 미군기지의 ‘토양오염’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용산은 주민들이 잘 살고, 땅값과 집값도 매우 비싼 곳이다. 거의 강남3구(江南三區)에 비교될 정도이며 ‘종로구’, ‘성동구’, ‘성북구’와 더불어 ‘강북’ 내에서는 최고로 잘사는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정치적 성향도 강남3구 다음으로 보수세가 강하다. 윤 당선인은 용산에서 이재명(李在明) 후보에게 압승을 거뒀고, ‘대선공신’인 ‘권영세’ 의원도 ‘국민의힘’ 소속이다. 권 의원은 새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 후보자인데, 그가 통일에 별 관심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자세히 뜯어보니, 윤 대통령이 용산을 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은 느낌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로 바뀌는 용산 국방부 청사/사진=미디어펜
오늘은 이 나라 미래권력(未來勸力)이 옮겨 올 곳, ‘용산누리길’을 걸어본다.
지하철 6호선 ‘버티고개’ 역 1번 출구로 나와 ‘다산로’를 따라 조금 가면, 왼쪽으로 산길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그 계단을 올라, 오른쪽 산책로를 따라간다.
봄이 무르익은 산에는 산수유, 개나리, 벚꽃, 돌단풍, 매화(梅花), 서울제비꽃, 민들레, 봄맞이, 꽃다지 등 온갖 봄꽃들이 만발하다.
‘한남(漢南) 테니스코트’가 내려다보인다. 건너편 남산(南山)의 능선이 완만하게 흘러간다.
어린이공원 옆을 지나니, 맑은 계류가 흘러내린다. 이 동네는 예로부터 물이 맑고 풍부하기로 유명했다. 이어지는 ‘응봉공원’ 유아 숲 체험장은 ‘아이 스스로 자라는 숲’을 표방하는 곳이다. 길 가, 흰 젖 제비꽃과 진달래가 반겨준다.
‘매봉산공원’ 출구로, 산길을 빠져나왔다.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돌장승 두 개가 양쪽에서 버티고 서있다.
철제 담장을 끼고 내려와, 동네 마을길로 들어섰다. 어느 집 담 너머로, 자목련(紫木蓮) 꽃이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대로로 내려와, ‘신동빌딩’ 앞을 지난다. ‘한남대로’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 남산 밑 삼거리에서 길을 건너, 왼쪽으로 간다. 곧 6호선 한강진역(漢江鎭驛)이다.
이 길은 ‘이태원로’다. 곧 ‘이방인들의 거리’가 보일 터다.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청(警察廳) 교육장’ 앞을 지났다. 이태원 입구의 아치형 조형물이 도로 양쪽을 잇고 있다. 길 왼쪽 건물 입구는, 밑 동네를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 구실을 한다. 한남동 일대가 굽어보인다.
국내 최대 광고회사인 제일기획(第一企劃) 앞길이다. 건너편은 ‘임패리얼팰리스부띠끄호텔’.
곧 ‘이태원역’이다. 외국인들은 물론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활기가 넘치는 동네다. ‘중늙은이’인 필자도 젊은 기운을 듬뿍 받았다. 도로 건너 ‘해밀턴호텔’은 디스코장으로 유명, 20대 때 한번 갔던 기억이 난다.
이 곳 ‘이태원 관광특구’에선, 매년 10월 ‘이태원 지구촌축제(地球村祝祭)’가 개최된다.
다양한 먹거리, 볼거리, 체험거리가 가득한 축제다. 특히 한강진역에서 ‘녹사평역’까지 이어지는 ‘지구촌 퍼레이드’는 최고의 하이라이트다. 전 세계인이 즐겨 찾는 대한민국의 거리축제로, 해마다 가을이면 용산은 ‘세계(世界)와의 어울림 도시’, ‘문화축제의 도시’가 된다.
계속 도로를 따라, ‘녹사평역’으로 향한다.
‘용산구청역’이라고도 하는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綠莎坪驛)은 ‘발명 테마 역’이다. 영화 ‘말아톤’, 드라마 ‘마왕’, 소녀그룹 ‘크레용 팝’의 뮤직비디오를 여기서 찍었다. 1번 출구에서 이태원 방향으로 넘어갈 수 있는 육교는, 해방촌과 ‘남산타워’의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역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바로 미군기지(美軍基地) 높은 담장이 이어진다.
옛 미군기지 막사/사진=미디어펜
이 ‘이태원로’는 ‘가을 단풍길’이라는 낭만적인 별명이 붙었다. 그만큼 가을 단풍(丹楓)이 아름다운가보다. 계속 따라가면, 바로 윤 당선인의 집무실이 될, 국방부 청사가 있다. 정문은 항상 그렇듯이 굳게 잠겨있고, 차량도 사람도 들어갈 수 없다.
도로를 건너 조금 가면, 전쟁기념관(戰爭記念館)이 보인다.
‘아테네’ ‘파트테논 신전(神殿)을 연상시키는 본관 앞 광장에는, 거대한 전쟁무기들이 잔뜩 전시돼 있다. 전투기와 수송기, 미사일, 전차와 장갑차, 대형 곡사포(曲射砲) 등이 눈에 띈다.
경내에는 기념관 외에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 모형, ‘전사자명비’, ‘어린이박물관’ 및 ‘뮤지엄 웨딩홀’ 등이 있다. 하지만, 기념관은 예전에 돌아봤고, 필자의 관심은 온통 철조망을 두른, 높은 담 너머 옛 미군부대에 쏠렸다.
텅 비어있는 듯한, 막사(幕舍)들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다음에는 ‘서빙고역’을 통해, 개방된 용산공원과 ‘용산가족공원’, 그리고 그 바로 옆 국립중앙박물관, 한글박물관 등을 돌아오고 싶다. 멀리 남산타워가 우뚝하다.
전쟁기념관 뒤뜰을 지나, 지하철 4호선과 6호선이 교차하는 삼각지역(三角地驛)으로 나왔다.
걷기의 뒤끝은 역시 ‘뒤풀이’다. 운동 후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소맥(소주+맥주)’이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다.
이 동네 먹거리로는 ‘대구탕 골목’이 유명하다. 대구탕 외에도 ‘차돌박이’나 ‘곱창’ 등, 소문난 맛집이 많다. 우리 일행의 선택은, 대구탕보다 사람은 적어도 이름이 난, ‘생태탕’이었다.
이태원, 한남동, 미군기지...이 ‘이방인들의 거리’가 곧 ‘권력의 길’이 된다. 그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