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서우 기자]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12일 오전 5시 20분께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다.
구자학 회장은 1930년 7월 15일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고(姑)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진주고등학교를 마치고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해 1959년 소령으로 전역했다. 군복무 시절 6.25 전쟁에 참전해 다수의 훈장을 수여 받기도 했다. 이후 1960년 한일은행을 시작으로 호텔신라, 제일제당, 중앙개발, 럭키(現 LG화학), 금성사(現 LG전자), 금성일렉트론(現 SK하이닉스), LG건설(現 GS건설) 등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일선에서 뛰었다.
2017년 지수원 개관식에 참석한 고 구자학 회장(왼쪽)/사진=아워홈 제공
럭키 대표이사 재직 시절, 럭키는 1981년 ‘국민치약’이라는 수식과 함께 당시에 없던 잇몸질환을 예방하는 페리오 치약을 개발했다. 1989년 금성일렉트론에서는 세계 최초로 램버스 D램 반도체를 개발했으며, 1995년 LG엔지니어링에서는 굴지의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국내 업계 최초로 일본 플랜트 사업을 수주했다.
이처럼 LG에서 화학, 전자, 반도체, 건설,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핵심사업의 기반을 다진 경영자가 LG유통에서 가장 작은 아워홈 사업부를 분사 독립할 때 주변에서 의아해 하던 일화는 유명하다. 역량에 비해 너무 작은 규모의 사업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런 사업부를 몸담았던 거대 조직의 도움 없이 2조 원에 가까운 지금의 종합식품기업 아워홈으로 성장시켰다.
구 회장은 2000년 LG유통(現 GS리테일) FS사업부(푸드서비스 사업부)로부터 분리 독립한 아워홈의 회장으로 취임해 20여 년간 아워홈을 이끌었다. 그동안 아워홈 매출은 2125억 원에서 2021년 1조7408억 원으로 8배 이상 성장했다. 사업 영역도 단체급식과 식재유통으로 시작해 현재 식품·외식·기내식·호텔운영까지 확장했다.
고 구자학 회장이 1981년 럭키그룹 시무식에서 임직원들에게 신년사를 하고 있다./사진=아워홈 제공
실제로 구 회장은 음식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먹는 만큼이나 만드는 과정을 좋아했다. 미국 유학 중 현지 한인마트에 직접 김치를 담가주고 용돈벌이를 했다. LG건설 회장 재직 당시 LG유통 FS사업부에서 제공하는 단체급식에 불만이 있었다. 개선할 점이 많다고 느꼈다. 구 회장은 아워홈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맛과 서비스, 제조, 물류 등 모든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와병에 들기 전 아워홈 경영회의에서 구 회장은 “요새 길에서 사람들 보면 정말 커요. 얼핏 보면 서양사람 같아요. 좋은 음식 잘 먹고 건강해서 그래요. 불과 30년 사이에 많이 변했습니다. 나름 아워홈이 공헌했다고 생각하고 뿌듯합니다”라며 “은퇴하면 경기도 양평에 작은 식당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커져 버렸어요. 그동안 같이 고생한 우리 직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요”라고 말했다.
구 회장은 지난해 6월 아워홈 이사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되지 못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장남의 재판 결과가 그의 해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까지 회장 직함은 유지했지만, 고령으로 사실상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 구자학 회장이 1986년 금성사 대표이사 재직 시절 마이크로웨이브 오븐 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아워홈 제공
2016년 장남 구본성 부회장이 대표이사에 선임되며 후계 구도가 갖춰지는 듯 했지만, 구본성 부회장은 지난해 보복 운전으로 상대 차량을 파손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회사에서도 해임됐다.
당시 아워홈 이사회는 구본성 전 부회장을 대표이사에서 해임하고, 신임 대표이사로 구지은 부회장을 선임했다.
현재 아워홈은 구본성 전 부회장이 지분 38.6%, 구미현·명진·지은 세 자매가 합산 지분 59.6%를 보유하고 있다.
구자학 회장 유족으로는 아내 이숙희씨와 아들 본성(아워홈 전 부회장), 딸 미현·명진·지은(아워홈 부회장)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15일 오전 8시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공원묘원이다.
[미디어펜=이서우 기자]